기상청에 따르면 14일(토) 주말,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전국에 비가 내릴 것으로 보인다. 14일 기압골이 우리나라 서쪽에서 동부쪽으로 통과하면서 중부지방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산발적으로 내릴 것으로 내다봤다. 우박이 내리고 돌풍이 불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천안 관내에선 14일 많은 행사가 예정돼 있다. 천안호두축제를 비롯해 청룡 차없는 거리축제, 문성동 가을나눔축제, K-FOOD 천안들깨페스티벌, 성성호수 맹꽁이축제, 하릿벌 밤도깨비축제, 불당 서당골 너나들이축제 등등.
우박에 돌풍까진 아니어도 예정대로 비가 내린다면 이들 축제는 얼마나 의미있게, 정성껏 준비했느냐는 문제는 차치하고 일찍 축제의 문은 닫힐 것이다. 한갓 날씨탓으로 이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날씨에 대한 걱정 때문에 시작된 축제이야기를 꺼내놓고 나니 근본적으로 할 말이 많아진다. 천안만이 아닌 전국의 문제이기도 할 테다. 몇가지만 이야기해 보겠다.
‘지방자치’가 어떻고 ‘주민자치’가 어떻고 하다 보니 지역주민에 대한 자율성이 많이 높아졌다. ‘말 그대로 스스로 알아서 해라’ 이거다. 맡기려면 통째로 알아서 하라 해야는데 정작 필요한 ‘예산’을 던져준다. 알아서 쓰고 보고만 하라는 거다. 그러다 보니 이권(利權)을 챙기려는 무리들이 판을 친다.
그러다보니 준비하면서 많은 갈등과 문제가 양산된다. 잘해보자는 사람들과 이권을 챙기자는 사람들이 서로 다툰다. 누가 이길까. 양보없고 눈에 뵈는 게 없는 이득권자들이 결국 축제를 쥐락펴락 하게 된다. 성환배축제, 입장거봉포도축제, 천안호두축제의 천안 3대 대표 농산물축제만 해도 같은 문제를 겪는다. 내부에서는 ‘이런 축제를 왜 하느냐’부터 ‘시행정은 왜 우리에게 맡겨 문제를 만드느냐’ 등 원초적은 불만을 내비친다. 생산자들의 친목도모도 축제의 한 취지지만 ‘생산자들이 참여를 안한다’는 볼멘소리를 한다. 하물며 ‘(축제가)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힘겨워한다.
어쩌면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에게 맡기는 건 무책임한 일인지도 모른다. 자녀 셋을 모두 하버드대를 보낸 어머니의 교육방법이 책을 통해 소개됐는데 그 어머니의 말이 인상적이다. “자녀에게 니 인생이니 니가 알아서 해라 하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것이냐”며 그건 방임이며, 원칙을 세워 안되는 것과 되는 것을 명확히 해서 안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게 맞을지도 모른다.
전문성과 책임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이권을 도모하는 사람들이 끼어드니 ‘환장’할 노릇이다. 뭔가는 해야겠는데 시는 맡겨만 놓고 마땅히 자문구할 데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다. 하나부터 열까지 몇몇 임원을 스스로 뽑아놓고 맨땅에서 준비해야 한다. 인맥도, 정보도 없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행사가 왜이리 가을철 짧은 기간에 모두 몰리는지 당황스럽다. 시행정의 큰 행사들과 각 읍면동에서 저마다 행사를 치른다. 체육단체들도, 문화예술단체들도, 자생단체들도 저마다 ‘이 때다’ 싶어 행사를 치른다. 이는 각 지자체마다, 전국이 마찬가지이니 볼 건 미어터지는데 몸뚱이는 하나 뿐인 것이 아쉽다. ‘빈익빈 부익부’라고, 예산 많이 받아 화려하게 준비한 행사장은 그래도 사람들이 모여드는데 그렇지 않은 곳은 날파리만 윙윙거린다.
이런 것은 적어도 지자체가 ‘숲’을 그려줘야 한다. 시가 나서서 천안의 모든 행사들을 조목조목 모아봤으면 좋겠다. 그러면 행사가 100개든 200개든 나올 거다. 각 읍면동마다 행사(축제)가 너무 많다면 매년 행사를 열 것이 아니라 3년이나 2년 주기로 열 수 있도록 조절해야 한다. 만약 매년 2000만원의 예산을 준다면 3년에 4000만원 정도 주는 식으로 한다면 시예산도 절약될 것이다. 읍면동은 더 알차게 준비할 테고 말이다. 또한 가을철 짧은 기간에 몰려있다면 봄과 가을, 더불어 틈새시장인 여름과 겨울에도 일부 행사가 진행되도록 모색해볼 수 있다. 물이나 숲과 관련되는 주제라면 한여름도 좋을 테고, 눈이나 실내 등 겨울철에 벌일 행사도 마련할 수 있다. 모든 읍면동이 그렇고 그런 밋밋한 잡화점식 음악회 등을 내놓을 것이 아니라 좀 더 특색있는 것들을 끄집어내야 한다.
만약 의미있는 축제를 만들어 골고루 분산시키고 효율적인 장소, 시기를 조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지막으로 시가 적극 예산을 주고 지원하는 관내 수많은 행사가 진행될 수밖에 없다면 야외무대나 관객의자, 각종 소품 등을 공유하는 방식은 어떨까 싶다. 일회성으로 각각 예산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방송국에 소품실이 있는 것처럼 시가 ‘소품실’ 같은 것을 운영하면 좋겠다. 일회성으로 만들어지고 버려지는 것은 ‘일회용품 안쓰기 운동’을 장려하듯 충분히 재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맞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앞세워 무대포로 소비하는 것이 맞는가. 일부 업체만을 배불리는 것이 지역경제 활성화는 아니지 않는가. 마구 퍼주어 낭비하는 것과 효율적인 사용으로 지역경제와 상생하는 것은 다른 의미이다.
몇몇 축제(행사)가 열리는 날 비가 온다는 소식으로 걱정차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올해는 천안시에 유독 축제(행사)가 많다. 내년에는 적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할 수 없다. 지역축제를 치른데 이어 시체육대회 등도 준비해야 하는 어느 동장의 푸념이 현실을 대변한다. “이리 저리 행사에 치이다 보니 우리는 주민자치회 행사를 올해 간략하게 하기로 했습니다. 행사가 너무 많아져 고민입니다.”
현명한 지자체라면 교통문제, 일자리문제, 고령화문제, 출산율문제 만이 아니라 지역민들의 소소한 행복을 위한 각종 축제(행사)나 공연 등에 대한 문제도 중요하게 풀어나가야 할 일이다.
아, 한가지 더. 지역경제를 살린다면서 지역문화예술은 관심이 없는가. 왜 걸핏하면 인기가수들을 욕심껏 부르는지 모르겠다. 물론 지역민들이 좋아하니 이해하지 못할 것은 없지만, 올해 천안 행사장을 다녀간 가수들이 무릇 세자리수는 될 거다.(정확히 세어보지는 못했지만 정말 많다) 가수 한명한명 부르는데 ‘천문학적’인 예산이 사용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 있을까. 최근 행사를 준비하는 한 추진위원장이 “어쩔 수 없는 것이, 그들을 부르지 않으면 사람들이 안 모이는데 어쩌느냐”며 자괴감을 보이기도 했다. 그도 그건 가수를 보러 오는 거지 행사는 부수적인 관심일 뿐임을 아는 까닭에 “그동안은 가수를 내세웠지만 이래서는 안되며 내년 행사에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고민을 내비쳤다.
지자체가 앞장 서 인기가수들에게 큰 돈을 사용하며 부르는 통에 지역문화예술인들이 상당히 위축돼 있음을 아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