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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클라라를 그리워한 ‘브람스’

그에게 묻노니 사랑에 자유로우면 행복할 수 있을까

등록일 2023년07월27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김다원 수필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뜻밖의 질문이다. 우아하게 “그렇다”고 답한다. 질문의 시작은 프랑스의 여류소설가 ‘프랑수와즈 사강’에서 시작되었다. 사강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그녀의 말 같이 마약, 음주, 흡연, 도박, 과속운전 등 호기심과 욕구가 원하는 대로 자신을 맡겼다. 19살에 『슬픔이여 안녕』으로 스타덤에 오른 그녀가 연애소설의 제목으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썼다. 그 후 이런 질문을 장난스럽게 또는 자연스럽게 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여주인공 폴은 39살이다. 오래 사귄 ‘로제’라는 남자친구가 있다. 로제가 여러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해온 연하남이 있다. 남자는 25살의 청년 ‘시몽’이다. 시몽이 그녀에게 브람스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둘은 브람스의 음악을 들으러 간다. 사강은 브람스가 15살 연상의 슈만 클라라를 사랑했듯 내심 연하의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싶어 이 소설을 쓴 것은 아니었을까? 문득 브람스의 사랑이 궁금했다.

브람스는 북부 독일 함부르크 출신이다. 아버지는 호른과 더블베이스 연주자였다. 그는 브람스가 5살이 되자 바이올린과 첼로를 가르쳤고 7살이 되었을 때는 피아노를 배우게 했다. 1853년 브람스는 더 많은 활동을 위해 슈만을 찾아갔다. 그의 나이 20세였다. 브람스가 피아노를 연주하자 슈만은 너무 놀라 아내 클라라를 불러 브람스의 피아노 연주를 듣게 했고, 브람스의 실력을 알아본 슈만은 브람스를 한동안 집에서 머물게 했다. 클라라는 이미 연주자로서 이름을 날리던 때였다. 브람스의 클라라에 대한 사랑을 언급하기 전에, 슈만과 클라라의 사랑을 먼저 알아야 한다. 

슈만이 법학을 포기하고 음악을 배우기 위해 만난 교수가 프리드리히 비크 교수다. 그로부터 음악을 배우다가 그의 딸 클라라와 사랑에 빠진다. 클라라가 9살 연상의 슈만을 더 좋아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비크 교수는 딸 클라라에게 영어, 프랑스어 등을 가르치며 최고의 피아노 연주자로 키우던 때였다. 클라라의 아버지 비크 교수는 아직 자리도 잡지 못하고 바람기도 많은 슈만에게 딸을 주고 싶지 않아 소송을 걸면서까지 그들의 결혼을 반대했다. 그러나 둘은 3년 후 결혼했고 비크는 미안하다는 편지를 그들에게 보내고 화해했다. 
 


그렇다면 브람스와 클라라의 사랑은 어떻게 싹텄을까? 「음악 신보」 편집장이었던 슈만은 브람스를 지지하며 유럽에 알렸다. 유럽에서 브람스의 존재감이 커지는 것에 반해서 슈만의 정신병은 깊어졌다. 결혼 전 자유분방하게 살던 그는 매독도 앓고 있었다. 피아노 연습을 많이 한 탓에 손가락도 상했다. 그 후 작곡에 더 전념했다고 전해진다. 조울증이 심해져서 라인강에 투신하기까지 이르자 마침내 정신병원으로 가게 된다. 클라라는 남편을 간호하면서 병원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자주 연주회를 다녔다. 슈만이 49세의 나이로 죽을 때 클라라는 7번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슈만이 죽은 후 클라라는 음악을 선정할 때나 아이들 때문에 어려울 때마다 브람스와 상의했다. 브람스도 새 작품이 나올 때마다 가장 먼저 클라라에게 보여주었다.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없는 브람스가 자장가를 작곡했다. 

‘잘 자라 내아가, 내 귀여운 아가, 아름다운 장미꽃 너를 위해 피었다.’ 

클라라의 어린 아기를 재우며 자기가 작곡한 자장가를 불렀을 브람스를 상상해 본다. 병든 남편을 정성껏 돌보는 클라라,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으면서 여러 아이를 키우는 클라라를 브람스는 존경하고 도와주며 사랑했다. 

오로지 짝사랑만 하던 브람스는 어느 날 조심스럽게 클라라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썼다. 

“외롭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사랑할 때면 고독이 말없이 다가옵니다. 사랑하는 클라라, 매일 당신을 생각하고 당신에게 수천번의 입맞춤을 보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당신을 사랑하고, 사랑이란 단어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수식어로 당신을 불러보고 싶습니다.”

그에 대한 클라라의 답이 간단했다. 

“평생 슈만의 아내로 살겠습니다.”

브람스는 40여 년을 클라라를 바라보며 독신으로 살았다. 클라라는 피아노 연주를 통해 슈만과 브람스의 곡을 널리 알렸다. 교수로, 평론가로, 연주자로 살던 클라라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브람스는 40여 시간 달려 그녀 곁에 왔으나 운명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녀를 보내며 브람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나의 삶에 가장 위대한 체험이고, 가장 위대한 자산이며, 가장 고귀한 의미를 상실했다.”
 

클라라의 죽음이 그에게서 삶의 의욕을 빼앗아 갔는지, 클라라가 죽은 다음 해 그도 간암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1897년의 일이다. 브람스의 〈사랑의 노래〉가 저녁 호수의 윤슬에 내린다. 브람스의 3번교향곡 3악장도 듣고 싶다. ‘자유롭지만 행복하다’던 그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다. 사랑에 자유로우면 행복할 수 있는지, 달빛 고요히 내리는 밤에 그에게 묻고 싶다. 독일 남자의 사랑을 더 알고 싶다. 



 

김다원 리포터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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