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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죽는 여자

김유정의 「소낙비」와 조남주의『82년생 김지영』소설 속 여자들

등록일 2023년07월07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우주여행이 상품으로 나오는 21세기에 아직도 우리는 성의 평등을 논하는 자리를 만든다. ‘진정한 성의 평등이란 어떤 상태며, 정말 평등할 수 있을까.’ 생각을 좇다 보니 엊그제 문학회 후원회장님과 나눈 이야기가 생각난다. 

회장님 집에서 점심을 함께 하는데 사모님이 

“나는 회장님이 먹는 대로 먹어요. 아침식사때 점심에 무엇을 드시고 싶은지 물어봐서 그대로 해요. 평생 그래왔어요.”라 하셨다.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는 이어졌다. 회장님이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 내 나이 70까지는 아내를 꼼짝 못 하게 했어. 지금은 많이 들어주고 허락하는 편이지.” 

90이 코앞이라 약을 한 보따리 드신다며 사모님이 약을 챙겨드렸다. 하나씩 약을 받아먹는 회장님은 “남자는 아내를 잘 두어야 오래 산다.”는 말을 더했다. 남편은 왕이고 아내는 시녀란 말로 들렸다. 아이들 어릴 때 학부모 모임에도 못 나가고 살았다며 지금은 가끔 시장에 나간다는 사모님이었다. 
 


그럼 100여 년 전 여자들은 어땠을까. 193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1위 작품인 김유정의『소낙비』를 보자. 흉작과 빚쟁이의 위협 때문에 야반도주를 한 남편 춘호는 5원을 주고 산 움막 같은 집에서 산다. 타동네에 와서 달리 살 길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노름으로 한 판 크게 벌어 서울로 갈 생각이다. 그러나 노름밑천 2원이 없다. 

저녁식사로 감자를 씻고 있는 아내에게 춘호는 돈을 구해오라며 작대기로 아내의 엉덩이며 허리를 후려친다. 춘호 처는 매를 피해 삽짝 밖으로 뛰어와 돈을 구할 방도를 생각한다. 뜨내기 같은 부부에게 돈을 꾸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안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녀는 이 주사에게 몸을 주고 호사롭게 사는 쇠돌어멈을 떠올린다. ‘쇠돌어멈은 돈이 있으렷다.’ 그녀는 쇠돌어멈의 집으로 향한다.

가다가 소낙비를 만나 밤나무 밑에서 피하는데 마침 이 주사가 쇠돌어멈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다. 남편이 늦게 들어오던 날 자기를 덮쳤던 이가 이 주사란 것을 그 밤 어두워도 알 수 있었다. 집에 이 주사만 있는 것을 확인한 후 그녀는 슬그머니 그 집으로 들어간다. 자기를 보자 입이 벌어진 이 주사와 몸을 섞고는 다음날 2원을 받기로 한다. 아내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남편은 또 작대기부터 들었다. 

“돈 돼유, 낼 돈 돼유.” 

돈을 갖게 된다는 말에 춘호는 신이 났다. 그 밤, 남편은 아내에게 팔베개를 해 주며 서울 생활을 하나씩 일러준다. 다음 날, 춘호는 2원을 얻어서 빚도 갚고 서울로 가서 아내와 함께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아내를 곱게 치장시켜 이 주사에게로 보낸다는 이야기이다.
 


시대가 일제 강점기다. 소작인이 대부분인 농민들은 늘 끼니를 걱정한다. 있는 자에게 착취당하고 살거나, 살 길이 막연한 남자들은 쉽게 노름에 빠지거나 금광에 열광하기도 한다. 가난 때문에 아내에게 매춘을 사주하거나 아내를 매매하는 경우도 작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문제는 작품 속 남편이나 남자들이 여자를 가축처럼 매매하거나 매춘을 하게 하면서도 도덕적인 수치감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돈은 도덕보다 우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돈만 소유하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단순한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그러면 지금 여자들은 어떨까? 조남주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을 보자. 1982년생인 김지영은 우리 시대의 평범한 여자를 대표한다. 그녀의 할머니는 남편이 가족을 부양할 능력과 의지가 전혀 없이 한 평생을 살았지만 ‘계집질 안 하고 때리지 않은 게 어디냐’며 살았다. 

5남매 중 가장 공부를 잘해서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그녀의 엄마는 지영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돈 벌어서 오빠들 학교 보내야 했으니까. 다 그랬어. 그때 여자들은 다 그러고 살았어.” 그 엄마는 딸 둘을 낳고 배 속의 아이가 또 딸이란 말에 혼자 병원에 가서 아이를 지운다. 마지막으로 아들을 낳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지영이는 남동생을 편애하는 할머니와, 남학생이 우선으로 반장이 되는 학교와, 남학생이 쫓아오는 것도 여자의 행실이 잘못되었다는 아버지의 편견과 싸우면서 대학생이 되었다. 그러나 동아리 회장도 여자에게는 오르기 힘든 산이었다. 직장에서도 남자들과의 평등하길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주변에 승진한 여자를 보기는 더 어려웠다. 잦은 회식, 야근, 주말 근무는 기본이었다. 출산과 육아를 하겠다고 있는, 당연한 휴가와 휴직은 언감생심이다. 

지영이는 결혼하고 임신해서 지하철을 탄다. 

“배가 불러서까지 지하철 타고 돈 벌러 다니는 사람이 애는 어쩌자고 낳아?”란 말을 들은 날, 그저 흐르는 눈물을 거두지 못하고 지하철에서 내려 택시를 탄다. 지영이보다 배가 더 부른 의사는 분홍색 아기옷을 준비하란다. 그리고 대한민국 기혼여성 다섯 명 중 한 명은 결혼, 임신, 출산과 어린 자녀의 육아와 교육 때문에 퇴사한다는 부류에 동참한다. 2014년의 일이다. 아이를 키우며 살던 그녀는 명절에 시집에 가서 일하다가 시어머니의 말에 친정어머니가 되어 대답한다. 정신병을 얻은 것이다. 

작가는 우리 모두가 김지영이니, 김지영의 잃어버린 목소리를 함께 찾아보잔다. 방법이 없을까? 있다. ‘각성’이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깨닫는 것이다. 많이 바뀌었다고들 한다. ‘북어와 여자는 사흘돌이로 패야 한다.’ ‘남자는 하늘이다.’ ‘여자가 뭘 알아’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을 요즘은 자주 하지 않는다. ‘또, 김 여사군’ 하는 말은 가끔 들어도 ‘여자가 솥뚜껑이나 운전하고 있지 차는 왜 끌고 나오느냐’는 말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또 보이는 것이 있다. 딸 하나만 낳아 금이야 옥이야 키우는 남자가 자기 딸은 좋은 직장에서 일하고 또 남들의 존중을 받기 원한다. 결혼하고도 일을 계속하고 남편과 동등하게 살며 시집에서도 대우받길 바란다. 그런데 자기 직장에서는 다른 집 딸들을 하대하거나 능력을 무시하고 지배하려는 남자들을 본다.  

폴린 그로장은 『가부장 자본주의』란 책에서 문화적 규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해결책은 우리의 의식에 있다며, 우리가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 가를 깨닫는다면 시간이 걸려도 변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사회적 합의와 잘못된 의식에 대한 반성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발전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2차 세계대전 때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은 전쟁이 끝난 15년 후인 1960년대에 와서야 자기들이 잘못했다는 인식을 한다. 그 후 독일연방공화국의 연방총리 빌리 브란트 총리는 1970년 폴란드의 바르샤바에 있는 ‘게토유대인 추념비’ 앞에서 사죄의 무릎을 꿇었다. 

지금 거리에 나가보면 엉덩이와 다리의 곡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레깅스를 입거나, 배꼽이 다 드러나는 옷을 입고 당당하게 다니는 이들을 자주 본다. 약혼한 사이에 서산 개심사에 놀러 갔다가 결혼 안 한 남녀가 함께 다닌다고 경찰에 잡혀갔다는 90수의 오라버니 내외의 말이 먼 꿈같은 이야기로 들리는 시대에 산다. 진정 평등한 관계는 지적, 경제적 자립과 신체적인 건강에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여자들은 오늘도 400년 전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했던 고민을 하고 있다. 

결혼, 육아, 출산을 했을 때 일은 남편과 평등하게 하는가. 그리고 직장에 복귀했을 때 승진이나 인사에 불평등은 없는가. 불평등하다면 그 사회에 적응하면서 나를 죽게 할 것인가. 맞서 싸우면서 나를 죽일(살릴) 것인가. 여자들은 아직도 날마다 살고 날마다 죽는다. 아직도 죽고 지금도 죽는다. 



 

김다원 리포터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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