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그친 아침은 시원하다. 깨끗한 하늘은 파란 커튼을 열고 귀한 사람이 나올 것만 같다. 폭염에 시달린 가로수는 물세례를 제대로 맞았나보다. 싱싱함에 겨워 너울너울 춤을 춘다. 걷는 길에 눈을 즐겁게 해주는 나무가 고맙기만 하다. 밤새도록 컴퓨터와 씨름하던 눈을 시원하게 해주니 말이다.
 

그런데 울타리의 진초록 한 중간에 노란 꽃무더기가 있다. 황금 덩어리를 나무 위에 올려놓은 듯 환하다. 얼른 달려가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았다. 벌들이 이 꽃 저 꽃 분주하게 오가고 있다. 아, 모감주나무! 집 근처 길가에서 만나다니. 수없이 오갔건만 이제야 모감주나무를 알아차리다니. 내가 너무 무심했었나보다.   

한여름은 봄과 가을 같지 않다, 그다지 꽃이 많지 않은 시기이기에. 여름 초록의 싱싱함은 꽃을 대신할 만하다. 그래도 꽃이 없는 녹음은 어딘지 허전하기만 하다. 6월과 7월 사이에 피어나는 우리나라 꽃들은 좀 있는 편이긴 하다. 
 
요즘 우리강산에 자생하는 여름꽃나무들을 가로수, 조경수로 심는 곳이 많아졌다. 충청지역 산과 들에 피어나는 꽃들을 만나보러 쏘다닌 적이 있었다. 대표적인 여름꽃으로 무궁화, 모감주나무, 자귀나무, 배롱나무, 낭아초, 능소화 등을 보았다. 부여 궁남지 연꽃도 장관이었다.
 

큰 키로 자라는 나무 가운데 여름에 노란 꽃을 피우는 나무는 많지 않다. 개나리, 영춘화, 산수유, 생강나무, 풍년화 등 봄꽃의 노란색이 많은 것과 사뭇 대조적이다. 그래서 여름에 피어나는 모감주나무의 노란 꽃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봄에 노란 꽃을 피우는 어떤 나무보다 화려하다. 그야말로 황금빛 물결을 이룬다. 꽃잎이 땅에 떨어지는 걸 멀리서 보는 것도 화려하다. 빗물이 땅에 닿아 튀듯 황금 물방울이 튀는 모양이라 영어로는 ‘골든 레인 트리(Golden rain tree)’라고 한다. 
  
옛날 중국에 한 스님이 제자를 데리고 깊은 산 속을 걷고 있었다. 뒤에서 따라오던 제자가 힘들다고 투덜대는 데도 스님은 말없이 계속 걸었다. 제자가 참지 못하고 큰 나무 밑에 주저앉고 말았다. 스님과 나란히 앉아 쉬고 있는데 나무에는 참외처럼 생긴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제자가 그 열매를 먹고 싶다고 따려는데 스님이 큰소리로 “도둑이야” 하고 외쳤다는 일화다. 그 나무가 바로 모감주나무였다. 먹지 못하는 열매였기에 스님은 그렇게 했을까.
 

모감주나무는 이름 또한 묘하다. 왠지 한자 이름일 것 같은데 해당된 한자가 없다. 이 나무의 원래 이름은 ‘묘감주’, 혹은 ‘묘각주’였을지도 모르겠다. 옛 큰스님 중에 ‘묘각’이란 분의 법이 높아서 이 분에게 많은 제자들과 신도들이 선물을 올리고 싶어 했는데, 그 선물 중에 최상으로 여겨진 것이 바로 이 나무의 단단한 열매로 만든 염주였다. 여기에서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모감주나무는 꽃보다 열매가 더 탐스럽기까지 하다. 열매는 화려한 노란 꽃이 진 자리에 꽈리모양으로 주렁주렁 달린다. 처음에는 연초록빛으로 맺혔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노란 빛이 도는 갈색으로 변한다. 껍질 안벽에 검고 단단한 씨가 세 개씩 달려있다. 검은색 속 씨를 ‘금강자’라고도 하는데, 금강석 같이 단단하고 변치 않는 특성을 지녀서 불가에서는 도를 깨우치고 모든 번뇌를 떨칠 수 있는 경지를 뜻한다고 한다. 

이처럼 모감주나무는 불교와 인연이 깊다. 

꽃말이 ‘자유로운 마음’인 모감주나무는 우리나라 여러 곳에 분포되어 있다. 충남 태안군 안면도(천연기념물138호), 포항 남구 발산리(301호), 전남 완도 대문리(428호) 등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울산에는 모감주나무가 태화루, 태화강과 어울려 장관을 이루기도 한다.
  
모감주나무는 우리나라, 중국이 원산지이지만 무환자나무과 활엽교목으로, 높이는 17m 가량 자란다. 잎은 마주나며 우상복엽으로 길이는 25~ 35cm이며 작은 잎은 7~ 15개가 달리고 반드시 홀수이다. 잎은 엽맥을 따라 털이 있고 불규칙하고 둔한 톱니가 있다. 
 

열매는 이미 언급한 대로 삭과로서 생긴 모양이 꽈리와 비슷하다. 크기는 4~ 5cm 정도로 3개로 갈라지는 특징이 있으며 3개의 씨가 들어있다. 꽃은 피나무 꽃에 이어 피는 꿀벌들의 밀원이기도 하다. 
  
모감주나무는 희귀종으로 가로수나 조경수로도 많이 심는다. 특히 절에서 많이 심는다. 피나무와 같이 열매로 염주를 만들기 때문이다. 또 한방에서는 간염, 요도염, 소화불량, 장염, 이질 등 치료제로 사용한다.

모감주나무를 만날 때마다 아내와 장인어른을 생각하게 된다. 내가 결혼하기 훨씬 전의 일이었다. 아내가 학생시절 장인께서는 간경화로 고생을 하셨다고 했다. 장모님은 갖가지 민간요법으로 좋다는 약을 찾아 대령했다고 했다. 그러던 중에 모감주나무가 효험이 있다고 하여 줄기를 달여서 상시 복용하였다고 했다. 모감주의 효능인지 그 후 30년은 건강하게 사셨다.

나는 모감주나무가 장인님 건강을 지켜주었다고 굳게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