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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피해 도망하다 나무가 된 ‘다프네’

광덕사 입구에서 운초묘 중간쯤에 보이는 나무 두 그루.

등록일 2023년06월02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광덕산을 오른다. 지난겨울 봐 두었던 ‘다프네’가 보고 싶어서다.

봄비가 두어 차례 지나간 숲은 환희로 넘친다. 우렁우렁 돋는 잎이 햇살에 반짝이고, 나무는 바람이 주는 리듬을 따라 살랑살랑 군무를 춘다. 마음마저 푸르러진다. 
 

찾았다. 다프네다.

광덕사와 운초의 무덤 중간쯤에서 왼쪽으로 눈을 돌리는 순간이다. 더는 피할 곳이 없다는 듯 경사가 급한 곳으로 왼쪽 다리를 뻗고 오른쪽 다리는 언덕에 걸쳤다. 얼른 나무가 되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듯 두 팔을 하늘로 향하고 있었다. 늘씬하고 아름답다. 막 나무가 되는 듯 싱그런 잎을 달고 있다. 
 


그 서너발짝 뒤에서 우람한 둥치의 ‘아폴론’이 팔뚝의 힘을 자랑하며 다프네를 쫓아오고 있다. 그런데 아폴론의 뒤쪽을 살펴보니 여인의 속을 모르고 무조건 쫓는 그를 빗댄 것처럼 속이 비었다. 

아폴론을 로마식으로 부르면 ‘아폴로’다. 그가 누군가. 올림퍼스 신들 중 상남자다. 우선 아버지가 최고의 신인 제우스고 어머니는 티탄 신족의 딸 레토다. 그는 태양의 신이며 예술, 의술, 음악, 예언, 광명, 진실, 이성을 관장하고 활의 명사수이기도 하다. 게다가 현명하며 늠름하고 우아한 금발의 미소년이니 아버지인 제우스도 그를 제일 아꼈다. 조각이나 그림에선 자주 리라를 들고 나온다. 음악과 시의 신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근육질의 아폴론은 몸만 좋았던 것이 아닌가 보다. 그가 목욕하는 것을 본 어느 부족들이 그의 큰 성기를 보고 전부 실신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런 몸을 갖고도 그는 연애엔 그리 능하지 못했다. 이성의 신이라 사랑도 이성적으로 판단하다가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한 눈에 사랑에 빠져 다프네를 나무로 만든 이야기다.    

에로스가 화살을 갖고 있자 아폴론은 횃불이나 들고 불장난이나 할 어린아이가 화살을 들고 논다고 놀렸다. 에로스는 화가 났다. 최고 아름답다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아들인 그는  바로 산으로 올라가 몰래 아폴론에게 화살을 쐈다. 황금화살이다. 이 화살을 맞으면 처음 보는 이에게 사랑을 느낀다. 그리고 아폴론이 처음 본 여자가 다프네다. 

이번에는 납 화살을 다프네에게 쐈다. 납 화살을 맞은 이는 처음 본 사람을 증오한다. 아폴론을 본 다프네는 사랑한다며 쫓아오는 아폴론이 싫어서 죽어라고 도망하는 이유다. 장정의 달리기를 이길 수 있는가. 더구나 사랑에 눈이 멀어 쫓아오는 그다. 

다프네는 아폴론에게 잡히기 직전 그는 아버지인 강의 신 페네이오스에게 나무로 변하게 해 달라고 애원한다. 보드라운 살결의 다리는 거친 나무의 둥치가 되고 섬섬옥수는 점차 나뭇가지와 잎이 되고 있다. 사랑하는 여자가 월계수로 변해가는 것을 보는 그 마음은 어땠을까. 그녀에게 다가가 키스하려 하자 그를 피하려는 듯 나뭇잎은 움츠렸단다. 이후 아폴론은 사랑하는 여인인 월계수를 자신의 상징으로 삼고 그 가지와 잎으로 관을 만들어 자기 머리에 썼다. 

지금도 그리스에선 월계수를 '다프니'라 하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 월계수 잎과 가지를 엮어 씌워준다. 월계관이다. 로마제국에선 월계관 모양의 왕관을 만들어 썼다. 영국에선 최고의 시인을 계관시인이라 하고 연금까지 주는 대우를 한다. 여전히 학문 등의 업적을 기리는 상장이나 상패에 또는 문장에 월계수 잎을 넣는다. 다프네를 그리는 아폴론의 마음이 여전히 살아 있는 듯이. 

아폴론처럼 무조건 사랑한다며 쫓는 이들이 지금도 있다. 더하여 사랑하던 이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살인까지 하는 뉴스를 자주 접한다. 사랑하기도 무섭고 가까이하기도 무서워 사람을 피하는 세상이 되어가나 싶다. 사랑하고 싶거나 사랑에 빠지고 싶은 이는 광덕산에 가서 다프네를 자주 볼 일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 주지 않고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깊이 생각할 일이다. 

김다원 리포터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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