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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지를 걷다가 튤립나무를 보다

임낙호 천안수필가

등록일 2023년05월30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천호지를 향한다. 청량한 아침 공기를 안고 걷는다. 호수로 이어지는 길에는 아름드리 플라타너스가 죽 늘어서 있다. 시원한 그늘은 바람길도 열어준다. 호수로 접어들고 호수를 건너온 청량한 바람은 내 손을 살며시 잡아준다. 
  
며칠 전 이곳 그늘 구간을 지나며 높은 나무 위의 꽃을 찾았다. 코로나19로 수년동안 보지 못했던 꽃을 참 어렵게 만났다. 반가운 어느 시인님을 만난 듯 기뻤다. 쉽게 만나지지 못하는 꽃이기에 더욱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튤립을 닮은 꽃!
  
오늘 다시 그늘 구간을 지난다. 청량한 냄새가 나를 맞아준다. 오늘은 그 꽃이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증을 자아낸다. 아름다운 꽃은 지고 앙증맞은 열매가 생겼다. 어제 저녁 누리위성 3호가 발사됐는데, 발사대에 세워진 그 모습과 꼭 닮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의 그늘이기에 더욱 포근하다. 이 나무의 꽃과 열매를 언제부턴가 좋아하게 되었다. 꽃이 예뻐서다. 수십년은 되었을 것이다. 수없이 오르내리던 북한산의 새마을교에서 만났었던 그 나무. 

다리를 건너기전 우측에는 북한동역사관이 있고, 다리 건너서 좌측길을 따라 백운대로 오르는 길을 만나는데 건너편에는 ‘보리사’란 조그만 암자가 있다. 넓은 공간의 광장이 있고 데크와 긴 벤치들이 놓여있다. 열심히 걸어온 산객들의 휴식공간이기도 했다. 광장 한편에는 백년은 넘었을 큰 나무 한 그루가 수호신처럼 서있다. 높이가 어림잡아 40미터는 되어 보였다. 그늘이 산객들의 땀도 식혀주고 마음의 더위도 달래주었다. 그 나무가 바로 튤립나무다. 지금도 풍성한 꽃을 피우고 서 있을까?
  
우리 일행도 북한산을 오르내리며 그 나무 아래에서 많은 추억을 쌓았다. 간식으로 허기도 달랬고 시원한 막걸리 한 잔으로 갈증도 달랬다. 주고받은 대화에서 정이 자라고 보는 눈도 훨씬 넓어졌다. 그 나무 아래를 생각하면 가슴부터 아파온다. 산을 오래 동행했던 친구 한 분과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바로 어제의 일 인양 눈에 선하다. 
  
열사의 불볕에서 동고동락을 했던 친구였었다. 더군다나 우리는 캠프에서 룸메이트이기도 했었다. 그는 건축설계를 담당했고, 나는 예산과 기획을 총괄하던 공무업무를 맡아 낮에는 각자의 일로 바빴지만 밤에는 형제같이 다정했다고나 할까. 배가 출출해지면 고국에서 공수해온 라면을 끓여 먹기도 했고, 주방장에게 부탁하여 육회 한 접시에 조니워커를 한 잔씩 기울이기도 했었다. 
  
그렇게 지냈던 친구는 수년전 머리에 어지럼증이 오더니 통증으로 이어졌고 급기야는 머리 수술을 받기에 이르렀다. 수술경과는 좋았다고 했다. 그래서 본인은 안심했고 나도 그렇게 믿었다. 방심한 탓일까. 1년이 지나며 다시 몸의 균형을 잃어가기까지 하며 상태가 악화되어갔다. 균형이 잡히지 않으니 걷기가 자유롭지 못한 건 당연지사였다. 

어느 날 지나가던 차에 불안정한 몸은 교통사고까지 당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이어진 병마는 그를 침대에 뉘이고 일어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나는 자주 찾아가 그를 일으켜 세우고 싶었다. 하나,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이면 참 좋으련만 모든 건 신의 뜻임을 알아차렸을 때는 그는 회생은 점점 어려워보였다. 

노란 튤립나무 잎도 한 잎 두 잎 떨어지고 있었다. 손바닥보다 넓은 목튤립 이파리가 바람에 휘날리던 날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갔다. 벌써 5년여가 지났다.
  
그 1년 전 우리는 튤립나무 아래에서 산행을 하며 쉬었던 것이 마지막이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그날은 주적주적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었다.
 


관심을 기울여서 보지 않으면 나무가 높아서 꽃은 잘 보이지 않는다. 꽃의 색이 잎과 닮아 잘 안보이고, 꽃이 하늘을 향해 있으니 더욱 안 보일 수밖에. 어디에서 만나도 키 큰 나무라서 고개를 90도까지 한껏 뒤로 젖혀도 잘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함인가? 그러니 대부분 사람들은 목튤립을 많이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꽃말이 ‘전원의 행복’인 튤립나무tulip tree는 목련과의 낙엽교목으로 ‘목백합’이라고도 부른다. 미국에서는 포플러나무처럼 빨리 자라기 때문에 ‘yellow popular’라고 부르기도 한다. 속성수라서 나무 높이가 최고 60미터, 둘레가 10미터까지 자란다고 한다. 꽃이 튤립과 비슷하게 생겼기에 튤립나무라 부르긴 하지만 튤립이 나지는 않는다. 둘은 별개의 종이다. 참 신기하기도 하다. 열매가 익어 벌어지면 씨를 쏟아내는데 씨 주머니의 벌어진 모양도 꽃과 똑 닮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백합나무에 대한 애잔한 전설이 내려온다. 

‘먼 옛날 용모와 덕을 갖춘 왕자가 있었다. 그는 몰래 이웃나라의 공주를 사랑했는데 나라에 큰 전쟁이 일어났다. 하필 공주의 나라와의 전쟁이었다. 왕자는 왕인 아버지를 대신하여 전쟁에 나가 싸우다 작렬하게 전사했다. 왕자는 금관을 공주에게 전해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공주는 지조를 지키며 왕자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왕관을 간직하고 평생을 살다가 죽었다. 공주의 무덤에 왕관을 함께 묻어주었다. 무덤에서는 금관처럼 멋스러운 나무가 자라났다. 나무는 꽃을 피우지 않았는데 그들이 처음 만났던 나이인 18세가 되던 해에 드디어 꽃을 피웠다.’ 금관과 모양이 똑 같은 꽃이었다. 이 꽃은 ‘전원의 행복’ 외에도 ‘사랑의 고백’이라는 꽃말도 가지고 있다.
  
원산지는 북아메리카이고 미국에 주로 분포되어 있다. 5~6월에 개화하고 10월에 열매가 익는다. 생장이 빠르기에 건축재, 펄프재 등으로 사용한다. 생장이 빠른 만큼 재질은 약한 편이다. 우리나라에는 1900년대 미국에서 들어와 널리 퍼져있다. 공해, 건조와 추위에 강한 편이어서 관상용이나 가로수로 식재를 한다.
  
잎 모양은 플라타너스와 비슷하나 크기가 좀 작다. 단풍의 색도 다르다. 나무의 크기는 비슷하게 자라지만 목재질도 전혀 다르다. 플라타너스는 표피가 반질반질 한데 반해 표면은 검고 거칠며 길게 홈이 나있다. 
  
미국 초대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생가에 거대한 튤립나무가 한 그루 서있는데 워싱턴이 직접 씨앗을 심은 것이라고 한다. 이 나무는 현재 너무 크게 자란 나머지 벌이 나무 위로 올라가지 못해 열매를 못 맺는 상태라고 한다. 결국 수백만명이 TV중계로 지켜보는 가운데 사람이 직접 기중기를 타고 인공수정을 했다고 한다. 나무가 얼마나 컸으면 그랬을까 싶다.

호숫가 튤립나무를 끌어안고 하염없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편집부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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