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음을 ‘과유불급’이라 한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중용의 덕을 즐겼다.
천안시내 간판을 보라. 옥외광고물 관련법에 보면 한 업소에 걸 수 있는 간판은 최대 3개. 그러나 현실은 최소 3개에 맞춰 있다. 신방동 모 아파트 상가의 경우 4층 건물에 1백개 넘는 간판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게다가 크기도 제각각, 모양과 색깔도 천차만별이다.
형형색색 난립된 간판은 오히려 간판의 고유역할을 잃은 채 외면당하고 있다. 업소들간 경쟁적으로 달아놓았을 뿐, 과연 손님들의 눈에 잘 띌까를 배려한 간판이 아니다.
어떤 건물이 전체적 맵시 따라 간판 하나하나가 디자인되고 배치된 반면 다른 건물은 10여개씩 업소 마음대로 달았다고 했을 때 고객의 눈과 기억을 즐겁게 해주는 건물은 과연 어딜까.
천안의 시세가 급격히 확장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팽창하는 도시. 그러나 도시문명도 성장하고 있는가.
도시 빛깔을 불쾌하게 만들고 인간정신을 오히려 황폐하게 만드는 ‘무분별한 간판’은 자제돼야 한다. 법으로 간판수를 명확히 제재하고, 광고쟁이는 이제 일정 자격을 갖춰 광고장이가 돼야 한다. 건물의 큰 틀 속에서 각각의 업소간판을 디자인하고 배치하는, 그래서 간판도 미학이 될 수 있는 노력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한번쯤 간판축제를 마련해 보면 어떨까.
광복절에 태극기가 없다
우리 어렸을 적엔 ‘광복절’ 하면 ‘태극기 다는 날’로 알고 있었다. 광복절이 뭔지는 몰랐다. 그저 학교 안가고 아침부터 하루종일 텔레비전 나오는 날로 생각했을 뿐이다.
한번은 아침 일찍 일어났다가 빨리 태극기를 꽂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아버지는 정원에 피어있는 꽃들에게 물을 주고 계셨다. ‘빨리 안꽂으면 큰일날 텐데’. 어떤 큰일인지는 몰랐지만 어린 마음에 막연한 조바심이 났다. 두 번 세 번 아버지만 졸랐다. 잠시 후 허허 웃으시며 꽂아주신 후에야 안도감과 함께 상쾌한 마음이 들었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흘렀다. 나이도 먹고 광복절이 어떤 날인지도 알게 됐다. 그때와 달라진 것은 많지만 ‘태극기’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큰 충격이다.
국경일때마다 집집마다 걸렸던 태극기가 하나 둘 보이지 않는다. 최근 10년은 국경일, 태극기 구경하기가 힘들 정도다. 기껏 관공서나 일부 거리에 상징적으로 꽂아놓은 것이 전부다.
지난해 모 아파트 단지를 돌아보고 태극기를 달아놓은 집을 파악해 보니 ‘열에 한두집’이었다. 올해는 어떤가. 태극기 무료로 나눠주기 운동까지 벌였지만 작년 수준에도 못미치는 형편이다.
이제 우리에게 태극기는 어떤 의미로 남아있는가. 행여 올해 8월15일을 말복으로만 알고 있진 않은지. 한번쯤 태극기에 대해 진지한 고찰의 시간을 가져보자. 그리고 태극기를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