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인격을 알기는 쉽지 않다.
보기 드문 인격을 갖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여러해 동안 그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야만 한다. 그 사람의 행동이 온갖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그 행동을 이끌어 나가는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며,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런데도 이 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잊을 수 없는 한 인격을 만났다고 할 수 있다. 고결한 인격을 지닌 한 사람의 불굴의 정신과 실천이 이 땅에 기적 같은 위대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메시지가 감동을 준다.
우리나라는 해방 후 나라가 황폐화되었다. 나라의 경제도 삶도 그랬다. 온통 산도 말 그대로 벌거숭이 민둥산이었다. 1961년 이후 새정부가 수립되고 산림녹화사업이 대대적으로 시행되었다. 이일에는 관 군 민 및 학생들까지 총동원되어 사방공사를 실시한 것이 기억에 생생하다. 민둥산에 밤나무, 족제비싸리, 은사시나무, 소나무, 아카시나무 등을 심었다. 1953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발표된《나무를 심은 사람》을 읽으며 학생 시절 나무을 심던 기억이 생생하다. 산림녹화사업을 시작한 한 사람의 뜻이 현재의 우리나라 푸른 강산을 만들었다.
《나무를 심은 사람》주인공 '알제아르 부피에(1858~1947)'는 헌신적인 노력을 통해 자신이 거둔 '성공'을 보여줌으로써 어느 누구도 거룩해질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목표를 품고 추구해 나가면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희망도 심어주었다. 부피에는《나무를 심은 사람》을 통해 우리의 마음 속에 '희망의 나무'를 심어주었다. 우리의 메마른 영혼 속에 푸른 잎을 피워 낼 내일의 '도토리'를 심어준 셈이다.
작가 장 지오느(1895~1970)는 프랑스 남부 오트 프로방스의 작은 도시마을 마노스크에서 태어났다. 여행자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해발 1200~ 1300미터의 산악지대였다. 그는 여행을 즐겼는데, 젊은 나이에 노마스크에서 멀지 않은 헐벗은 황무지를 향해 먼 도보여행을 떠났다. 야생 라벤더 외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황폐 지역을 걷고 지나니 더 황폐한 지역이 나타났다. 마실 물이 떨어져 물을 구하려고 이곳에 텐트를 쳤다.
그러나 샘이 있기는 했지만 바싹 말라 있었다. 지붕이 사그라진 집 여섯 채, 종탑이 무너져 버린 교회만 서 있었다. 마을이 있었던 증표만 남아있을 뿐 나무 한 그루도 없었다. 마실 물을 구하기 위해 헤매다 외로운 양치기를 만났다. 그곳 너머에는 너덧 마을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곳 마을 사람들은 서로 자기만 살기 위해 경쟁을 했다. 숯을 만들어 파는 경쟁, 교회의 앉는 자리, 선한 일, 악한 일, 그리고 선과 악이 뒤섞인 것들을 놓고 다투었다. 여름이나 겨울의 견딜 수 없는 날씨까지 이들에게는 더 힘든 일이었다. 자살도 전염병처럼 번져갔다.
양치기는 3년 전부터 도토리 10만 개를 매일 100개씩 심었다. 2만 개가 싹이 나왔다. 그중에서 1만 그루가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나이 쉰다섯 살의 '알제아르 부피에'였다.
작가 장 지오노는 젊은 나이였다. 그때 지오노의 이기적인 생각은 자신에 관계된 일이나 행복을 추구하는 미래를 상상만 했었다. 30년 후에는 1만 그루 떡갈나무가 멋진 모습일거라고 말했다. 이에 부피에는 간단히 대답했다. 만일 하나님이 30년 후까지 나를 살아있게 해주신다면, 아주 많은 나무를 심겠다고 했다. 1만 그루는 바다의 물 한 방울과 같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87세가 넘도록 너도밤나무 자작나무 등을 심어나갔다.
세월이 지나고 나니 황폐했던 사막에 물이 흐르고, 버드나무와 갈대가, 기름진 땅이, 꽃들이, 그리고 삶의 이유 같은 것들이 되돌아오고 변화가 일어났다. 부드러운 숲의 바람이 불고 마을이 되살아났다. 옛 주민들과 새로 이주해 온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엘제아르 부피에 덕분에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인간에게 주어진 힘이란 참으로 놀랍다. 위대한 혼과 고결한 인격을 지닌 한 사람의 끈질긴 노력과 열정의 결과가 아닌가. 엘제아르 부피에는 성서의 예언자나 동양의 현자를 닮았다. 부피에를 작가 장 지오노는 성자라고 했다. 성서에 나오는 '엘르아잘'이란 이름과도 비슷하다.
'엘제아르 부피에'를 지켜보며 실화를 소설로 쓴 '장 지오노' 역시 위대한 성자라고 부르고 싶다. 나무심기를 장려하기 위해 이글을 썼다고 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울창한 숲을 볼라치면 먼 얘기인 듯하다. 천혜의 금수강산에 우리는 감사하며 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