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이 입춘이라면, 3월은 경칩이다. 경칩으로 시작하는 봄은 새로운 봄이다. 겨울의 끝자락을 놓지 않으려고 앙탈을 부리던 추위도 속절없이 녹아 내렸다. 경칩인 오늘 아침만 해도 영하였던 날씨는 걷기를 끝내기도 전에 기온은 쑥 올랐다. 등줄기의 한기는 어느새 땀으로 축축해 졌다.
간혹 꽃샘바람이 불기는 하지만 3월에 부는 바람은 얼굴에 부드럽게 다가온다. 봄바람 덕분에 언 땅이 녹고, 메말랐던 나뭇가지에는 새 잎새와 꽃봉오리가 움틀 준비를 시작한다.
나는 아침마다 산책을 나선다. 출발은 조그만 설레임이 앞서서 걷는다. 단지내 제일 먼저 봄이 오는 곳으로 발길을 옮긴지 한 달여, 오늘은, 오늘은 하며 기다리는 시간은 조바심만 앞선다. 꽃망울이 입춘이 지나면 터지는 곳이 아니던가. 그런데 날씨탓인지 올해는 더 애을 태운다. 경칩이 가까워오니 꽃봉오리 몇 개가 개안을 하고 봉올봉올 했다. 그런데 겨을의 몽니가 순순히 보내지 않는다. 겨울 기나긴 밤 서리서리 이불 속에 두었던 사랑을 보내기 아쉬웠던 탓일까. 다시 겨울에 꽃잎은 동(凍)아리에 움추러 들었다 열다를 반복한 2월이 아니었던가.
'에라, 늦으면 어떠랴!' 봄을 넘는 겨울은 없다고 위안을 삼으며 경칩을 기다렸나보다. 우리 범인의 성급함을 가르치려는 것일까.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 매화야말로 과연 사군자 중의 으뜸이 아닌가!
매화는 조선의 선비들의 좋아하던 그림의 주제였고, 선비의 품성에 비견하기도 했었다. 군자君者는 성품이 고결하여 본보기가 되는 사람을 뜻하는데, 초봄의 추위를 무릅쓰고 꽃을 피우는 매화는 고난 속에서도 강한 의지를 굽히지 않는 군자에 비유된다. 조선 후기에는 큰 병풍 그림으로 재생산되기도 했었다.
나는 경칩날 아침은 마음이 더 급해졌다. 개구리가 놀라 깨어나는 날에 매화도 놀랐는지 잠에서 깨어나 꽃봉오리를 열어져치고 있다. 어제 움추렸던 봉오리는 얼마나 더 터졌을까? 경사로를 숨가쁘게 단숨에 올라서는데 쨍한 볕에 발그레한 분홍이며, 은은한 은색 봉오리가 환하게 웃고 있지 않은가. 윙윙윙 벌들이 아침 인사를 하려고 이꽃 저꽃 분주히 날아든다. 옥합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벌들도 얼마나 매화 봉오리 앞에 서성였을지 가히 짐작이 된다. 반가운 마음에 핸드폰에 담았다. 어제보다 얼마나 더 피었을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는 대목이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천안 지역에서는 우리 아파트 단지내 매화가 제일 먼저 눈을비비고 일어나지 싶다. 몇 년 전에는 포근한 날씨 탓에 입춘 무렵 개화를 한 것에 비하면 많이 늦은 것이다.
이제는 안심해도 좋다, 환한 눈인사까지 나누었으니, 천변으로 가볍게 발걸음을 향한다. 흐르는 물에서는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햇빛에 번쩍이는 은색들이 물속으로 넘나든다. 피라미들도 경칩에 신이 났나보다. 들오리들은 쌍쌍이 부지런히 노를 젖는다. 경칩날에 개천 터주대감인 황새도 나섰다. 이들은 분주히 자맥질에 빠졌다. 경칩일에 개구리 사냥을 나왔을까? 날뛰는 피라미 사냥을 하는 것인가? 늠름한 자태의 숫놈과 카리스마 넘치는 암놈의 자태는 대조적이다.
천변을 걸으며 환하게 웃는 매화는 옛사랑의 얼굴로 떠오른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입가의 미소는 분홍 꽃잎이었었지. 이런 매화의 매력에 퇴계 이황도 빠져서 혜어나오지 못했나보다. 매화의 사랑이 두향과의 연정으로 발전한 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두향의 일편단심은 바로 매화의 화신이란 생각이 자꾸만 나의 발길을 더디게 한다.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前身應是明月 幾生修到梅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