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것은 무슨 싹일까? 아하! 둥근 것도 있고 뾰족한 것도 있네.
봄볕이 따사로운 날 청수동 아파트 정원에 나오니 벌써 나뭇가지에 변화가 있다. 경사진 곳을 오르다 얼음이 풀린 흙에 발이 미끄러졌다.
산길 들길을 걸어 학교 가던 어린 날의 봄 길, 고무신에 진흙이 달라붙어 걸음 떼기가 힘들었다. 하얀 양말까지 흙이 묻으면 울고 싶었다. 그때를 더듬으며 신발의 흑을 털다가 눈을 드니 멀리 아련한 녹색이 보인다.
▲ 버드나무
버드나무다. 제일 먼저 가지 끝에 물을 올려 봄을 알리는 나무다. 햇살에 등까지 따스하니 ‘천아안 삼거리 흐 으으 응!’ 노래가 절로 나온다.
걷다 보면 눈에 드는 것이 많다. 눈이 맞으면 마음이 가고, 마음이 동하면 몸이 굽어진다. 산수유 가지에 가까이 가니 딱딱하게 싼 꽃봉오리가 살짝 열려 노란색이 조금 보였다. 따사로운 햇살 며칠 더 받으면 노란 꽃술이 ‘짠!’ 하는 소리와 함께 요술처럼 나올 듯하다.
▲ 매화
옆으로 걸음을 돌리니 매화도 가지마다 동글동글 꽃망울을 달았다. 꽃을 싼 껍질이 여리다. 같은 줄기에 달렸어도 꽃봉오리 하나는 분홍색이 유난히 짙다. 특별하게 햇살의 사랑을 더 받았다고 ‘호호’ 웃음을 금방 터뜨릴 듯하다
다른 나무엔 어떤 변화가 있나 여기저기 나뭇가지를 유심히 본다. 아직도 죽은 듯 꿈쩍 않는 자귀나무와 목백일홍도 보이고 가녀린 가지에 푸른 점 같은 망울을 다닥다닥 달고 기지개를 켜는 싸리나무도 있다.
▲ 산수유
자세히 보니 나무에 따라 꽃봉오리 모양이 다르다.
산수유, 매화, 동백의 꽃봉오리는 둥글고, 목련, 개나리의 꽃봉오리는 뾰족하다. 꽃의 모양에 따라 감싼 모양이 다른 것은 당연한데도 새로운 것을 발견한 양 즐겁다.
▲ 단풍나무
잎을 둘러싸고 나오는 싹의 모습도 다르다. 단풍, 찔레, 마로니에의 잎은 크기는 달라도 모양이 뾰족하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사철나무는 잎 싹은 둥근데도 감싼 모양은 뾰족하다. 아하! 옆에 달린 사철나무의 잎을 보니 둥글지만 조금 길쭉하다.
꽃봉오리와 입 싹을 보니 그간 만났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매화나무에 달린 둥근 꽃봉오리를 보면 많이 웃는 사람, 너그러운 마음 밭을 가진 이를 보는 듯 마음이 편안하다. 무슨 말이든 들어줄 것 같고 힘들다고 말하면 감싸줄 듯하다.
그들을 보면 자주 입과 눈 밑의 주름이 올라간다. 그것도 부드러운 곡선으로 올라간다.
▲ 사철나무
사철나무 싹을 감싼 듯 마음 밭이 뾰족한 사람은 나오는 표정이 딱딱하다. 부정적인 말이 자주 나오기도 한다. 당장 듣기에 거북해서 고개를 돌리고 싶을 때도 있다.
식물이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것처럼 사람도 시대와 환경과 유전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니 무조건 그 사람이 왜 그러냐고 탓할 수 없다. 또 현재 상황이 어떤가도 있다.
▲ 목련
어린 날에 입은 상처가 아직도 있거나 힘든 시기를 보내는 중일 때 무조건 웃으라 한다고 웃음이 오는 것이 아니다. 목련꽃이 겨울바람을 이겨내려 털로 꽁꽁 싸매듯 마음의 상처를 단단한 껍질로 싸매고 있는 사람일 수 있다. 겉모습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이유다.
장미같이 크고 화려한 꽃이 예쁘다고 하던 시기가 지나니 봄을 이기고 나온 별꽃도 예쁘고 이름이 괴팍한 광대풀꽃도 예쁘다.
나무를 보며 꽃봉오리가 더 중요하고 잎이 덜 중요하다고 하지 않는 것처럼, 가끔 미운 생각이 드는 사람도 다 제 몫이 있어 태어났다고 생각하면 내가 만나는 그 누구도 소중하다.
▲ 벚꽃나무
누구는 매화처럼 생기를 갖게 하고, 누구는 국화처럼 삶의 깊이를 깨닫게 한다. 두꺼운 껍질로 싼 목련이나 후박나무 꽃같이 두툼하고 화려한 꽃을 피우는 이도 있고, 벚꽃같이 화려했다가 한순간에 화르르 꽃잎을 날리는 있다. 들깨보다 더 작은 꽃을 달고 제일먼저 봄을 알리는 별꽃 같은 이도 있다.
그러니 누가 어떠하다 탓할 일이 아니다.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기쁨을 그저 누릴 일이다. 나는 여기 너는 거기, 그리고 봄처럼 깨어나고 피어나고, 여름처럼 키우고 뻗어가고, 가을처럼 익히고 내리고, 겨울처럼 조용히 힘을 키울 일이다.
봄이다. 매화나무에 달린 꽃송이처럼 발그레한 얼굴을 들고 신나게 걷는다. 나도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