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이란 단지 시작일 뿐이라는 점이었다. 어떤 사람이 한 가지 결정을 내리면 그는 세찬 물줄기 속으로 잠겨 들어서, 결심한 순간에는 꿈도 꿔보지 못한 곳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글이다. 스페인의 양치기 소년은 연거푸 꿈에 나타나는 일을 어떤 계시라 믿고 키우던 양을 다 팔아 고향을 떠난다. 바다를 건너고 사막을 건너 피라미드 근처에 묻힌 보물을 찾으러 가는 중에 여러 사건과 여러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마침내 꿈을 이룬다는 이야기다.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이 있나. 잠을 잘 때도 꿈을 꾸고 일상에서도 꿈을 꾼다. 두 가지 다 ‘꿈’이란 말이니 어쩌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는 않을까.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꿈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고 주인공 산티아고가 생각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보고 사람을 보듯, 꿈을 꾸는 것도 해석하는 것도 다르다. 그 꿈을 어떤 이는 찾아 나서고 어떤 이는 그저 꿈으로 간직한다.
소설 속 주인공 산티아고는 꿈을 그저 꿈으로 두지 않는다. 2년동안 자기의 말을 알아듣고 함께 잠자고 깨어나던 양을 팔아 꿈속의 장소를 찾으러 떠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있는 곳이다. 자기 나라를 떠나 배를 타고 도착한 나라는 언어가 다르고 종교가 다르다. 도착한 날 전 재산을 잃지만, 그는 꿈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보다는 방법을 찾는다.
크리스털 상점에서 일하고 돈을 모으던 그는 상점주인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는 자기의 평생소원이며 의무는 메카로 순례여행을 가는 것이지만 실현하지 못할 것이라 대답한다. 가게 앞을 지나는 수많은 순례자들을 보면서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이유는 꿈을 실현하고 나면 살아갈 이유가 없어질까 두려워서란다. 하나를 이루면 또 다른 변화에 대한 갈망이 있지 않을까?
무어인들이 평생의 소원으로 하는 성지순례든 일반인이 하는 여행이든 여행에는 예기치 못한 만남과 사건이 있다. 새로운 즐거움이 있고 발견도 있다. 그리고 고난도 맞이할 수 있다. 더구나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는 긴 여행은 나를 다른 세상에 내려놓는 것이며 다른 이의 생각과 삶을 안는 것이다. 또다른 세계와 내가 만나는 엄청난 일이다.
여행지가 아닐지라도 내가 맞은 오늘은 어제와 완전히 다른 공기, 다른 바람, 다른 하늘, 다른 냄새 속에 있는 것이다. 항상 만나는 가족도 어제의 그가 아니고 사랑하는 이도 어제의 그가 아니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여행이라 하더라도 내가 아닌 너를, 우리가 아닌 너희를, 내가 머물던 곳이 아닌 새로운 곳에서 머무는 것은 설레는 일 아닐까.
‘보물을 찾으러 가겠다고 결심했을 때만 해도 크리스털 상점에서 일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지. 마찬가지로 이 대상들을 따라 사막을 건너기로 한 것도 내가 결정한 일이긴 하지만 앞으로의 여정은 아무도 알 수 없는 거야.’
주인공 산티아고의 독백이다.
어젯밤도 잠을 잘 못 이뤘는데 오늘도 머리가 아프다. 내가 결정한 일 때문이다. 하라고 한다고 문단의 대표 일을 맡았다. 새로운 문학행사가 더해지니 일도 커졌다. 시퍼런 물이 휘돌아가는 내의 징검다리 보고 건너기를 두려워하는 여섯 살 아이처럼 머뭇거린다. 결정했으니 안 건널 수도 없다.
그러나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 미래의 일 아닌가. 미리 걱정하기보다는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중이라고 나를 위로한다. 가장 중요한 목적을 잊지 않는다. ‘행복하기 위해 간다. 모든 이를 만족하게 할 수는 없지만 여행하면서 많이 만나고 많이 웃자. 순간순간 맞는 어려움을 극복하면 내게 힘이 들어올 것이란 생각을 하자.’ 등이다.
산티아고처럼 ‘혹시 내가 전에 이런 꿈을 꾼 적이 있는가, 그리고 이 결정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일이었나?’를 생각하다보니 갑자기 책속 주인공이 만난 현자의 말이 떠오른다.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 데 있도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그래, 나는 혼자가 아니다.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도 있고 함께 하는 너도 있다. 게다가 우리를 돕는 우주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