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 홍련 연꽃향취 물씬
옛 조상들의 삼복 중 여름 놀이는 연못가에서 연꽃 구경하는 일이었다.
수렁밭에서 티끌 하나 없이 피어나는 연꽃을 봄으로써 세속에 오염된 마음을 씻는다 하여 세심(洗心) 놀이라고도 했다. 밤에는 금남의 여인천하가 되는데 연꽃에 빌면 금실이 좋아지고 아들을 많이 낳을 뿐 아니라 낳은 아기가 장수하는 것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연꽃은 한 꽃받침에 두 꽃송이가 피어나기에 좋은 금실을, 연밥에 씨가 많아 다산을, 그리고 연밥의 씨는 수백년 생명을 유지한다 하여 장수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러는 연꽃의 연(蓮)이 사랑할 연(戀)과 음이 같고 연의 다른 이름인 하(荷)가 중국발음으로 화(和)와 음이 같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여름향취의 연꽃
여름 정취와 선비적 향취를 즐기려는 발걸음이 인취사로 향했다. 올해 벌써 14회째 맞는 ‘백련시사’는 아산의 대표적인 연꽃축제.
공휴일이면 시객과 풍류객들이 모여 연꽃을 향한 노래가 모여지니 만개한 연꽃과 함께 여름이 저문다. 학성산 자락인 인취사에 들어서자마자 작은 연못에 벌써 백련이 필까말까 뽀얀 얼굴을 객을 향해 내밀고 있다. 비가 오는 점심나절은 연꽃향내가 진동하며 사진예술가들이 진을 치고 연꽃을 찍어대느라 정신이 없다.
해질 무렵 백련(白蓮) 가득한 인취사 연못가에 붉은 색 연등이 하나 불을 켜면 이곳은 말 그대로 연화장 세계가 된다.
주지 혜민(惠民)스님은 ‘부처님이 영산회상에서 가르치실 때 묵묵히 연꽃을 드니 가섭존자(제자)만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었다’는 얘기가 떠오른 듯 “연꽃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 가르침이 전해진다”고.
절 안팎에는 어릴적에만 해도 흔했는데 지금은 보기 힘든 깽깽이풀, 딱총나무, 산작약 등이 눈에 띈다. 자생종인 옥잠화와 외래종인 비비추도 설명을 들으니 금방 구별된다. 절길 위로는 칡넝쿨이 피었는데 혜민스님은 보라색 꽃은 말려서 달여 먹으면 아주 향기로운 차가 된다는 상식도 가르쳐 준다.
혜민스님은 “산이 높고 골이 깊으면 절이 크고 산이 낮고 골이 얕으면 절이 작은 법”이라며 큰 건물을 짓고 큰 불상을 모시는 대신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더 심는 것을 불사(佛事)로 삼고 처사 한명과 함께 백련을 키우는 연못을 가꿔왔다. 잠자리 메뚜기 등 온갖 곤충이 찾아들고 흰백일,홍, 청포 등과 이름 모를 들꽃도 자라고 있었다.
어찌 백련뿐이랴
인취사는 백련이 유명하지만 지금은 비닐 하우스에서 5종류의 노란 황련, 핑크 빛 연 1종, 하디루터스라 불리는 홍련까지 구경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이런 희귀 연꽃은 미국 LA나 버지니아 등지에서 물 건너 온 품종으로 원로화가이자 서울대 미대학장인 서세욱 선생이 자비를 들여 전 세계에서 구해오기도 했다고.
혜민스님은 연은 가장 원시적이고 불교적인 식물이라고 말한다. 또한 연을 기르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환경캠페인이 된다고 한다. 스님이 연을 통해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생태계를 복원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연은 수질과 토질과 대기가 아주 깨끗한 환경에서만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스님은 환경운동은 생태계를 진정으로 이해하는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생태계는 아주 민감하기 때문에 수질이나 토양, 대기 중 하나만 파괴돼도 자연 질서는 금새 무너지기 마련이라며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해 내 스스로가 먼저 환경을 오염시키는 오염원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혜민스님은 자연환경만큼 중요한 것이 정신환경이라고. 정신이 맑고 제대로 된 사고방식을 가져야 우리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며 관공서에서 공무원들이나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정신교육 강의시간을 때때로 갖는다.
▶인취사 찾아가기
혜민스님과 연, 마당에 개 한 마리, 새, 스님의 공양을 담당하는 거사 한 분이 인취사를 지키는 전부다. 백련 향 가득한 인취사는 연의 계절에 꼭 한 번 들러볼 만한 전통사찰이다. 인취사에 가면 혜민스님이 우려주는 차 맛도 볼 수 있다.
장항선 온양온천역에서 내려 순천향대 방향으로 택시를 타면 1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다. 자가운전을 한다면 순천향대 방향으로 가다가 육교밑에서 우회전해 3백m 진입하면 경남제약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 ☎041)542-6441 인취사
연 꽃
주돈이(周敦1017- 1073년) 중국북송시대 유학자
내가 연꽃을 사랑하는 것은
진흙 속에서 낳지만
더러움이 물들지 않고
맑은 물에 씻겼어도
요염하지 않으며
줄기가 곧고 덩굴지지도 않고
가지도 치지 않기 때문이다.
꽃향기는 멀어질수록 맑아지며
우뚝선 깨끗한 모습은
멀리서 바라볼 뿐
함부로 가지고 놀 수는 없으니
연꽃은 꽃 중의 군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