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두던 사람 어디 갔나.”
포장으로 으름장을 놓자, 맞은 편에 앉아있던 노인은 한 수 무를까 하며 주위를 먼저 살핀다.
그러나 이번 장기판은 노인정에서 두는 장기와는 전혀 달라 앉았던 자리를 비워야 했다.
지난 8일 아산노인종합복지회관 3층에서는 제1회 장기대회가 펼쳐졌다. 동네에 장기로 한몫 한다면 하는 어르신들 35명이 모여 8월 한낮 더위를 잊은 채 장기에 몰두했다.
최우영 아산시노인종합복지회관 사회복지팀장은 “충남도지사기 장기대회를 눈앞에 두고 있어 이같은 대회를 마련했다”며 “노인들의 기량을 맘껏 뽑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기쁘다”고 말했다.
16강에 진출한 박재열(65·풍기동)씨는 “자전거 타고 오느라 늦었는데도 이겼잖아. 하하 기분 좋지 뭐”하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심판을 보던 이원식(70·아마4단)옹은 “더운데 노인네들 집에 있어봤자 뭐해. 이렇게 와서 장기나 한판 두며 덕담을 나누는 거지. 오늘 보니 실력들이 쟁쟁한데 최고 우승자 나오면 다들 부러워하겠어”라며 분주히 장기대회장을 누볐다.
장기대회 동안 단 한 명의 할머니도 보이지 않자, 한 할아버지는 “할망구들은 어디 갔어. 차가운 냉커피라도 타와야지” 하자, 대회장을 지나 무용실로 가던 할머니는 “예쁜 할망구들이 지나가는 것만 봐도 황송한 줄 알아야지” 하며 응수, 대회참가자들은 장기판도 잊은 채 일제히 웃어 제꼈다.
어느덧 더위는 사라지고 어르신들의 호연지기가 장기판 속에서 무르익어 갔다.
“붕알 친구하고 함께 대회 나오니 좋네. 그런데 왜 이런 대회는 1년에 한번뿐인거여” 임상열(65·온천1동) 어르신은 불만을 토하기도 했다.
“노인들이 갈 곳이 많았으면 좋겠어. 놀러 갈 때도 없고 일도 시켜주지도 않고, 우리처럼 일 잘하고 꾸준히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어딨다고… 그래도 오늘은 이런 대회라도 있으니 좋구먼”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노인들이 많았다.
최우영 사회복지팀장도 “첫 장기대회지만 어르신들이 대접받을 수 있고 일도 할 수 있는 공간이 아산시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며 “오늘 대회는 충남도지사기에 출전하기 위한 대회였지만 어르신들의 친목을 함께 할 수 있어 기뻤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1등에는 전태진씨, 2등은 박재돈씨, 3등은 조광래씨로 충남도지사기 장기대회에 출전하는 동시에 아산시 장애인복지회관의 트로피와 상금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