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황석영의 『모랫말 아이들』을 읽다보면 ‘내 애인’이라는 짧은 이야기가 나온다. ‘애인(愛人)’이라 하니 설레임이 크다. 결혼하고 나서야 점차 세월에 망각되어가는 것이 ‘애인’이라는 단어일 것인데, 한 때는 죽자사자 매달렸던 ‘모든 것’이 흐릿해지고 모호해지고 급기야 ‘내가 언제 그랬던가’ 싶은...
-영화네 집은 역전 네거리에 있는 이층의 목조건물이었다-로 시작되는 글은 ‘나(수남)’와 ‘영화’가 등장한다.
영화는 나와 3년간 한 반이었던 계집아이로, 어느 때 말썽을 피워 그 벌로 청소를 하고 늦게 학교를 나와 시장을 지나다가 곡예단의 공연장에서 막 나오는 영화와 부딪쳤다.
‘영화’라는 계집아이를 생각하면 연상되는 단어들이 있었다. 2학년까지만 해도 키가 작아 앞줄에 서곤 했다는 것, 기지촌에 살았다는 것, 아침마다 미군이 반달퀀셋에 학교까지 태워주었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그 애를 ‘양갈보’라고 심하게 놀려댔던 것 등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수남이에게 영화는 반에서 제일 예쁜 계집아이였고, 자기가 은근히 좋아했다는 점이다. 늘 속눈썹이 길다란 눈을 아래로 착 깔고는 교실 구석에 혼자 앉아 있고는 했던 그녀.
그런 그녀와 우연히 마주쳤는데, 영화는 배고프겠다며 내 손을 잡고 가게로 갔고, 우리는 단팥죽과 빵을 사먹었다. 그때의 기분은 뭐랄까?
꿈꾸는 듯한..
그런 수남이에게 영화의 한마디. “너한테 뭐 줄게, 우리집에 잠깐만 같이 갈래?”
이건 꿈이 맞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꿈, 내가 태어나서 꾸었던 꿈중에 제일 좋은 꿈.
영화네는 댄스홀을 하고 있었다. 그녀를 따라가는 수남. 홀에는 무섭게 화장한 여자들이 거의 벌거숭이 몸으로 웃고 떠들며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우리는 계단을 오르고 복도를 지나 맨 끝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군용 야전침대가 놓였고, 신문지로 바른 벽 위에는 양키들의 잡지에서 오래낸 벌거숭이 여자들의 사진들이 붙어있다. 냄비와 그릇 따위의 취사도구와 여자 어른들의 속내의가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다.
영화가 경대서랍을 열더니 초콜릿을 꺼내어 반을 뚝 꺾어서 내민다. 손팽이라고 하는 신기한 서양장난감, 요요도 나에게 주었다. 신기한 듯 요요를 돌려보는데 거칠게 문이 열리면서 술에 만취한 여자가 들어왔다. 여자의 등뒤에는 검둥이 병사가 버티고 서있었다. “아이구, 내 새끼로구나, 야야 엄마 돈 벌어야지, 오케이?”
영화는 아무 말없이 복도로 나왔고, 이제 그만 가려는 수남이 손을 잡아끌었다. 복도의 맨 끝에 있는 문으로 나가, 다 썩은 계단에 둘은 나란히 걸터앉았다.
“여기선 기차가 오가는게 잘 보여. 별두 잘 보인단다.”
영화는 갑자기 내 어깨를 잡더니 볼에 입을 맞췄다. 나는 어쩐지 집에 돌아가고픈 생각이 들질 않았다.
‘내 애인’은 여기서 끝나있다. 둘의 그 뒤가 사뭇 궁금해진다.
‘애인’ 같은 것은 아니지만, 나 또한 비슷한 추억이 있다. 더 어릴 적인 여섯 살. 당시는 면 전체에 유치원이 하나 뿐이었다. 아이들도 달랑 14명 뿐이었고, 결혼 안 한 여자선생님 둘이 있었는데 한 분은 여성스럽고 예쁜 반면 다른 한 분은 성격 좋은 선머슴 같았다.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현실인지 꿈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어느 기와집 같은 곳. 대문도 커다란 나무문으로 기억된다. 그리고는 방 안. 초췌한 한 여성분이 두꺼운 이불을 푹 덮고 얼굴만 나와 있다. 내 옆에는 유치원 친구였는지, 여자아이가 다소곳이 있었다.
여자아이가 병간호를 했는지, 음료를 어머니에게 들이밀었는지, 기억은 안개속 같아서 명확하지가 않다. 그저 예쁜 효녀라는 생각이 들었었던 것 같다. 내가 왜 거기에 있었는지, 아마도 여자아이가 가자 해서 따라온 것 같기도 하다. 기억은 그게 끝이다. 쥐어짜도 더는 생각나는 것이 없다.
그로부터 몇년의 시간이 흘러 당시 국민학교(지금으로는 초등학교) 5학년때, 어느 날 운동장에서 눈에 익은 여자아이를 발견했다. 느낌적으로 눈이 따라갔다. ‘눈에 익다’는 말은 너무 주관적이다. 어디선가 많이 봐서 익은 것 보다는 기억속의 금제된 무언가를 엿보는 듯한 것이었다.
그녀는 다른 또래 여자아이들과 어울렸으나 이질적인 구분이 뚜렷했다. 서울에서 전학온 계집아이가 시골아이들과 어울린 듯, 피부색부터 웃을 때 그녀 주위로 아주 밝고 순수한 빛이 모락모락 풍겨나오는 것이. ‘못보았던 얼굴인데..’, ‘금방 전학이라도 온 것인가..’ 차마 가까이서 쳐다볼 수는 없는 사내아이의 부끄러움이 조금 멀리서나마 시력좋은 눈을 하고는 설핏 설핏 순간적으로 바라보았다.
어느날 집으로 향하는 길. 교문을 나서자 저 앞에 그 아이가 걸어간다. 나는 내 집으로 가는 같은 방향인 것을 확인하고는 저만치서 뒤따라 가는 양 빨리도 늦지도 않게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걸어간다. 그리고는 점점 확신 아닌 확신처럼, 기대를 한다.
▲ 벌써 오래 전 이야기. 지금은 골목길 하늘색 대문이 철제로 바뀌었나 보다. 아마, 저 집이었을 거야. 기와집에 나무대문이 있었던 오랜 옛날.
저 길에서 오른쪽 골목으로 가다 커다란 나무문이 있는 집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계집아이가 그 집 딸이지 않을까 하는, 바로 내가 아는 꿈같은 그녀가 저 아이가 아닐까 하는..
대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야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멍한 상태로 그 대문을 노려보고야 말았다.
확인은 하였으나, 대문을 열고 들어가 ‘혹시 너, 그때 그아이 아니었니?’ 라고 물어보기에는 12살 소년의 마음이 무척 부끄러웠다. 그 대문을 살금살금 지나가면서, 발걸음은 아주아주 느릿느릿, 보폭도 느릿느릿, 뒤돌아서면서 대문을 흘낏흘낏 바라보며 혹시 그 아이가 대문을 열고, ‘너는 그때 그 아이는 아닌가?’ 하고 물어보길 바라면서..
그 대문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나는 더 이상 꿈을,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다. 다시는 이런 기회를 갖지 못할 것임을 아는 까닭에..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계집아이는 다시 학교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6학년을 마저 졸업하였는데, 내 눈에 띄지를 않았을 뿐인가 하여 아주 오랜 후에 앨범을 뒤적거려 보았으나 그 곳에 그녀는 있지 않았다.
그같은 인연이, 추억이 생을 따스하게 하기에.. 황석영의 ‘내 애인’을 읽으면서 다시 마음 깊숙이 ‘내 애인’이라며 끄집어내어 본다. 추억은 그렇게 미화되는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