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나는가 하고 창밖을 보았더니 나뭇잎 몇 장이 훌훌 제멋대로 날다가 내려앉는다. 그 순간 그곳에 바람이 일었던 것이다. 조용히 머물고자 하나 잎줄기가 긴 잎에 바람이 오면 순간 흔들리는 것처럼, 마른 잎이 회오리바람에 속수무책으로 날아오르는 것처럼, 사람도 순간순간 흔들리는 마음 잡아가며 사는 것 아닐까.
19세기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나 플로베르의 『보봐리 부인』, 스탈당의 『적과 흑』 속의 주인공은 불륜 때문에 비극을 맞이하지만, 2022년 노벨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이나 에쿠니 가오리의 『웨하스 의자』에 나온 여자주인공은 남이 정죄하지 않아도 스스로 불안해한다. 그러나 파울로 코엘료는 불륜을 다른 시각으로 이야기한다.
오랫동안 꿈꾸던 여행이지만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역시 집이 최고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일상이 시들하고 우울해서 새로운 변화를 찾던 여자가 불륜이란 금기를 경험한 후 남편과 더 뜨겁고 안정된 사랑을 찾는다는 소설, 인생에서 일탈이 있을 수 있고 불륜도 하나의 일탈일 수 있다며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따뜻하게 보듬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불륜』에 나오는 여자주인공은 스위스 제네바의 유명한 신문사 기자다. 능력과 미모도 뛰어나다. 그녀는 최고급 백화점의 물건 중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망설임 없이 다 담을 수 있는 남편과 초등학생 아들 둘이 있다. 가족은 해마다 멋진 해변으로 긴 여행도 간다. 특수 부유층이 누리는 모든 행복을 다 누린다고 생각하던 그녀가 어느 날 문득 의문이 든다. ‘고작 이게 다야?’ 이유가 있다. 전날 인터뷰했던 남자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아서다.
“행복해지는 것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삶을 열정적으로 살고 싶어요. 위험한 일이지요.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절대로 알 수가 없으니까요.”
그 시간에 그녀는 그가 ‘불쌍한 사람, 만족이란 걸 맛본 적이 없고 분명 슬픔과 회한에 젖어 삶을 마치게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자기가 결코 위험을 무릅쓰지 않은 사람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삶, 죽음, 사랑 혹은 사랑의 결핍, 새로운 모든 것이 단숨에 습관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반복되는 일상에 자기 인생 최고의 시절을 낭비하고 있다는 초조함이 오면서 남들이 생각하는 행복하고 완벽한 삶에 진절머리가 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세상에서 제일 평안하고 행복한 곳은, 실은 제일 지루하고 재미없는 ‘천국’이라고 말하던 사람들처럼.
마침내 그녀는 우울증 진단을 받는다. 음식은 아무 맛이 없고 아침이면 깨어나 살아야 한다는 것이 두렵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환한 미소를 짓지만 참을 수 없이 울고 싶다. 앞마당에 하얗게 떨어지는 햇살도 잿빛으로 보인다. 정신과 의사를 만나고 점술사를 만나도 우울한 마음은 나아지지 않는다. 삶에 변화를 두고 싶다고 생각하다가도 겁이 난다.
그러다가 어느 날 유명한 정치인이 된 고등학교 동창을 인터뷰하게 된다. 고등학교 때 숨어서 첫 키스를 했던 남자다.
그녀는 고등학교 때 느꼈던 마음을 되살리며 그 남자와 사랑을 나눈 후 바다처럼 거칠고 격정적인 면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 남자의 아내가 알까 두렵지만, 그 아내의 일을 세세하게 알려는 호기심과 질투심도 생긴다. 그러는 자신이 비참하다 느끼기도 하지만, 우울한 잿빛 삶보다는 낫다는 생각도 들고 오히려 변화한 자신을 즐기기도 한다. 그러다가 그 남자가 단지 봄 햇살에 털을 고르다 자리를 옮기는 고양이 같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는 남편을 돌아본다.
한결같이 아내를 사랑하고 가정을 보듬는 남편을 보면서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려 한다. 아내의 변화를 알면서도 감싸는 남편을 보며 더이상 방황도 변화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다시 찾은 충족이다. 집안과 자기 주변을 둘러보며 감사한 마음과 행복한 마음이 찾아온다. 부족한 부분이 충족되면 마음에도 근력이 생기나 보다. 헤집어 보고 싶은 것을 마음껏 헤집어 본 후, 호기심이 사라진 것처럼.
여자만 그럴까. 그녀의 남편이 궁금하다. 다 알면서 아내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남편이다.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아내의 불륜도 눈감아 줄 수 있는 사랑이다. 이제 그녀도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고 내가 더듬어 보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을 안 것 같다.
‘인생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이 나를 선택한다. 인생이 왜 내게 기쁨과 슬픔을 안기는지 물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그냥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기쁨과 슬픔으로 무엇을 할지는 결정할 수 있다.’
파울로 코엘료의 멋진 말을 가슴에 안았다. 불륜도 그저 살다가 저지르는 실수고 더 나은 행복을 찾아가는 길 중에 겪는 슬픈 일의 하나라는 작가의 생각에 공감하는 이가 많은 시대를 사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