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강구안이 아름다운 것은 ‘내어줌’ 때문이다.
굽이굽이 도는 곳마다 쪽빛 보석을 안은 통영, 통영의 바다는 내륙 안으로 들어와서 동글동글 논다. 어여쁜 여인의 오목한 손바닥 안에서 찰랑거리는 물 같다. 두 손을 펴는 순간 물은 구슬같이 반짝이며 쏟아져서 해가 나면 금물결, 달이 뜨면 은물결의 바다가 된다.
통영의 강구안(江口岸)이 사발에 담긴 모습으로 쪽빛 바다를 들일 수 있는 것은 애가 닳은 사내를 못 본 척 돌아앉았던 여인이 슬며시 치마 끝을 거두어 조금씩 다가올 자리를 만들 듯, 바다의 끝없는 애원에 뭍이 제 살을 조금씩 떼어 자리를 내주었기 때문이다.
바위에 부딪는 하얀 파도처럼 끊임없이 구애하는 청마 유치환에게 단단하게 묶었던 마음을 조금씩 내어준 정향 이영도처럼, 그리고 남편의 마음이 다른 여인에게 가는 것을 알면서도 전부를 잃는 것보다 반만이라도 갖겠다며 남편을 품었던 청마의 부인 권재순처럼 자리를 내주었기 때문이다.
파도는 몸이 완전히 깨져 흩어질 때까지 뭍에 호소한다. 그 바다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랑앓이 대장 청마는 바위를 치는 파도같이 울어 시가 되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파도야 어쩌란 말이냐/임은 뭍같이 까딱하지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날 어쩌란 말이냐
-그리움- 유치환
서른여덟 나이의 청마는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가정 선생, 단아하고 청초한 스물아홉살의 정향을 보는 순간 사랑에 빠졌다. 시간이 갈수록 그녀가 가슴에 꽉 찼다. 매일 그녀에게 사랑의 편지를 썼다. 그러나 정향은 그의 사랑을 거절할 수밖에 없다. 21살에 결혼해 딸을 낳았으나 남편이 폐결핵으로 죽어 혼자 키우는 중이다. 게다가 청마는 아내가 있는 남자다. 그러나 1947년부터 3년동안 매일 연서를 보내는 청마에게 정향은 조금씩 마음을 연다. 만월이 어우르니 창호지를 바른 문에 달빛이 스며들지 않을 수 없다는 듯이, 정향도 밀어내도 밀어내도 파도같이 밀려드는 그리움을 어쩌지 못하고 말간 달빛에 취해 문을 열고 시를 썼다.
생각을 멀리하면/잊을 수도 있다는데//고된 살음에/잊었는가 하다가도//가다가/월컥 한 가슴/밀고 드는 그리움.
-그리움- 이영도
통영에서 차를 타고 산모롱이를 돌다 보면 아! 하고 탄성이 절로 나온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육지 안으로 둥글게 들어와 반짝이고, 울컥 파도가 물을 뱉으면 크고 작은 배들은 하얀색 뱃전을 흔들며 어깨를 들썩인다. 그 위를 갈매기들이 날아오르고 내리며 풍경을 만든다. 통영의 몇 개의 항구 중 가장 아름다운 항구 ‘강구안’이다.
강구안(江口岸)은 글자 그대로라면 강이 바다와 맞닿은 입구 또는 육지로 바다가 들어온 항구를 말한다. 조금씩 조금씩 바다에 살을 내어준 육지는 에메랄드빛 물을 들여 아름다운 항구를 만들었다. 지금은 이동의 편리를 위해 낸 길로 곡선의 아름다움이 많이 줄었다지만, 그래도 강구안은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또 다른 풍경으로 감탄을 자아낸다.
육지로 오르면 더 부산하다. 부두를 낀 중앙시장에 들어가면 함지박 안에서 펄떡펄떡 뛰는 생선이 물을 튀겨 장을 보러 온 이들의 발을 적시는 일이 다반사다. 옹기종기 산자락에 있는 집들은 하얀 벽을 햇살에 말리며 또 수많은 이야기를 낸다.
청마가 사랑하는 정향을 생각하며 걸었을 부둣가와, 정향이 좋아하는 생선은 무엇일까 생각하며 기웃거렸을 중앙동 활어시장과, 정향에게 보낼 편지를 쓰던 중앙동 우체국과 우체국 앞의 빨간 우체통을 둘러본다. 파도가 칠 때마다 뭍을 내어준 강구안처럼 청마는 사랑하는 이에게 매일 마음을 내주었다.
통영의 강구안이 아름다운 것은 ‘품음’ 때문이다.
통영의 언덕인 서피랑 동피랑 이순신 언덕에 서서 바다를 보면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을 지나서 먼바다로 떠나고 싶다. 강구안을 떠나 하얀 물줄기로 곡선을 그리며 배가 사라지면 떠나는 설렘은 더해진다. 돌아오기 위해 떠나기 때문이다. 성서에서 돌아온 탕자를 두 팔 벌려 맞이하는 아버지 같은, 골을 내며 집을 나간 자식도 돌아오면 언제든 두 손을 잡으며 받아줄 엄마 같은 항구 강구안이 있기 때문이다. 산자락까지 오밀조밀 붙어 하얀 풍경을 이루는 집 안에 눈물 그렁거리며 반기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강구안은 바다로 고기잡이 나갔던 아버지와 오라비가 돌아오고, 먼 곳으로 공부하러 떠났던 아들과 딸이 돌아오고, 돈 벌러 갔던 그리운 이가 돌아오기 위해 들어오는 곳이다. 그곳에서 청마는 정향이 오길 기다린다. ‘오라 어서 오라.’며 기다린다. 항구를 봐도 행길을 걸어도 온통 그대 생각이다. 동백꽃은 피 뱉고 뜨락에 툭 떨어지는데.
상략
동백꽃 피 뱉고 떨어진 뜨락/창을 열면 우윳빛 구름 하나 떠 있는 항구에선/언제라도 네가 볼 수 있는 뱃고동이/오늘도 아니 오더라고/목이 찢어지게 알려오노니/오라 어서 오라/행길을 가도 훈훈한 바람결이 꼬옥/향긋한 네 살결 냄새가 나는구나/네 머리칼이 얼굴을 간질이는구나/그때사 네가 온들/빈 창밖엔/멧비둘기만 구구구 울고/뜰에는 나의 뱉고 간 피의 낙화
-낙화- 유치환
통영이 품은 사랑엔 기품이 있다. 그저 ‘사랑해’가 아니다. 허연 다리 드러내놓고 ‘내 아름다움을 보쇼’ 하는 사랑이 아니라 저고리 고름 살짝 잡아들고 실눈으로 보는 은근한 사랑, 아지랑이처럼 어루는 사랑이다. 정향의 사랑처럼. 장다리 노란 텃밭에 나비가 오길 기다리는 정향의 사랑처럼.
어루만지듯/당신 숨결/이마에 다사하면//내 사랑은 아지랑이/춘삼월 아지랑이//장다리/노오란 텃밭에/나비, 나비, 나비
-아지랑이- 이영도
청마는 1967년 교통사고로 죽는 순간까지 20년 동안 정향에게 편지를 썼다. 그의 나이 59세였다. 정향에게 쓴 편지는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것 말고 전쟁 이후의 것만 5000여 통이다. 정향은 청마 사후 200여 통을 추려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를 출간한다.
정향도 뇌출혈로 59세에 죽었다. 이영도는 정운이란 호를 나중에 썼지만 청마는 시 속에서 그녀를 늘 정향이라 불렀다. 청마는 사랑하는 것이 사랑받는 이보다 행복하다 했다. 많은 이가 그의 시를 읊으며 행복을 더듬는다. 통영이 품은 행복이다. 통영의 강구안이 품은 아름다움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느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이 훤히 내려다보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촘촘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에게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에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크러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행복- 유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