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김장이랄 것도 없는 김치 몇 포기를 담갔다. 아파트에서 배추를 절이는 것도 번거로워서 절임배추를 사다가 김장을 했다.

절임배추가 도착하기 전날 시장에 가서 부재료들을 샀다. 젓갈 가게에서는 멸치젓, 황석어젓, 새우젓을 수산물 가게에서는 생새우, 청각, 굴을. 야채와 과일 가게에서는 대파, 쪽파, 양파, 배, 갓, 미나리, 생강, 총각무와 동치미 무를, 마트에 들려서는 대추와 삭힌 고추, 건 고추, 생수 등 동치미에 들어갈 재료들까지 샀다. 내가 사고도 놀랐다. 김치에 이렇게 많은 재료가 들어가는 줄.

재료들을 다듬고, 씻고, 끓였다. 황석어젓도 다렸다. 얼마 전 뉴스에서 어느 아파트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었는데 삼겹살 굽는 냄새로 이웃간에 싸움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후여서 집에서 젓갈을 달인다는 게 걱정되었다. 달이는 내내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무엇보다 이웃에게 미안했다. 후드와 선풍기를 켜고 후다닥 다려서 한 그릇의 말간 액젓을 얻었다. 다행히 별일은 없었다. 젓갈을 달이면서 두 가지를 얻었다. 소금에 절여있던 조기가 불을 만나면서 투명하고 맑은 액체로 거듭나는 과정에서는 나이를 먹고 인생이 익어 갈수록 욕심 덩어리는 내려놓고 액젓처럼 맑아져야 한다는 것과, 김치 한 쪽도 이웃의 도움 없이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옛사람들이 품앗이로 김장을 하고 담장 너머로 김치를 나누던 뜻을 오늘에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두 번째로 멸치젓을 갈아서 채에다 내렸다. 흐물흐물했던 건더기는 간데없고 물만 남았다. 손가락으로 찍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입안에서 곰삭은 맛이 확 퍼졌다. 향기가 아닌 진한 냄새를 풍기는데 깊은 맛이 났다. 가진 것 다 내어주고 조용히 물러나 앉은 엄마 같은 맛이었다.

육수를 끓이고 찹쌀로 죽을 쑤고 마늘과 생강은 다듬어서 빻고 배, 사과, 양파는 갈아서 준비를 하여 첫 날 일정을 마쳤다. 김치를 담그기 위한 지금까지의 과정은 하나로 귀결되었다. 모든 재료들이 끓이고 갈아져서 액체로 변화되었다. 이 액체들은 배추에 스며들어서 자신은 사라지고 오직 김치로만 남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존재의 위대함은 자기의 이익보다 희생에 있음을 알았다.

이튿날 6시에 일어났다. 문 밖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택배로 도착한 절임배추의 물을 빼고, 총각무를 절이고, 채소들을 채 썰고, 어제 준비해둔 재료들과 찹쌀 죽, 고춧가루를 더해 속을 만들어 배추김치를 담고 총각무김치와 동치미까지 완성했다. 고추를 다듬고 마늘을 깐 시간을 더하면 김치 하나를 얻기까지 꼬박 3일이 걸린 셈이다. 이렇게 해서 얻어지는 음식이 김치였다. 참으로 대단한 음식이다.

남편이 도와주기는 했지만 김장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너무 힘이 들어서 김치를 하면서 몇 번이고 올해까지 만이라고 되뇌었다. 사먹으면 그만인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이러다 잘못되면 김치 값보다 병원비가 더 나올 텐데.’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성을 기울인 김치 맛과 사 먹는 김치 맛은 비교불가겠지.’ 라고 생각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그러하겠지만 김치 또한 그저 되고 저절로 되는 게 아니었다. 여러 가지 과정과 정성, 엄선된 재료들의 조화와 손맛, 거기에 인내가 더해져서 김치라는 음식이 완성되었다.

초심은 올해도 김장을 해서 이웃과 나눠야지 생각했는데 하나하나의 과정을 거치면서 몸이 점점 지쳐가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마음도 바뀌었다. 누구와도 나누고 싶지 않는, 오직 나 혼자 먹고 싶은 김치로 변해버렸다. 마음이라는 게 이토록 간사했다.

내가 자주 가는 사우나장의 요즘 이야깃거리는 단연 김장이다.

"김장 했어?"
"네."
"벌써? 일찍도 하셨네. 부지런도 하셔. 할 일 다 해 놓았으니 즐길 일만 남았네."
"언니는?"
"난 김장 안 해, 번거롭고 직장에 다니니 시간도 없고, 손맛도 없어서, 예전에는 김장을 했었는데 식구도 없어서 사서 먹어."

김장을 안 한다는 언니한테 김치 몇 쪽을 건넸다

"웬 김치! 올해는 배추도 비싸다는데. 얻어먹어도 돼? "
"김장 안 한다고 해서 맛이나 보라고."
"잘 먹을게."

어제 사우나장에서 언니를 만났다.

"동생! 김치 잘 먹었어. 약간 맵기는 했지만 간도 잘 맞고 맛있게 먹었어. 김치는 아무나 못 주는데 손맛이 있나 봐. 김치 대가리 뚝 잘라서 손으로 찢어 밥 위에 척척 걸쳐먹으니 얼마나 맛있든지 없던 입맛까지 돌아왔어."
"잘 먹었다니 다행이에요."
“누구에게 무엇을 건넨다는 게 쉬운 게 아닌데 고마워.”

J에게 전화가 왔다.

"김치 잘 받았어. 맛있던데 어떻게 담갔어? 비결 좀…."
"일러 줄 것 없고, 유튜브에 ‘김장김치’ 검색해서 보고 자기 생각에 가장 맛있겠다 싶은 방송 선택해서 그대로 따라 하면 돼. 그렇게 한번 해 봐.”
"담가보고 싶은데 또 버리게 될까봐 겁이 나서. 왜 그런지 원인을 못 찾겠어. 몇 번 실패한 후로는 김장을 안 하게 돼."
"배추 탓? 소금 탓? 물 탓? 무엇이 문젤까?”
"너 요즘 김치 나르느라 바쁘지? 안 봐도 뻔해,"
"김장 안한다는 몇 사람에게 줬을 뿐이야, 이것도 올해까지 만이야. 힘들어서 못 하겠어."
"잘 생각했어. 내년엔 너도 사서 먹어. 두 식구에 얼마나 먹겠어."
"양보다 질이 문제겠지. 안 한다 안한다면서 자꾸 하게 되네."
"그런 일도 아무나 못 해. 아무튼 고마워."
"맛있게 먹고 건강해. 겨울 잘 나고"
"다음에 또 통화하자."

김치를 나누고 인사를 하는 동안 힘들었던 심신이 누그러져갔다. 김장독에 김치가 익어가고 정이 익어간다. 나는 지금 김치를 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