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한 번 준 적 없는디, 지가 크네유.”
태어나서 한 번도 인주면 저수지 근처를 떠나본 적 없다는 전상근씨(58). 그의 취미는 꽃씨 뿌리기다. 자신의 집뿐 아니라 이웃집에도 꽃씨를 나눠주며 키워보라고 권한다.
그가 주는 꽃씨들은 비도 잘 맞고 햇볕이 잘 드는 장소면 어렵지 않게 키울 수 있다고 한다. 그는 맨드라미, 나팔꽃, 채송화, 사루비아 등 이름만 들어도 친숙한 꽃씨들을 이웃에게 나눠주고 있다.
“특별히 뭐, 꽃을 키우겠다는 생각을 하고 심은 건 아니고 어느 날부터인가 꽃이 예쁘고 해서 꽃씨만 받아다 집안 마당에 뿌린게 시작이 돼서 지금은 이웃주민에게 나눠주고 있다”고.
처음에 그가 꽃씨를 받은 것은 나팔꽃이다. 나팔꽃이 무슨 종류인지도 모르고 그냥 주황빛의 색깔이 이뻐서 나무 등걸과 같이 나팔꽃씨를 뿌려 키우기 시작했다. 별로 크리란 기대도 안 했지만 여름이 되면 온 집안이 나팔꽃으로 가득한 집이 됐다. 비단 전씨의 집뿐 아니라 인주면 신성리 주변의 인가가 모두 주황 나팔꽃 천지다.
10년전부터는 인주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나팔꽃씨와 국화 구근을 나눠줬다. 수선화, 맨드라미 등 키우기 쉽고 손이 잘 안 가도 될 만한 것들을 골라서 주다 보니 겨울 빼놓고 초등학교에는 꽃이 만발하고 있다고.
“해마다 초등학교 학생들한테 고맙다는 편지 한두 통씩 받는데 고 거 몇 줄 안 되는 편지인데 참 기분이 좋데. 꽃처럼 애들도 크는 것 같고”라며 “이제 두 살된 손자가 있는데 손자한테도 꽃씨 줄라고.”하며 흐뭇해했다.
이제까지 나눠준 꽃씨만 하더라도 거짓말 보태 한 트럭은 될 것이라는 전씨.
“저수지 물 받아다 농사지으면서 시간가는 것 모르는디, 짬짬이 이렇게 꽃이 피는 것을 보면 신의 섭리가 느껴진다”며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냈다.
그러면서도 한 번도 부인에게는 꽃씨를 준적 없다고. “남자가 남사스럽게 꽃 키운다고 되레 질겁을 해. 그러면서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는 거 보면 좋은가봐”하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전씨는 “꽃이 피는 것을 보며 인생도 꽃처럼 피다가 지는 날이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다”며 “죽는 날까지 이렇게 건강하게 아름다움을 나눠주는 것이 꿈”이라며 그는 나팔꽃 그늘 아래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