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져본 사람은 안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일이 피를 말리는 일이란 것을.
금지된 사랑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도 손끝이 떨리는 일이란 것을, 보내기 싫은 사람이 늘 떠나야 한다는 것을 인지할 때 드는 자괴감과 절망을 안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탄 작가 ‘아니 에르노도 그런 사랑을 했다. 그리고 그 순간의 감정을 예리하게 썼다. 『단순한 열정』이다.
경험한 것만을 쓴다는 그녀다. 읽는 내내 그녀의 사랑하던 순간을 그녀가 된 듯 느끼는 재미를 준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슈퍼마켓에 가고, 영화를 보고, 세탁소에 옷을 맡기러 가고, 책을 읽고, 원고를 손보기도 하면서 전과 다름없이 생활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몸에 밴 습관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끔찍스럽게 노력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상마저 내게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특히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내가 완전히 넋을 잃고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나 문장, 웃음조차도 내 생각이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내 입 속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듯했다. 게다가 나는 내가 한 행동, 내가 본 영화, 내가 만난 사람들을 또렷이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나의 모든 행동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내 의지나 욕망, 그리고 지적 능력이 개입되어 있는 행복(예측하고, 찬성하고 반대하고, 결과를 짐작하는)은 오로지 그 남자와 관련된 것뿐이었다.
사실 그 순간은 단지 몇 시간 동안 지속되었을 뿐이다. 나는 그가 도착하기 직전에 시계를 풀어놓고 그 사람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차지 않았다. 반면에 그는 언제나 시계를 차고 있었다. 그리고 난 머지않아 그 사람이 조심스레 시계를 훔쳐볼 시간이 다가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얼음을 가지러 부엌에 들어가서 문 위에 걸려 있는 벽시계를 쳐다보며 “두 시간밖에 남지 않았어.” “이제 한 시간. . . .” 혹은 “한 시간 후면 저 사람은 가고 나만 혼자 남게 되겠지”하는 말들을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도대체 현재란 어디에 있는 걸까?” 하고 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그 사람은 천천히 옷을 입으며 떠날 준비를 했다. 나는 그 사람이 와이셔츠의 단추를 채우고, 양말을 신고, 팬티와 바지를 입고 나서 넥타이를 매기 위해 거울 앞으로 돌아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제 재킷만 걸치면 저 사람은 떠나겠지. 나는 나를 관통하여 지나가는 시간 속에 살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몇 번이나 사랑을 나누었는지 헤아려보았다. 사랑할 때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우리 관계에 보태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동시에 쾌락의 행위와 몸짓이 더해지는 만큼 확실히 우리는 서로 조금씩 멀어져가고 있었다. 우리는 욕망이라는 자산을 서서히 탕진하고 있었다. 육체적인 강렬함 속에서 얻은 것은 시간의 질서 속에 사라져갔다.
나는 그 사람의 몸이나 옷에 나의 흔적이 남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그것은 그 사람과 아내 사이에 문제가 생기는 일을 피하게 하려는 배려인 동시에, 그런 문제로 인해 그 사람이 내게서 떠나가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나름의 계산에서였다. 같은 이유로 그 사람이 아내를 동반하는 자리에서는 그 사람과 맞닥뜨리지 않으려 애썼다. 그녀가 보는 앞에서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목덜미를 쓰다듬는다거나 옷매무새를 고쳐주는 따위의 행동을 함으로써 우리 관계를 들키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싸르트르와 보봐르가 동거하며 계약결혼이란 말을 만들어 낸 나라, 동거하며 아이를 낳아도 국가로부터 세금 복지혜택을 결혼한 부부와 차별 없이 받는 나라가 프랑스다. 그런데 불륜에선 자유롭지 못한지 프랑스 작가인 아니 에르노는 불륜을 들킬까 두려워한다. 아이러니다.
’사랑은 사랑일 뿐이다.‘라 외치는 그들도 불륜 앞에선 떨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