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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햇살 아래서… 시를 읽다 

단풍잎 붉어 눈이 좋고 가을시 한편에 마음이 맑아지는, 계절 앞에 서서 

등록일 2022년10월25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가을엔 왜 기도하고 싶을까. 가을엔 왜 겸손해질까. 가을볕에 말라 투명한 고추같이 마음을 말갛게 하고 싶을까. 시를 읽으면 청명한 하늘에 펄럭이는 하얀 빨래같이 마음이 눈부시게 환해질까.

가을시 몇 편 소개합니다. 
 


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 . . . .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 . . .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 . . . .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가을 맑은 날
                    나태주

햇빛 맑고 바람 고와서
마음 멀리 아주 멀리 떠나가
쉽사리 돌아오지 않는다

벼 벤 그루터기 새로 돋아나는 
움벼를 보며 
들머리밭 김장배추 청무 이파리

길을 따라서
가다가 가다가
단풍의 골짜기
겨우겨우 찾아낸 감나무골

사람들 버리고 떠난 집
담장너머 꽃을 피운 달리아
더러는 맨드라미

마음아, 너무 오래 떠돌지 말고 
날 저물기 전에 서둘러 
돌아 오려믄

 


 

가을 엽서
                    안도현

한잎 두잎 나뭇잎이
자꾸 내려 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 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 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젊음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란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들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머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가을 볕
                    박노해

가을볕이 너무 좋아
고추를 따서 말린다

흙마당에 널어놓은 빨간 고추는
물기를 여의며 투명한 속을 비추고

높푸른 하늘에 내걸린 빨래가
바람에 몸 흔들어 눈부시다

가을볕이 너무 좋아
가만히 나를 말린다

내 슬픔을
상처 난 내 욕망을


투명하게 드러나는 
살아온 날들을



천안에도 가을을 노래하는 시인들이 있습니다. 천안에서 바라본 가을하늘, 천안에서 마주하는 가을볕, 그리고 천안에 펼쳐진 가을풍경. 그것들을 마음에서 우려내고 한 줌 정화해 가을을 노래하는 시인들. 그들이 불러주는 시가 노래가 되고 음악이 되는 가을입니다. 

 

가을 산에서
               조유정

까닭 없이 유순해지는 계절
기도의 응답인가
풀잎 끝에 내려앉은
이슬방울이 애처롭다

죄 없이 살 수 있는 날
삼백 육십 오일이
매일 이런 날이었으면

한때는 새파란 청춘이었고
생의 정점에서
화려한 꽃밭이었던 그대

올라온 반생을 반추하며
내려갈 반생을 추스르는
가을 산
처절하게 물들어간다

 


가을에게
             신군자

누가 뿌린 씨앗인가
갈꽃들 해살거린다

목마른 가지마다
칭칭 감겨 우는 바람아

휑 뚫린
가슴과 가슴사인
무슨 꽃을 피워야 하니

누가 칠한 하늘인가
산새들 재잘거린다

핏물 든 가슴으로
찢겨 우는 나무야

끊어진 
시간과 시간 사이엔
무슨 색깔을 칠해야 하니

 


가을이네
                 김다원

엊저녁 꿈속에 아련하던 사람 못내 아쉬워
혹시나 하고 두리번거리는 출근길

앙증맞은 국화 한 다발 사서 
아가리 넓은 머그잔 앉혀야지 하다가

옅은 벽돌색 니트 소매 리듬 맞춰
우아하게 걷고 싶은 마음 산들거리다

그 꽃집 그냥 지나 왔네
긴 머리 뒤로 젖히며 낮게 웃네

가을이네
 

김다원 리포터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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