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등장한 팽나무가 천연기념물이 되었습니다.
문화재청은 지난 9월29일 열린 제8차 천안기념물분과 문화재위원회 최종심의에서 ‘창원 북부리 팽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확정했음을 알렸습니다. 이 팽나무의 수령은 500년 정도로 추정합니다. 높이 16미터에 둘레가 6.8미터에 달합니다. 매년 음력 10월 초하루에 당산제를 올리는 전통이 이어져 민속적 가치도 뛰어나답니다.
드라마가 조영된 후에도 팽나무가 있는 북부리 마을에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창원시는 마을접근성을 높이고 주차걱정 없이 ‘우영우 팽나무’를 감상할 수 있도록 시티투어버스 특별노선을 운행한다 합니다.
‘보성 전일리 팽나무숲’은 천연기념물(제408호)이 된 지 오래입니다.
1987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2007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입니다. 이곳은 18그루의 팽나무가 있으며, 수령은 300년에서 500년 된 것들입니다. 마을사람들에게는 쉼터가 되어주고 풍치림, 방풍림, 당산림으로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다 합니다.
그럼 천안 팽나무는요?
천안의 팽나무는 비록 천연기념물은 아니지만 훨씬 신나는 모험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두정동 말우물 태생인 팽나무도 나이로는 518년쯤 되었답니다. 600년도 넘었다는 설도 있지만 근거는 없답니다.
2001년에는 태어나서 한번도 떠난 적 없는 말우물이 도시개발로 사라지면서 ‘하늘을 날 뻔’ 하였습니다. 죽음이야 찾아올 것이지만 34톤의 거구가, 그것도 땅에 뿌리를 깊숙이 박아놓은 나무가 하늘을 날다니요. 부푼 기대도 하였지마는 무산이 되어 버렸지요.
천안시 산림과는 육군헬기를 무상으로 지원받아 이 팽나무를 천안종합운동장 옆으로 옮기려 했습니다. 천안시청이 들어서면서 수호신 같은 나무가 하나쯤 있어도 좋겠다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무엇보다 오래된 나무를 인간의 개발로 인해 죽이고 싶지 않았던 게지요.
2001년 3월17일자 <충남시사신문>에는 ‘34톤의 팽나무가 결국 하늘을 날지 못하게 됐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헬기의 수송중량으로는 무거운 팽나무를 들지 못한다는 답변이 온 겁니다. 시는 할 수 없이 두정동 벌판에서 이식준비를 끝마치고 3.1㎞쯤 차량이동으로 옮기겠다는 계획을 새로 짰습니다. 다만 팽나무의 나무높이가 10미터에 달해 한국전력 등 8개 통신업체와 대책회의를 하게 되었답니다. 5미터 높이의 통신선로가 팽나무의 처음이자 마지막은 여행을 방해하지 않을까 우려하기 때문이지요.
2001년 4월4일. 봄기운이 만연한 날씨에 두정동 북부국획정리사업지구 내에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팽나무가 백석동 천안종합운동장 광장의 연못 옆으로 이사가는 날이기 때문이었지요.
▲ 2001년 차량 탑승을 기다리는 팽나무.
팽나무의 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따가웠습니다.
인부들은 나무를 실어나르기 위해 온갖 밧줄로 꽁꽁 동여매기 시작했습니다. 흡사 걸리버의 몸을 묶고있는 소인국 사람들 같아 보였습니다.
이 팽나무를 움직이기 위해 160톤의 무게를 들어올릴 수 있는 대형크레인과 75톤의 무게를 실어나를 수 있는 트레일러가 동원되었습니다.
오전 11시30분쯤 팽나무는 말우물 주민들의 배웅을 뒤로 하며 종합운동장으로 떠났습니다. 트레일러의 속도는 사람의 빠른 걸음 정도면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로 느렸고, 조그마한 흔들림에도 노목의 가지가 심하게 흔들리며 부러질 듯 위태롭게 보였습니다. 그 뒤를 덤프트럭 한 대가 팽나무가 생장한 곳의 흙을 가득 싣고 뒤따라갔습니다.
이때 팽나무의 마음을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500년 넘게 살아왔던 보금자리를 떠나는 그 마음을.. 눈물이라도 흘렸을까요, 아님 여행의 모험을 맘껏 즐겼을까요.
백석로 구간 500미터쯤에선 20여분 교통통제가 되었고, 주변 전력선과 광케이블선도 팽나무 여행을 위해 이설되었습니다.
팽나무는 오후 늦게서야 이식작업과 주변작업을 마치고 새로운 자리에 몸을 틀었습니다.
말우물 주민들은 팽나무가 ‘신령한 나무’라 했습니다.
팽나무가 떠나는 날 작업과정을 지켜보던 주민들은 섭섭함에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팽나무를 소홀히 여겼던 것을 후회했습니다. 떠날 때가 되어서야, 또는 떠나서야 소중한 것을 알게 되는 겁니다.
마을의 정신적 지주였다는 사람들은 “결국 나무가 복이 있어 더 좋은 곳으로 가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서로에게 위로했습니다.
당시 팽나무가 사는 마을의 이윤환(64) 전 통장은 팽나무가 차량에 실려 눈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마을주민들과 함께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는 “오늘 4월4일을 원년으로 삼아 매년 종합운동장에 찾아가 팽나무의 생일을 차려줄 겁니다”하고 약속했습니다.
사실 500여 말우물 주민들은 이틀 전까지만 해도 팽나무 옮기는 걸 반대했습니다. 그냥 그곳에 그대로 두길 바랐죠.
하지만 팽나무가 위치한 곳이 도로부지로 편입돼 있다는 천안시 입장에 “그렇다면 가장 가까운 공원부지로 옮겨달라”고 타협을 했죠.
이윤환씨는 말합니다.
“여기 둔다고 팽나무가 좋을 것은 없습니다. 차리리 종합운동장 연못가 옆으로 옮겨지면 시가 더욱 관리에 심혈을 기울여줄 것이라 생각됩니다. 나무에게 더 나을 것 같고, 우리도 그렇게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이씨는 이날 차를 몰아 팽나무를 따라갔고, 종합운동장 옆에 이식되는 모든 과정을 살펴봤습니다.
한편 팽나무 윗가지에 보금자리를 꾸몄던 까치부부에게는 이날 날벼락을 맞은 듯 했지요.
주민들이 이를 안타까워하자, 트레일러 운전자는 “같은 상황에서 까치가 30㎞를 쫓아와 보금자리를 지키는 것을 봤다”며 안심시키기도 했답니다.
조선왕조를 거슬러 세종대왕 때부터 살았을 말우물 팽나무가 새 삶을 적응할 수 있도록 시는 철저하게 보살폈습니다.
정성스레 묻은 뿌리에 가지를 고인 튼튼한 철제, 기둥이며 가지 위까지 동여맨 천들. 한가지 아쉽다면 까치부부가 없는 빈 까치집이 외롭게 보였습니다.
▲ 2001년 종합운동장에 이식한 즈음의 팽나무.
2002년 4월4일. 팽나무가 이곳에 온 지 정확히 1년 되는 날 오전 10시 무렵, 이윤환씨와 그보다 세 살 아래인 아내 최정자씨가 팽나무를 찾아왔습니다.
이들 부부는 막걸리 여덟병을 나무 주위에 뿌려주며 아픔 없이 생장하길 기원했습니다. 막걸리는 많은 영양분을 갖고 있어 나무생장에 도움을 준다는 속설도 있어 팽나무의 이사1주년 축하주로 잘 어울렸습니다.
“그동안 몇 번을 찾아와 살펴봤죠. 몇 개월 전엔 싹에 힘이 없어 죽지는 않을까 걱정도 했어요. 오늘 보니까 생기가 있는 것이 보기 좋아요. 가지 두 개는 죽은 것 같아 안쓰럽군요.”
최정자씨는 가지가 죽은 것에 자꾸 마음이 쏠리는지 오랫동안 눈이 머뭅니다. 팽나무는 주변 조경과 잘 어울리며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단지 두정동에 있을 때와 다른 점은 나무의 생장이 한쪽으로 쏠려있어 지지대를 받쳐준 것이었는데, 이씨는 “나무가 기운 것 같아요. 게다가 나뭇가지가 한쪽으로 쏠려있어 무게중심이 어긋나 있는데…, 어떻게 교정은 안될는지 모르겠네” 하며 한 걱정을 합니다.
“그래도 팽나무는 이제 공인(公人)으로서 시의 철저한 관리와 사랑을 받고있을 테니 괜한 걱정은 필요없겠죠.” 그러더니 조용히 귀띔도 합니다. 땅 위에 돌출된 팽나무 뿌리 하나가 ‘남근’을 닮았다는 것인데요, 예전에는 마을입구 등에 남근석을 만들어 마을의 힘과 번영을 기원하기도 하였기에 팽나무가 잘 살아갈 거라는 좋은 징조라는 겁니다.
팽나무는 이날 몹시 기뻤을 겁니다. 그리고 이들 부부에게 ‘나처럼 장수하라’는 덕담이라도 베풀었을 듯합니다.
그렇게 팽나무는 2022년 10월의 오늘을 살아갑니다.
이윤환씨 말대로 나무는 씩씩하게 518년 세월 어디를 지나고 있습니다. 천안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나무로는 천안 성불사 느티나무를 꼽습니다. 그보다 300년은 젊은 팽나무이니, 늙었다고 볼 일도 아닙니다.
언젠가는 이 팽나무도 ‘천연기념물’이 될 겁니다. ‘우영우 팽나무’처럼….
천안에서 보호수로 지정된 팽나무는 6본이 있습니다. 시내에는 백석동 종합운동장 팽나무와 360년 된 청당동 팽나무가 있습니다. 성거읍에는 3본이 있습니다. 모전리 팽나무는 380년된 나무가 2본 있고 송남리에 190년 된 팽나무가 1본 있습니다. 또한 북면은석사 앞에는 368년 된 팽나무 1본이 있습니다. (사진은 청당동 벽산아파트 앞 팽나무)
▲ 보호수가 되기엔 아직 나이가 젊은 청수동 우미린아파트 인근 팽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