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제도는 집행기관의 독주를 방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한 제도다. 반면 반목과 알력으로 지방자치단체 운영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91년부터 시행된 지방의회, 이제야 뒤뚱이며 걷는 12년차 의회로 순기능 만큼이나 역기능을 가지며 시민 앞으로 다가가고 있다. 제4대 1년이 지난 요즘, 천안시의회는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삐그덕’거리는 의회, 그밥에 그나물
시의회를 평가하는 잣대는 먼저 예산심의와 입법활동에 있다. 6000억원 넘는 한해 예산이 규모있게 배치됐는가, 낭비적 요소는 없는가 철저히 파헤쳐 검증하는 몫이 시의원에게 달렸다.
시의회는 지난해 12월 2003년 예산을 심의한 바 5880억원중 107억6000만원을 삭감했다. 이중 서부대로 개설 관련 95억원을 제외하면 12억6000여만원이 깎였을 뿐이다. 이같은 결과는 시예산이 낭비적 요소 없이 잘 짜여졌거나, 혹은 심의가 부실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후자쪽일 가능성이 높다.
입법활동 또한 전무한 실정이다. 지방의회 수준과 역량을 증거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인 입법활동이 의원들에게 일명 ‘왕따’를 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본지가 지난 3대를 조사한 결과 총 9건이 의원입법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대부분이 기존 내용의 부분손질이었고 그것도 상위법령에 따른 조정이었다. 단 2건만이 순수 의원발의였으나 이마저도 의원들의 엇갈린 이해로 사장되고 말았다. 또한 98년 7월부터 3년 동안 시장발의 제·개정 조례는 모두 1백52건. 그 가운데 1백28건이 시장이 제출한 원안대로 무사통과됐다.
4대 들어서도 의원입법은 한 건도 없으며 조례심의도 3대와 다를 게 없다.
의원들은 ‘무보수’에서 좋은 의정활동이 어렵다고 토로하였고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의원정수 축소와 유급직 전환”을 대안으로 내세웠다.
예산심의와 입법활동을 제외할 때 이번 4대 시의회는 3대에 비해 ‘무난’한 것으로 평가된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3대 시의회처럼 의원간 청사 이전에 따른 골깊은 갈등양상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안건처리와 현장방문, 시정질문 등 모든 부분에서 이해를 같이 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4대 들어서며 유독 항의 및 건의차 중앙부처도 자주 올라갔으며 각종 특위를 구성, 나름대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의원들간 구심점이 없어지며 내부적으로는 오히려 개별적 주장이 심화, 사분오열된 느낌이 강하다. 특히 도덕성이 결여된 의원들의 비리의혹이 곳곳에서 터져나온 요즘, 체념 상태에 빠진 의원들도 더러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자신까지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시각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YMCA 김우수 간사는 “예년수준”으로 의회 1년을 평가했다. 그는 시민 기대에 다소 못미치는 수준으로 4대를 분석, “전반적으로 발언은 많았지만 명확한 책임추궁이나 대안제시 등 질적 면에서 미흡했다”고. 또한 일부 물의를 빚은 의원들의 낮은 도덕성, 노트북 지급요구 등 현실성 결여, 지역이기에 발맞춘 지역통합성 부족 등에 아쉬움을 표했다. 특히 여섯번이나 부결·보류됐던 주민자치센터 조례건은 수준미달이었다고 평했다.
의원 내부의 평도 마찬가지. 한 시의원은 “파격적인 물갈이 없이는 항상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의회일 뿐”이라며 동료 의원들의 자질에 깊은 불신을 갖고 있었다.
통계로 본 4대 ‘예전 수준’
4대 의회의 시정질문은 역대보다 많다. 2대 2백68건, 3대 4백43건에 비해 4대는 1년이 지난 시점에서 2백4건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70%가 설명을 요구하거나 입장을 표명하는 수준에 그쳤으며 수준높은 자질이 요구되는 비판추궁이나 대안제시는 30%에 머물렀다. 이는 3대 17%보다 높지만 2대 43%에는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다.
질문의 명료성은 2대(72%)나 3대(82%)보다 4대(91%)가 앞섰다. 질문에 반응하는 관계 공무원이 무응답이나 거부부정의 사례도 2대(10.5%), 3대(8.6%), 4대(5%)로 올수록 나아지고 있다.
2대, 3대를 거쳐 4대로 오면서 시정질문이 많아진 것은 농업개발과 교육 및 문화 부문이다. 반면 교통관리는 줄어드는 추세에 있다. 질문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지역경제개발인데 2대(33%)보다 3대(24%), 4대(25%)가 좀 적다.
한편 학력수준으로는 4대에 들어 대졸 이상이 40%를 차지, 2?3대보다 10% 높게 나타났지만 중졸 이하도 2대(17%), 3대(7%)보다 4대에 들어 36%로 높아졌다. 학력이 자질의 척도는 아니지만 학력수준은 역대 의회와 별반 나을게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4대 연령대도 60세 이상이 크게 줄었지만 30대도 줄었다.
직업으로는 4대로 오면서 농축산업과 건설업, 자영업이 늘은 반면 제조서비스업과 교육문화 종사자가 줄었다.
도덕성 검증이 우선돼야
지방자치의 성공열쇠는 지방의회가 제몫을 해주는 데 그 역할이 크다. 하지만 무보수명예직이라는 것이 의정활동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이 공감대를 형성, 성공의 단초가 유급제에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이런 방향에서 현재 지방의회 유급제가 추진되고 있다. 전문성 있는 인사의 의회 유인책이 될 유급제에 기대하는 이들도 적잖다. 하지만 이에 따른 막대한 재정소요 해결이 문제다. 혹자는 의원정수 축소나 후원회 등을 거론키도 한다.
이와 함께 의원자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의원보좌관제나 민간전문가를 참여시키는 방안도 제안하고 있으며 또 의회 사무국 인사권을 독립시키는 것도 집행기관 견제에 필요하다는 지적.
그러나 이런 대책마련보다 앞서 선행돼야 하는 것은 의원들의 도덕성을 사전에 검증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4대 1년을 보낸 천안시의회. 2?3대와 함께 칭찬보다 비난이 많은 것은 의원자질 중에서도 제일 중요하다고 보는 도덕성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