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의경 작/ 천안 수신면 장산리에서 '실아트'를 운영하고 있는 천연염색 공예가로, 사회적 농업활동조합인 '수신제가협동조합 대표이기도 하다. 그의 꿈은 어르신 문화를 선도하는 다양한 어르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다. T: 010-7224-0654
<글/ 김다원- 시인·수필가>
은행나무는 화르르화르르 잎을 내리고 있다. 미련 없이 내린다. 가야 할 때를 아는 듯 묵묵하게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다. 돌아보면 아름다웠던 기억이 많다. 연초록 잎을 피우고, 그 잎겨드랑이 사이에 작은 열매를 달 때는 얼마나 신이 났던가.
봄 가뭄과 장마와 땡볕과 태풍을 이겨내며 둥치를 키우고 가지를 벋었다. 노랗게 열매도 익히고 황금 같은 잎도 팔랑거렸다. 이제 순리를 따라 기운을 내린다. 내어 줄 차례다. 그래서인가 그림 속의 풍경은 쓸쓸하고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둥치는 힘을 주고 섰으나 우람하다는 느낌이 없다. 가지엔 살이 빠졌고 잎엔 기운이 없다. 화가는 아버지의 삶을 그림에 담고 싶었을까? 처자식을 책임지느라 울고 싶어도 울 곳을 찾지 못해 막걸리를 들이켜며 삭혔던 아버지, 살아내야 하는 현실을 마주하느라 나를 찾을 사이 없이 달려온 아버지를 생각했을까.
그림 속 은행나무에서 전후 세대의 아버지를 생각한다. 삽을 들고 물꼬를 트러 나서던 아버지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르던 유년의 풍경도 겹쳐온다. 가족의 무게를 지고 살던 아버지의 등이다.
아버지의 등
김다원
퐁당퐁당
냇물에 돌을 던지던 날
뜬금없이 아버지의 꿈을 물었다
아버지의 너털웃음이
걷어 올린 바지 아래로 내렸고
삽에 묻은 흙에도 내렸다
검은 밤길을 더듬거나
때론 하얀 세상에 혼자 길을 내며 돌아오던 날들
꿈은
대문 옆 대추나무 아래서 눈물로 떨어지고
그저 아이들 밥 넘어가는 목구멍을 보고
그 아이들의 아이들을 보는 건
꿈이 아닌, 북받치는 울음이란 걸
붉어진 눈의 석양이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