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관장 한시준)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한인합성협회를 결성하며 미주 한인사회의 독립운동을 이끈 안원규·정원명 선생을 2022년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개최한다.
1905년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을사늑약을 전후해 국내·외 각지에서는 국권회복운동이 전개됐다. 1907년 하와이 한인들은 국권회복을 위해 각 지방에서 조직된 20여 개 단체를 통합, 호놀롤루에서 한인합성협회(韓人合成協會)를 결성했다.
▲ 하와이 합성협회 장정.
하와이 한인단체를 최초로 통합한 한인합성협회는 지회를 설립하고 기관지 『한인합성신보(韓人合成新報)』를 발간하는 등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했다.
1908년 장인환·전명운 의거 후 미주 한인사회 통합운동이 전개되자 한인합성협회는 1909년 미국 본토의 공립협회(公立協會)와 통합, 국민회를 설립했다. 1910년에는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의 참여로 1910년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로 확대돼 미주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단체로 자리매김했다.
안원규는 1878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났다. 1903년 하와이로 이주한 후 잡화점, 양복점 등을 운영하며 생활했다.
1907년 하와이 한인단체를 통합해 한인합성협회를 결성, 부회장을 지냈고 1909년 국민회 조직에도 앞장섰다. 1910년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 총회장에 임명됐고 1921년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가 대한인교민단으로 개편되자 부단장이 됐다.
▲ 해외한족대회 결의안.
1928년 대한민족통일촉성회를 결성하는 등 하와이 한인사회의 통합운동을 주도했다. 1941년 해외한족대회 개최결과 결성된 미주지역 독립운동 연합단체인 재미한족연합위원회에서는 의사부 위원으로 활동하며 외교 및 선전 활동에도 주력했다. 정부는 안원규의 공훈을 기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정원명은 1881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1904년 하와이에 이주한 그는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며 1905년 에와친목회를 조직,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했다. 1907년 한인합성협회를 결성하고 1909년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 총회장을 역임했다. 1910년 대동공진단(大同共進團) 단장이 되어 미주지역 군사양성에 앞장섰고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 대표원 등을 지냈다.
그는 1925년 대한민국임시정부 후원회를 조직하고 기관지 『단산시보檀山時報』를 발행했다. 1928년 대한민족통일촉성회 집행위원에 선출되어 하와이 한인사회 단결을 위해 힘썼다. 1936년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참의원 등을 지냈고 임시정부의 군사활동을 후원하는 찬무회 회원으로도 활동했다.
정부는 정원명의 공훈을 기려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