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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에서 발견하는 해방 그리고 추앙

행복한 척, 불행한 척 않고 정직하게 보겠다

등록일 2022년08월16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를 몰아서 보다 보면 새벽이 가까워져 온다. ‘나의 아저씨’에 이어 ‘나의 해방일지’를 보고 있다. 2022년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고뇌와 사랑,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이 그대로 전해져 아프기도 하고 아리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의 미소 때문에 행복해진다. 침묵과 표정으로 상황을 묘사하는 그들의 탁월한 연기를 보는 재미도 크다. 사랑이 아닌 ‘추앙’이란 단어를 깊이 생각하게 한 작가 때문에 또 행복하다. ‘나의 해방일지’의 두 주인공을 잠깐 보자.  

구 씨는 늘 산을 보고 있다. 말이 없다. 술만 먹는다. 사람에게 지쳐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구 씨는 왜 술을 마시느냐는 질문에 밤낮없이 다가오는 사람들 때문에 살 수 없어서, 잊기 위해 마신다고 대답한다. 해방하지 못한 이들이 내놓는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술을 마신다. 구 씨가 살아온 세계를 대변하는 말이다. 

구 씨가 산포로 오게 된 이유도 단순하다. 누군가에게 쫓겨 급히 지하철을 탄 구씨는 갑자기 환청처럼 ‘빨리 내려’라는 소리에 급히 내렸다. 당미역이다. 그리고 연고도 없는 경기도 끝 산포의 미정이네 집 옆에 머문다. 농사일과 싱크대를 제작하는 미정이 아버지는 이름도 알려주지 않는 그에게 아무런 질문 없이 일을 주고 밥을 같이 먹고 술을 따라 준다. 

미정은 매일같이 이어지는 같은 일과 진심 없는 인간관계에 지친다. 의미 없이 내뱉는 대화도 싫다. 미칠 것처럼 지루한 이 생활에서 해방하고 싶다. 그래서 해방클럽을 만들고 해방하기 위해 행동한다. 시작은 추앙이다. 엄마가 만든 반찬을 그저 구씨에게 전달하던 미정은 뜬금없이 구씨를 보고 자기를 ‘추앙’하라고 한다. 세상을 재미없어하고 누구와도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구 씨에게서 자기를 본 미정이다. 그를 살리고 싶고 자기도 살고 싶어서 한 말이다. 

추앙하는 존재가 있으면 설레고 행복하다. 추앙은 사랑을 넘어 그 존재를 더 깊고 더 넓게 이해하고 우러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 무엇인가 하고 싶어 움직인다. 미정의 갑작스런 제안에 어이없는 구씨는 그저 미정을 바라볼 뿐 말이 없다. 미정이 말을 남기고 간 후 구씨는 ‘추앙’이란 단어를 찾아본다. 그리고 추앙을 시작한다.

미정의 모자가 날아갔다. 땡볕에서 온 가족과 밭일하다 엉성한 그늘막에서 잠시 쉬던 때다. 넓은 수로 너머에 떨어진 모자를 집으려면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멀리 걸어가 수로를 건너야 한다.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 가족 의견이 분분할 때 구씨가 일어선다. 좌우가 아닌 뒤로 걸어가 도움닫기를 한 후에 죽어라 뛰어 수로를 건넌다. 뛰는 모습을 영상은 길게 천천히 보여준다. 얼굴은 하늘로 향하고 두 팔은 춤추듯 흔들고, 몸은 활처럼 뒤로 휘어졌다가 힘껏 앞으로 두 팔과 다리를 모아서 착지한다. 그리고 모자를 주어다 미정에게 준다.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미정을 보호할 모자를 줍는 것, 그저 쉽게 줍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방법으로 상처 입을 것을 상관치 않고 기꺼이 몸을 던지는 것, 그것이 구씨의 미정을 추앙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확인의 절차가 있다. 미정이 재차 자기를 추앙하라고 하자 구씨는 ‘이미 시작했잖아 모자 집어준 날.’이라 말한다. 

모자와 비슷한 한 사건이 또 있다. 마을 주변에 나타나는 들개떼에 구씨가 가까이 가려하자 미정은 물릴 수 있다며 구씨를 말린다. 들개떼는 표면적인 위협 외에도 미정이의 해방을 막는 것일 수도 있고 미정이를 미끼로 구씨를 찾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어느 날 구씨가 들판 가운데에 파라솔을 설치한다. 구씨와 미정도 들개들처럼 애착물이 필요하고 더위와 비바람을 피할 보호막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파라솔은 개들이 파라솔 아래서 포획당한 것처럼 미정을 위협하는 이들을 포획하겠다는 의미다. 그것도 개를 구씨가 직접 잡는 것이 아니듯 백사장도 경찰의 손을 빌려 제거한다. 파라솔 설치 후 구씨는 다시 일하던 세계로 간다. 
 


그 구씨가 미정에게 알바를 제안한다.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면 돈을 준단다. 10회씩 하다가 더 할 이야기가 있으면 연장하고 다 끝이 나면 헤어지잔다. 들어주는 일이 무엇보다 힘들다는 것을 아는 구씨는 누구의 이야기를 들어줄 땐 돈을 받아야 한단다. 구씨가 말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은 살고 싶다는 의지의 다른 표현이다. 그것도 미정이가 들어주었으면 한다. 너만 믿겠다는 말이다. 그것도 구씨의 집에서다. 구씨가 자기 집에 들어간 것이다. 안정을 찾겠다는 것이다. 사람처럼 살겠다는 의지다.

‘알았어, 들어줄게.’ 팔베개를 하고 천천히 쓰러지듯 누운 두 사람에게 버티컬을 통해 빛이 들어온다. 버티컬을 한껏 위로 올려 창 안 가득 들어오는 빛이 아니다. 층계를 오르듯 칸칸이 빛이 들어오는 것은 조용히 천천히 서로를 채워주는 추앙, 강요하지 않고 가뭄이 든 땅에 물이 스며들 듯 있는 존재를 그대로 인정하면서다. 서로를 바라보고 누워있지 않아도 그들은 사랑하고 있다.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서로가 꽃이고 기도다. 

힘든 것으로부터 내가 해방하여 나와 타인에게 평안하게 해줄 수 있다면 얼른 해방할 일이다. 또 서로가 해방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추앙이라면 추앙도 해볼 일이다. 한 편의 드라마에서 행복을 찾는 방법을 알았다. 해방클럽의 강령처럼 살고 싶다.

행복한 척하지 않겠다.
불행한 척하지 않겠다.
정직하게 보겠다. 

편집부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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