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관장 한시준)은 최근 독립운동가 화사(華史) 이관구(李觀求, 1885~1953)의 관련 자료들을 수집하여 공개한다.
의병장 유인석(柳麟錫)의 제자인 이관구는 스승의 유지를 이어받아 독립운동에 헌신, 1910년대 국내 최대의 독립군 단체이자 대표적인 비밀결사조직인 광복회(光復會)에 참여했다. 이후 황해도 지부장을 맡아 군자금 모집·밀정 색출·변절자 처단 등 활발한 독립운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1918년 8월 일제에게 체포돼 5년의 옥고를 치렀고, 출옥 후 일제와 타협을 거부하고 은거와 방랑을 반복하며 암울한 식민지 시기를 견디어냈다. 해방 후 그는 역사연구에 뜻을 품고 사학연구협회를 조직해 의친왕 이강(李堈)의 별장에서 역사를 연구하며 많은 저술을 남겼다.
이관구는 독립운동가·서예가·저술가로 유명하며, 여기에 중점적으로 소개되는 자료는 대부분 이관구가 직접 저술하거나 편집한 자료들로 원본이 대중에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다.
이번에 공개되는 자료는 이관구의 사상과 현실인식을 보여주는 『신대학(新大學)』, 이색적인 역사소설『홍경래전(洪景來傳)』, 자서전적인 성격을 가진 『언행록(言行錄)』, 해방 이후 이관구의 활동을 보여주는 추대장·임명장과 일부 독립운동가의 유묵이 포함된 『광복의용기(光復義勇記)』, 이관구의 교유관계와 활동 등을 잘 알려주는 『독립정신(獨立精神)』이다.
이중『독립정신(獨立精神)』은 이관구가 평소 간직하던 독립운동가의 유묵과 해방 후 환국한 임시정부 요인 등에게 직접 받은 친필 등을 중심으로 모아 편집한 자료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즉 안창호·김구·이승만·이시영·신익희·김규식·김병로·김붕준 등 20여 명의 공개되지 않던 친필유묵이 수록되어 있으며, 대부분 임시정부 요인들이다.
독립기념관측은 한 개인이 일정한 목적과 기준을 가지고 독립운동가들의 친필을 직접 받아서 편집한 경우는 매운 드문 사례로 보고 있다.
친필유묵에 담긴 뜻도 단순하지 않는데, 특히 조소앙의 경우 그가 기초한「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에 인용된 한문 원문[首尾均平位 興邦保太平: 사회 각계각층이 지력(智力)과 권력(權力)과 부력(富力)의 향유(享有)를 균평하게 하여 국가를 진흥하고 태평을 보유하라]을 써주었다. 임시정부 요인들의 친필유묵은 당대의 시대상황을 반영한 염원을 담고 있었다.
1945년 8월 해방이 되었으나 정작 임시정부는 인정받지 못한 미군정의 시대 분위기를 반영한 듯, 신익희는 “獨立尙未成功 吾等仍須努力(독립은 여전히 성공하지 못하였으니 우리들은 마땅히 노력해야 한다)”라는 글을 써주었다. 김규식도 “眞心誠意 建國完成(진심과 성의로 건국을 완성하자)”이라는 글을 작성해 준 것도 진정한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독립의 완성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친필유묵에는 작성자가 당시 사용했던 도장이 찍혀있다. 여기에 실린 독립운동가들의 다양한 인장은 한국인장사뿐만 아니라 생활사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요컨대『독립정신(獨立精神)』의 진정한 가치는 시대적 맥락에 담긴 유묵의 뜻에 있다고 할 것이다. 남북으로 분단된 현실을 극복하고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통일민족국가를 이루는 것이 진정한 ‘독립’을 완성하는 일이라고 『독립정신(獨立精神)』은 말하고 있다. 이 자료는 미군정기 해방공간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지닌 정신사적 의미를 담은 자료로 연구·교육·전시 등에 활용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