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같지가 않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훈계하는 것이 어렵다. 선생이 학생에게 대하는 것도 그렇고, 남의 아이 귀엽다거나 예쁘다고 말해주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말이다.
‘사대주의(事大主義)’도 그렇다. 본래 ‘사대’란 말은 한국의 대중국 외교정책 인식으로부터 나온 것이라 한다. 어떠한 세력이나 나라에 붙어 그 존립을 유지하는 주의다. 포괄적으로는 약자가 강자에게 빌붙는 행위를 빗댄다.
언제부턴가 정치권이 변화하고 있다. 중앙당의 힘이 막강했던 때는 과거의 일이 됐다. 이건 당 차원이 아니라 ‘중앙’이라는 말 자체가 갖는 권위가 대단한 힘을 발휘해 왔기 때문이다.
거두절미 하고 ‘공천’문제만 갖고 따져보자. 예전에는 중앙당에서 전략공천을 어렵지 않게 했고, 이로 인한 잡음은 거의 없었다. 대체로 힘이 약한 이해당사자들이 수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칙과 규정, 민주절차를 내세우는 시스템이 장착되면서 약자의 힘이 상대적으로 커지게 되었다. 이는 좋은 방향이지만, 대신 사소한 부분에서조차 양보없는 갈등이 유발되는 문제도 발생하게 됐다.
현재의 공천방식은 갈등과 편법 유발
정치라는 것이 수학적 계산으로 ‘딱’ 떨어지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각자가 ‘유능하다’거나 ‘도덕적’이라고 주장한다. 당장의 인지도냐 잠재된 경쟁력이냐를 따지는 것도 쉽지 않다. 어떤 자대를 들이대느냐에 따라 ‘기준’이 달라진다. 여기서 사람을 서로 믿지 못하니 힘의 논리에 따른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고, 논란으로 치달을 여지가 커진다.
특히 지역선거구에 나서는 외부인사의 진입이 큰 문제로 다가온다. 밖에서 아무리 출중한 인물로 알려졌어도 지역당원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경쟁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다. 지역의 여론으로 결정되는 경선원칙 자체가 문제고, 대체로 권리당원 50% 반영도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이미 오랫동안 당원들을 ‘포섭’한 후보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선거에서 국민의당 천안시장선거 공천문제에서 박찬우·최민기 후보의 논란이 그랬고, 이번 더불어민주당 천안시장선거 경선문제에서 이재관 예비후보의 처지가 그렇다.
이재관 예비후보건을 들자면, 출향인사로 대전시부시장까지 하며 고향 천안에 와서 시장에 도전했다. 하지만 일찌감치 지역당원들과의 교류가 없다보니 ‘고위공직자’란 사회적 인지도는 높지만 지역의 아성을 깨기가 쉽지 않은 상황. 중앙당도 그런 부분을 참작해 천안을 전략선거구로 지정해 원칙을 비껴갔다. 즉 경선경쟁에 ‘권리당원 50%’를 없애고 ‘일반시민 100%’ 여론지지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이는 오로지 이재관 후보를 위한 것이며, 다른 7명의 예비후보들에게 상대적인 불리함을 던져줬다. 결국 이규희·이재관의 최종경선으로 압축되면서, 나름 억울한 낙마자들이 이규희 지지선언으로 돌아섰다. 이는 지역세력이 이규희를, 중앙당과 일부 지역정치인은 이재관을 미는 분위기로 나뉘어 갈등과 잡음을 유발시키고 있다. 지역세력은 ‘비민주적 행태’로 비난하고, 중앙당은 ‘전략선거구’라는 합법적 주장을 내세우며 대립하는 양상이 돼버렸다.
이런 불상사는 어느 당을 막론하고, 앞으로도 항상 발생하는 고질적인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이번 선거는 늦었지만 시급히 정비해야 할 정치적 현안이다.
정당 자체 엄중한 심사제도 통해 대표 선발하자
해결방안은 첫째 ‘공천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권리당원 50%, 일반시민 50% 지지로 결정되는 방식은 가장 유능하고 도덕적인 대표후보를 뽑는데 있어 부적절한 방식이다. 권리당원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자를 추종할 것이며, 일반시민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사지선다형으로 찍는 셈이다. 게다가 여론조사에 응하는 응답자가 너무 낮다보니 편법이 동원되고, 무엇보다 경쟁자와 그 세력간 온갖 네거티브 싸움으로 변질된다. 같은 편끼리 진행되는 추잡한 싸움은 유권자의 정치불신만은 키우며 정치참여의지를 꺾는다.
이런 비효율적인 공천방식을 버리고, 선거 전 일정기간 후보로 등록하고 엄격한 심사를 받도록 하는 것이 낫다. 정치아카데미 같은 것을 운영해도 좋다. 도덕성도 검증하고, 능력도 다양하게 검증하자. 힘있는 특정정치인에 충성한 대가로 공천을 받는 시대는 지나가야 한다.
둘째 그럼에도 기존의 공천방식을 바꿀 의향이 없다면 지역인재와 외부인재에 대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식을 규정해놓아야 한다.
지역에서 열심히 터를 닦아온 인재도 중요하며, 지역 밖에서 활동하며 나름 경쟁력을 갖춘 인재도 수용해야 한다. 지역에 연고가 있든 없든 중요한 건 앞으로 지역을 위해 열심히 능력껏 도움이 되는 사람을 뽑는 선거다. 권리당원이 없다해서 ‘팽(烹)’하고, 지역연고가 아니라고 ‘팽’할 일이 아니다.
이는 선거에 의해 선출직공무원을 뽑는 원래 취지가 아니다. 좋은 인재는 모셔라도 와야 하는 것인데, 사적욕심을 앞세운 정치인들로 인해 오히려 정치가 망가지는 행태라면 과감히 바꿔야 한다.
누가 결단을 내려야 할까. 중앙당이 지역과 머리를 모아 가장 공정하고 효율적인 ‘룰’을 찾아야 한다. 언제까지 이런 문제로 갈등을 빚고 부침을 겪어야 한단 말인가. 중앙당과 지역간 힘겨루기는 더 이상 구태다. 현명하지 못한 정당은 살아남을 수 없다.
갈등을 들어보면 서로 피해자라 하는데, 그렇다면 가해자는 없는가? 냉철하게 보면 서로가 가해자로도 상처를 주고 있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싸움에서 이기는 쪽이 좀 더 가해자쪽에 가깝다는 것이다. 힘의 논리에서 이겼으니까 말이다.
공천방식은 차후 반드시 정비해야 한다. 새롭게 바꿔야 한다. 더 이상 피해자 코스프레는 잡음논란을 넘어 정당이 ‘무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