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보러갈까 배꽃 보러갈까?”
“배꽃”
코로나로 답답했던 마음은 작은 풀꽃만 봐도 미소가 번진다. 이젠 몸도 마음도 바람처럼 휘젓고 다니고 싶다. 이럴 때 밖에 나가자는 친구의 전화는 백번이라도 좋다. 코로나를 겪고 나니 외출하는 마음이 조금은 가볍다.
배를 말하면 ‘성환’이다. 봄날을 즐기러 떠나는 마음이 붕붕 달리는 차처럼 가볍다. 왕지봉 배꽃은 천안12경 중 하나가 아닌가. 벚은 꽃잎을 날리며 지고 있는데 연분홍 복숭아와 배꽃은 한창이다. 배꽃도 보고 차도 마실 수 있는 곳을 미리 검색했어도 농촌의 길 찾기는 쉽지 않다. 마침내 왔다. ‘동민목장’이다.
입구에 배나무가 반긴다. 나무 전체가 다 꽃이다. 한 발 내리면 아래가 배 밭이다. 활짝 만개한 배밭은 흰 눈이 덮은 듯 눈부시다. 꽃이 피었으니 벌들 소리가 잉잉거려야 정상이다. 그런데 벌의 날갯소리를 들을 수 없다. 대신 모자와 마스크를 쓴 이들이 긴 봉을 들고 꽃을 툭툭 건드린다. 벌의 일을 사람이 하는 것이다.
일손이 부족해서 봉사자를 찾는데 꽃구경한다고 왔으니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도 오랜만에 날을 잡아 온 것을.
천안 성환의 배가 유명한 것은 배수가 잘 되는 토양 때문이란다. 색은 선명한 황갈색에 껍질이 얇다. 그래서 과육이 연하며 달다. 배 맛을 생각하며 배꽃에 취해서 사진을 찍다가 차를 주문했다. 예전에 쓰던 건물을 카페로 바꾸었다. 계단을 올라가면 너른 배밭을 내려다 볼 수 있다. 꽃이 지천이니 밖에서 차를 마셔야 차 맛이 더 좋지 않을까.
차를 들고 정원을 둘러본다. 한쪽 벽엔 예전에 쓰던 농기구가 전시되어 있고 정원엔 연자방아며 돌절구 등 볼거리가 많다.
아직도 진달래가 활짝 피어있고 탱자는 하얀 봉오리를 막 열려고 한다. 탱자꽃만 보다가 나무둥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울타리를 만드느라 심은 탱자나무를 주로 보았는데 둥치가 굵다. 친구는 모과나무 둥치에 막 피려는 모과꽃을 찍고 있었다. 나무와 돌을 구경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참 정겹다. 다른 곳에서 배농사를 짓는 친구가 생각났다.
“얘, 배 하나를 수확하기 위해서 손이 백번은 간다.”
‘그래, 그 손길 덕에 맛난 배를 먹고 이렇게 멋진 나무에 가득 핀 배꽃 구경을 한다.’ 속으로 그녀에게 감사의 말을 하며 꽃 사진을 정리했다. 그녀에게 전화해야겠다. ‘일은 잘 못하지만 내가 도와주러 가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