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검불 사이 여기저기에 쑥이 돋았다. 진짜 봄이 온 것이다.
얼른 쪼그리고 앉아 쑥을 한 움큼 뜯는다. 된장국이나 라면에 넣으면 입 안 가득 봄의 향기가 퍼진다. 어린 쑥의 향기를 맛보지 않으면 봄을 제대로 맞이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고 엄마의 손맛과 사랑이 생각나서다.
농사 준비로 바쁜 시간에도 엄마는 어린 쑥(애엽)을 뜯어서 된장국을 끓였다. 쑥이 조금 더 자라면 두어 소쿠리 뜯어 ‘쑥버무리’도 만들고 ‘쑥개떡’도 쪄주셨다. 크게 멋 낼 것도 없고 여러 가지 재료가 필요하지도 않은 쑥개떡을 나는 어느 떡보다 좋아한다. 은은하게 나는 쑥 향과 쫄깃한 식감 때문이다. 대여섯 개는 한자리서 먹는다. 고향의 맛이고 엄마의 냄새가 나서다.
‘단군신화’에도 사람이 되고자 하는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먹고 동굴에서 견디라고 나온다. 호랑이는 견디지 못했지만 곰은 견뎌서 웅녀, 즉 곰에서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사람에게 꼭 필요한 쑥과 마늘의 효능을 그때부터 알았나 보다.
한방에선 쑥이 위와 간장을 강화하고 피를 맑게 하며 혈액순환을 돕고 살균 진통 지혈작용이 있다고 해서 약으로 쓴다. 어릴 때 코피가 나면 길가의 쑥 잎을 뜯어 비빈 후 코를 막으면 코피가 멎었다. 해산한 산모는 말린 쑥을 끓여 좌욕했다. 노화 방지에도 좋아 음식뿐 아니라 차, 염색, 화장품에도 두루 쓴다.
가을 길을 산책하다가 쑥을 소개하면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많다.
“이게 정말 쑥이야, 내 허리를 웃도는데?” 라며 한번 더 묻는다. 어른 허리춤까지 커서 씨앗을 달고 우거진 것을 보면 봄에 본 어린 쑥과 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식물을 볼 땐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봐야 한다.
주변에 쑥이 자라기 시작하면 농작물을 재배하는 사람은 머리가 아프다. 씨가 떨어져 퍼지고 뿌리로 번지는 쑥은 봄이면 여기저기서 솟기 때문이다. 그냥 두면 가을엔 키가 1m 정도로 자라 사방을 점령한다. 오죽하면 쑥이 덮은 밭은 쑥대밭이라며 게으른 농부를 놀리는 말로 쓸까.
따뜻한 햇볕을 등에 맞아 나른한 몸에 눈을 감으니 소리가 들린다. 새가 짝짓기하는 계절이다. 짝짓기가 끝나면 알을 낳고 키워야 하니 둥지를 짓느라 부산하다.
봄이면 또 다른 소리가 있다. 남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 소리, 땅을 일구는 농부의 기계 소리, 아이들의 높은 목소리다. 향긋한 쑥개떡을 먹으며 봄이 오는 소리를 들어야겠다.
봄이 오는 소리 -안숙현
사박사박 소곤소곤
또로록, 툭툭
예쁜 꽃 요정들이
속삭이는 소리
빨리 일어나
맑고 따뜻한 햇빛에
일광욕하고 싶다고
맑고 투명한 이슬로
샤워하고 싶다고
꽃 요정들의
봄을 알리는 소리
코 간지러워
잎이 나고
귀 간지러워
꽃이 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