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세상에 말 걸다’란 책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시에서 온 감동을 풀어내는 것이 조곤조곤, 너무 사랑스러워서 그냥 안고 말았어요. 윤성희 평론가가 나희덕 시인의 ‘이끼’를 소개하는 방법이네요.
나희덕의 ‘이끼’
그 물들
그냥 흘러간 게 아니었구나
닳아지는 살 대신
그가 입혀주고 떠나간
푸른 옷 한 벌
내 단단한 얼굴 위로
내리치며 때로 어루만지며 지나간
분노와 사랑의 흔적
물 속에서만 자라나는
물 속에서만 아프지 않은
푸른 옷 한 벌
굴이나 조개 같은 갯것들은 세월이 흐르면 흐른 만큼 세월의 부피들을 덕지덕지 달고 있더군요. 세월에 닳고 물살에 씻겨서 동글반반한 몸피로 변하기도 하련만 돌기는 점점 부풀어 오르고 패각은 다시 패각을 잇대면서 몸이 둥덩산만큼 불어납니다. 나는 굴을 볼 때마다 우리들 삶이 이와 같은 이치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번번이 하곤 합니다.
이사를 자주 한 나는 이삿짐을 꾸릴 때마다 우리네 삶이 영락없이 굴껍질을 닮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어쩌면 그렇게 많은 짐을 끌어안고 살았던 것인지요. 옷장에는 언제 입었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 옷이 구겨져 있기 일쑤고, 문갑 안에는 갖가지 뭉치 서류들이 꽁꽁 묶여서 포박이 풀릴 날만 기다리기 십상입니다. 앉고 서고 눕고 한 책장의 책들은 어느 날인가 그렇게 찾아도 보이지 않던 것인데 비죽한 냉소처럼 먼지만 머금은 채 나를 쳐다보지 뭡니까.
그게 어디 일상의 잡동사니뿐이겠습니까. 우리들 기억의 창고 속 잡동사니는 또 어떻구요. 예전에 이미 비우고 닦아 깨끗하게 정리된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던 불쾌한 기억은 없었습니까. 다 아물어서 아무렇지 않던 상처자국이 느닷없이 덧나서 머리끝까지 쑤시던 고통은 겪어보지 않았습니까. 저 삶의 뒷장에 단단히 비끌어 매두었던 것이 슬슬 풀어지며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해일을 만들어 낼 때의 혼란은 맛보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비워도 비워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욕망인지 기억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커다란 늪이 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을 듯합니다. 비우고 버려야 할 것들 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다가 그만 두는 것이 우리들 인생입니까. 오래 살고 많이 공부할수록 버리고 비우는 지혜를 터득해야 옳은 것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우리는, 아니 나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무소유’니 ‘비움’이니 ‘느림’이니 하는 것들이 물량사회, 속도사회의 대안적 가치로 떠오르는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떠오르는 생각이 있군요.
칠순의 노부부가 아들을 몹시 원해서 날마다 빌고 또 빌기를 잠시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 소원이 하도 애틋했던지 신령님은 마침내 부부에게 아들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세 살이 지나자 아이는 시름시름 앓다가 그만 늙은 부모와의 인연을 끊고 말았다는군요. 늙은 어머니는 통곡을 하면서 신령님을 원망하였고 늙은 아버지는 신령님께 감사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통곡하던 아내가 남편 얼굴을 쥐어뜯으면서 자식이 죽었는데 노래가 목구멍으로 나오느냐고 대들었겠지요. 남편은 어제는 살았던 아들을 가졌었고 오늘은 죽은 아들을 가졌으니, 생각해 보면 잃은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고 아내를 조용히 타일렀다 합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있었던 아이와 없어진 아이를 갖게 되어 벌써 우리에게 아이가 둘이 된 셈이오. 그러니 당신은 살았던 아이를 키우고 나는 죽은 아이를 키우기로 합시다. 그리고 아들을 둘이나 준 신령님께 감사합시다. 당신은 아이의 생을 통곡하고 나는 아이의 사를 노래 부를 터이니 내 얼굴을 할퀴지 마오. 피가 흐른다고 생이 있고 사가 없는 것은 아니오. 본디 생사는 하나이니 산 아이와 죽은 아이를 나누지 말고 둘을 하나로 봅시다.
장자 어록 중의 한 말씀입니다. 얼마나 더 내려놓아야, 아니 얼마나 더 자라야 저 장자의 경지에 이르겠습니까. 참으로 아득하기만 합니다. 그것이 어렵다면 시인인 강제인이 한 산문집 『보길도에서 온 편지』에서 들려주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는 어떻습니까.
여러 해 전 겨울입니다. 그때 나는 을지로 3가 지하철역에 내려 명동성당 쪽 지하도를 걷고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지나는 길이었고 늘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걸인들을 나는 무심히 지나치곤 했었지요.
자비심의 부족 때문인지 나이가 들면서 나는 걸인들에게 무엇인가를 나눠 줘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나 또한 별반 그들과 다를 바 없다는 자괴감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그들의 처지가 몇몇 착한 개인들의 자선만으로는 결코 개선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인식 때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나는 어떠한 걸인도 외면했었지요.
그러나 그 날 아침 처음 본 할머니만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부모님과 떨어져 할머니 밑에서 자랐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서였는지, 아니면 너무도 평화로워 보이는 할머니의 모습 때문이었는지, 나는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끌려 할머니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할머니에게 가면서 나는 주머니 속을 뒤적거렸습니다. 얼마를 드려야 할까. 어디 모시고 가서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이라도 사드려야 하는 건 아닐까. 짧은 순간이었지만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들이 오고 갔습니다.
할머니 추우시죠, 나는 물어볼 필요도 없는 말을 물어보며 무안함을 감추려 했습니다. 할머니는 그냥 웃기만 하시더군요. 할머니 이거 얼마 안 되지만 따뜻한 밥 한 그릇이라도 사 잡수세요. 나는 기껏 5천원짜리 한 장을 내밀며 생색을 내려 들었습니다.
순간 평화롭게 웃고 계시던 할머니의 표정이 바뀌었습니다.
젊은이 그렇게 큰돈을 함부로 쓰면 못써. 나는 그렇게 큰돈 필요 없으니까 5백원만 줘.
아니예요 할머니, 많지 않으니까 받으세요.
나는 억지로 할머니 손에 돈을 쥐어 드리려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한사코 손을 뿌리치셨지요.
할머니 잔돈이 없어서 그래요. 어서 받으세요. 잔돈이 없으면 그냥 가. 나는 할머니의 완곡한 거절에 밀려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저 자유로움, 물욕의 끈으로부터의 해방을 가난한 할머니는 몸소 보여줍니다. 할머니는 어떤 현자보다 빈손의 소중함을 몸을 체득하였던 게지요. 그것은 아마도 오랜 삶에서 곰삭아 우러난 지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정말 나이가, 세월이 모든 것을 가르쳐 줍니까. 나도 저 할머니처럼 나이가 들면 나를 옭아매는 모든 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나는 저 할머니의 경지에는 터무니없이 미치지 못할 듯합니다.
나에게는 차라리 흐르는 물에 할퀴고 닳아진 살만큼 푸른 옷 한 벌(이끼)로 돌려받는 바위의 모습까지도 성자다워 보입니다. 장자의 어법대로라면 바위는 깎인 것도, 할퀸 것도 없는 제 몸 그대로일 따름입니다. 하지만 나희덕은 분노라는 날줄과 사랑이라는 씨줄로 짜여진 ‘푸른 옷 한 벌’에서 이제 아픔을 삭인 아름다움을 흐르는 물살에 기억으로 풀어놓습니다. 그렇겠지요. 지난날의 상처들이 아주 없어지지는 않을 터이지요. 그러나 그 상처들을 깁고 짜서 아름다운 옷 한 벌을 베풀 수 있는 경지 또한 나 같은 사람이야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지요. 나희덕의 깨달음은 그래서 또 하나의 소중한 울림이 됩니다.
물이 그냥 흘러가지 않고 푸른 옷 한 벌을 돌에 입혀주고 갔다네요. 분노와 사랑도 그냥 간 것이 아니라 내 얼굴에 푸른 옷 한 벌 입히고 갔다네요. 나는 누구에게 오늘 어떤 옷을 입히고 지냈는지요. 또 나는 무슨 색의 옷을 입었는지요. 아프지 않은 물이 있어 다행인가요? 윤성희 평론가의 말을 따르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바다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