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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미린 매화나무에 꽃이 피려나  

등록일 2022년03월04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아파트 정원에 잘린 나뭇가지가 수북하게 쌓였다. 소나무, 벚나무, 단풍나무, 칠엽수(마로니에)다. 불길한 생각이 들어 얼른 산책로에 있는 매화나무로 갔다. 아차! 한발 늦었다. 3월을 며칠 앞둔 날이다. 봉긋하게 꽃망울이 올라 막 필 준비를 한 매화나무 가지가 잘려 흩어졌다. 가지 하나 집어 나무에 맞춰본다.  

청수동의 우미린아파트 정원에서 제일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나무다. 북풍을 아파트가 막아주니 겨울에도 온종일 해를 맞는다. ‘여기는 내 영역이다.’라고 자랑하듯 가지는 남쪽으로 한껏 뻗었다. 그들을 피해서 머리를 숙이거나 길가로 가야 한다. 그래도 외출할 때나 마트에 갈 때 일부러 이 매화나무 아래를 지나다녔다. 
 


작년 매화를 보던 때가 생각난다. 나무 가득 하얗게 꽃이 피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화르르 내릴 것 같았다. 그런 날은 나무 아래서 머뭇거리다가 매화꽃 아래로 아이들을 데려왔다. 매화나무는 가시가 많다. 조심스럽게 가지를 잡아 아이의 코에 바싹대고 매향을 맡게 했다. 지나가다 무슨 꽃이냐고 묻는 이가 있으면 더 반갑다. 나뭇가지에 찰싹 붙은 꽃을 보여주면서 꽃자루가 긴 벚꽃과의 차이점까지 말해주었다. 내심 아이들 잘 들으라고 조금 목소리를 높였다. 

매화가 열매를 달면 또 마음이 달떴다. 초록색 통통한 매실은 매실청을 담거나 장아찌를 만들고 노랗게 익은 것은 매실주를 담았다. 매화 흐드러지게 핀 나무 아래에 자리 하나 깔고 앉아 맛본 매실주에 반한 후다. 매실주를 가져온 문우는 10년이 넘은 시간이 은은한 향을 깊게 했다며 자랑했다. 그 향과 맛을 기억하며 기다리는 시간을 즐기는 것이다.   

지난해 일이다. 아이들과 매화나무 아래를 걷는데 그 매실 향이 코에 들었다. 매실은 황금색이었다. 손이 절로 갔다. 막 손이 매실에 닿는 순간 따끔한 느낌이 들어 얼른 손을 빼고 나무를 보니 커다란 벌이 있었다. ‘아차!’ 하고 보니 금방 손가락이 벌겋게 부어올랐다. 다행스럽게 며칠 후 가라앉았다. 잘 익은 매실은 나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끼던 매화나무 가지가 잘린 것을 보고 잠을 못 이룬 분이 있다. 천안의 ‘들꽃세상’ 식물원 주인장이다. 모교에 매화나무를 여러 주 기증하는데 이동이 문제였다. 조경사는 이동하기 편하게 전지를 했고 이 상황을 모르던 매화나무 주인은 잘린 가지를 하나하나 주워들고 잠을 못 이뤘단다. 결혼기념으로 심은 매화를 사랑을 키우듯 30여 년 키운 나무였다. 부인은 마음 상한 남편이 잘못될까 함께 밤을 새웠다는 뒷이야기를 들었다. 
 


나무는 꼭 전지해야 하나 궁금한 생각이 든다. 죽은 가지를 잘라주어 통풍이 잘 되게 한다는 이유도 그럴 듯하고, 정원의 조경수니 멋진 나무의 형태로 만든다는 이유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런데 나무는 사람들 보기에 멋진 나무로 살고 싶을까?

‘타이타닉’으로 유명한 배우 케이트 윈즐릿이 지난해 감독에게 한 말이 유명하다. Don't you dare! 우리말로 ‘그러기만 해봐’다. 베드신을 찍은 후 체중이 분 그녀의 몸매를 보정하려는 감독에게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계속해서 변하고 움직이는 우리의 몸은 아름답다. 자꾸 보정하면 우리의 변해가는 얼굴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없다. 실제로 존재하는 진짜 삶을 놓치지 않기 바란다.” 케이트 윈즐릿이 한 말이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게 두는 일, 그리고 그것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각 종류의 나무들이 제각각 자라 아름다운 숲을 이루듯 주어진 성정대로 살면 되지 않을까? “이렇게 해야 한다.” 라거나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이들을 보면 피하고 싶은 이유다. 매화가지를 내려놓으며 매화가 되고 싶다고 한 조선시대 대학자 퇴계 이황을 떠올렸다.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前身應是明月 幾生修到梅花).   


이황의 매화 사랑을 따를까마는 잘린 가지를 다시 집어 작은 가지 두엇 꺾는다. 병에 꽂아 놓으면 꽃을 피울까? 핑곗김에 봄을 일찍 맞을 수 있기도 하고 또 나와 매화를 위로하는 작은 방법이다. 

 

김다원 리포터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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