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정원에 잘린 나뭇가지가 수북하게 쌓였다. 소나무, 벚나무, 단풍나무, 칠엽수(마로니에)다. 불길한 생각이 들어 얼른 산책로에 있는 매화나무로 갔다. 아차! 한발 늦었다. 3월을 며칠 앞둔 날이다. 봉긋하게 꽃망울이 올라 막 필 준비를 한 매화나무 가지가 잘려 흩어졌다. 가지 하나 집어 나무에 맞춰본다.
청수동의 우미린아파트 정원에서 제일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나무다. 북풍을 아파트가 막아주니 겨울에도 온종일 해를 맞는다. ‘여기는 내 영역이다.’라고 자랑하듯 가지는 남쪽으로 한껏 뻗었다. 그들을 피해서 머리를 숙이거나 길가로 가야 한다. 그래도 외출할 때나 마트에 갈 때 일부러 이 매화나무 아래를 지나다녔다.
작년 매화를 보던 때가 생각난다. 나무 가득 하얗게 꽃이 피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화르르 내릴 것 같았다. 그런 날은 나무 아래서 머뭇거리다가 매화꽃 아래로 아이들을 데려왔다. 매화나무는 가시가 많다. 조심스럽게 가지를 잡아 아이의 코에 바싹대고 매향을 맡게 했다. 지나가다 무슨 꽃이냐고 묻는 이가 있으면 더 반갑다. 나뭇가지에 찰싹 붙은 꽃을 보여주면서 꽃자루가 긴 벚꽃과의 차이점까지 말해주었다. 내심 아이들 잘 들으라고 조금 목소리를 높였다.
매화가 열매를 달면 또 마음이 달떴다. 초록색 통통한 매실은 매실청을 담거나 장아찌를 만들고 노랗게 익은 것은 매실주를 담았다. 매화 흐드러지게 핀 나무 아래에 자리 하나 깔고 앉아 맛본 매실주에 반한 후다. 매실주를 가져온 문우는 10년이 넘은 시간이 은은한 향을 깊게 했다며 자랑했다. 그 향과 맛을 기억하며 기다리는 시간을 즐기는 것이다.
지난해 일이다. 아이들과 매화나무 아래를 걷는데 그 매실 향이 코에 들었다. 매실은 황금색이었다. 손이 절로 갔다. 막 손이 매실에 닿는 순간 따끔한 느낌이 들어 얼른 손을 빼고 나무를 보니 커다란 벌이 있었다. ‘아차!’ 하고 보니 금방 손가락이 벌겋게 부어올랐다. 다행스럽게 며칠 후 가라앉았다. 잘 익은 매실은 나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끼던 매화나무 가지가 잘린 것을 보고 잠을 못 이룬 분이 있다. 천안의 ‘들꽃세상’ 식물원 주인장이다. 모교에 매화나무를 여러 주 기증하는데 이동이 문제였다. 조경사는 이동하기 편하게 전지를 했고 이 상황을 모르던 매화나무 주인은 잘린 가지를 하나하나 주워들고 잠을 못 이뤘단다. 결혼기념으로 심은 매화를 사랑을 키우듯 30여 년 키운 나무였다. 부인은 마음 상한 남편이 잘못될까 함께 밤을 새웠다는 뒷이야기를 들었다.
나무는 꼭 전지해야 하나 궁금한 생각이 든다. 죽은 가지를 잘라주어 통풍이 잘 되게 한다는 이유도 그럴 듯하고, 정원의 조경수니 멋진 나무의 형태로 만든다는 이유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런데 나무는 사람들 보기에 멋진 나무로 살고 싶을까?
‘타이타닉’으로 유명한 배우 케이트 윈즐릿이 지난해 감독에게 한 말이 유명하다. Don't you dare! 우리말로 ‘그러기만 해봐’다. 베드신을 찍은 후 체중이 분 그녀의 몸매를 보정하려는 감독에게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계속해서 변하고 움직이는 우리의 몸은 아름답다. 자꾸 보정하면 우리의 변해가는 얼굴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없다. 실제로 존재하는 진짜 삶을 놓치지 않기 바란다.” 케이트 윈즐릿이 한 말이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게 두는 일, 그리고 그것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각 종류의 나무들이 제각각 자라 아름다운 숲을 이루듯 주어진 성정대로 살면 되지 않을까? “이렇게 해야 한다.” 라거나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이들을 보면 피하고 싶은 이유다. 매화가지를 내려놓으며 매화가 되고 싶다고 한 조선시대 대학자 퇴계 이황을 떠올렸다.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前身應是明月 幾生修到梅花).
이황의 매화 사랑을 따를까마는 잘린 가지를 다시 집어 작은 가지 두엇 꺾는다. 병에 꽂아 놓으면 꽃을 피울까? 핑곗김에 봄을 일찍 맞을 수 있기도 하고 또 나와 매화를 위로하는 작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