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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산사에서 하룻밤, 어때?

경치좋고 맛좋고 고즈넉한… '마곡사 템플스테이' 1박2일 체험

등록일 2022년01월14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마곡사 은은한 범종 소리는 깊은 어둠을 몰고 오고 
소박하고 깔끔한 음식은 꿀맛이네! 


한 번쯤은 꿈꾼다. 눈이 하얗게 내린 산사에 며칠 머물고 싶다. 눈 묻은 신발 벗고 툇마루에 오르면 저녁 예불 알리는 범종소리 은은하게 퍼지고, 그에 답하듯 멀리서 밥 짓는 연기 오르는 곳에 가고 싶다. 밤이 되면 내 발소리조차 반가운 그런 곳에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다 따끈한 방바닥에서 잠들고 싶다. 담백하면서도 맛난 음식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면 더 좋다.
 

바라고 바라면 전 우주가 돕는다고 했던가. 그저 눈짓만으로도 마음을 헤아리는 벗들과 공주의 마곡사로 향했다. 집에서 멀지 않을 것, 조용할 것, 음식이 맛날 것으로 택한 곳이다. 친구의 퇴직을 기념하는 첫 여행, ‘템플스테이(Temple Stay)’다.

천안시와 공주시를 가르는 터널을 지나니 구불구불 운치있는 시골길이 나왔다. 10여 분을 달려도 마주오는 차가 없다. 마곡사 가는 길은 어느 때든 아름답다. 봄 길도 아름답지만 천진한 시골소녀의 미소같은 감자꽃이 보이는 6월도 좋다. 가을이면 밤이 떨어질 듯 아람 번 밤송이에 눈이 더 가던 그 길을 간다.

매표소를 지나 절로 들어가는 산길이 아름답다. 골이 깊은 내를 곁에 두고 걷는 길이라니, 싸목싸목 걸으며 바람에 흔들리는 겨울나무의 풍경을 본다. 10분쯤 걸었을까? 절은 걸어온 길보다 낮은 곳에 있다. 고목과 어우러진 절이 과하지 않다. 관광객으로 북적대는 다른 철과 다르다. 인적이 없다.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영산전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다가 사천왕상, 명부전을 지나 다리를 건너면 아름다운 범종루가 오른쪽에 우뚝 서있다.

절 앞마당에 석탑이 있고 그 뒤에 대광보전이 보인다. 오래된 사찰을 증명하듯 대광보전의 탱화는 지워져 거의 색이 없다. 대광보전 뒤 더 높은 곳에 대웅보전이 보인다. 석탑 왼쪽에 김구 선생이 머물렀던 백범당이 있다. 
 

우리가 머물 장소를 찾는다. 아! 템플스테이 안내문이 붙어있다. 오른쪽으로 가니 여러 채의 건물이 보인다. 안내자가 나왔다. 경내에서 입을 옷을 받고 숙소를 배정받았다. 계절에 따라, 또 체험형인가 휴식형인가에 따라 머무는 동안의 활동이 달라진다.

우리는 쉬고 싶어 갔으니 휴식형이다. 1박2일에 6만원, 세 끼의 밥이 나오고 새벽 예불이나 차담에 참여할 수 있다. 체험형은 계절에 따라 다양한 활동이 있다. 

숙소는 전통한옥의 모습이다. 툇마루를 통해 격자 창호지 방문을 여니 유리문이 또 있다. 난방을 고려한 장치다. 군불을 땐 시골방을 상상했으나 이불을 깔아놔야 조금 따뜻한 정도였다. 맞은편 문이 환해서 열어보니 현대식 세면실이었다. 머무는 이를 위한 고려이나 옛 건물과 어우러진 것이 아니어서 아쉬웠다. 
 

짐을 풀고 나오니 해설사가 기다리고 있다. 설명이 이어졌다.

‘마곡사는 640년(백제 무왕 41년)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했다. 창건 당시 30여 칸의 대사찰이었으나 지금은 대웅보전, 대광보전, 영산전, 사천왕문, 해탈문 등이 남아있다.

백범당, 석탑, 군왕대와 삼신전등이 있다.’는 건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끝나자 시간이 되면 군왕대도 오르고 백범이 머물던 백련암에도 가보란다. 
 

백련암 입구의 우람한 나무가 심상치 않다. 쭉쭉 뻗던 두 나무의 상부가 뚝 잘렸다.

하나의 한국을 염원하던 백범의 의지가 잘린 것처럼 보였다. 아직도 하나가 되지 못한 한반도를 저 세상의 백범이 보고 있다면 어떤 마음일까. 
 

저녁을 먹으러 공양처에 갔다. 사찰음식이니 담백하기만 할까?

색색의 파프리카와 다시마, 들기름으로 무친 시래기, 풋고추볶음과 연근조림, 감과 사과로 담은 김치 등이다. 귤과 바나나 파인애플도 싱싱했다. 떡도 있었다. 사찰음식이 이리 맛나다니. 그저 즐거운 입을 다물지 못했다.
 

툇마루에 앉아 검은 하늘에 뜬 달과 별을 하염없이 보고 싶은 밤, 그러나 겨울추위는 얼른 방으로 몸을 몰았다. 문명의 기기라곤 전등 하나다. 개 짖는 소리나 고라니 울음소리라도 날 법한데 이웃 방에서 가끔 문 여닫는 소리만 났다. 이불 속에 발을 넣고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하다가 고조곤히 감기는 눈을 바닥으로 눕혔다. 새벽예불 소리가 아련히 들려 참석하고 싶었으나 그냥 또 잠이 들었다. 

일찍 일어나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밥값을 냈으니 아침공양은 해야 한다. 어제저녁을 잘 먹었으니 아침 밥맛이 없을 것 같다며 공양처로 갔다.

햐! 화려한 색의 반찬과 들기름 냄새가 입맛을 돋운다. 하얀 잣죽을 한 수저 입으로 가져가니 고소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상큼한 미나리 무침과 깊은 맛의 표고버섯구이, 따뜻한 감자조림과 배추쌈까지 있다. 저녁보다 찬이 더 맛났다.

어제 해설사가 마곡사 사찰음식을 먹고 싶어 템플스테이 온다는 이가 있다는 말이 헛말은 아닌 듯싶다. 
 

아침을 잘 먹었으니 경내를 돌아본다. 사찰에 머무는 사람을 위해 만든 건물이 사찰과 잘 어우러져 이질감이 없다.

선이 부드러운 대문의 기둥. 계단처럼 찍은 통나무를 밟고 올라야 하는 2층 건물도 눈을 끌었다. 기와를 쌓아 만든 굴뚝의 부드러운 선이 아름답다.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왔으니 중국풍의 건축양식이 들어있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친구가 마당가에 멋지게 서 있는 백송을 보더니, ‘우리나무’란다. “맞다”며 나무를 카메라에 담았다. 나무 아랫부분에서 벋은 가지가 셋이다. 어느 것이 더 잘났다 할 것 없이 둥치의 두께가 고르다. 그리고 곧게 뻗었다. 우리다. 오랫동안 한마음에서 나온 것처럼 마음이 통했다. 그리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를 존중한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우리들의 마음’ 같은 나무다.  
 

절 둘레의 낮은 담을 끼고 간다. 기와의 부드러운 곡선을 들여 심심한 담에 멋을 냈다. 담쟁이 잎이 무성한 여름엔 못 보는 아름다움이다.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고, 여름이면 무성한 나뭇잎이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물과 어우러진다. 가을이면 단풍이 붉은 잎으로 환성을 하늘로 올리는 마곡사다. 그저 스치듯 보던 곳이 하룻밤 머문 후엔 오랫동안 친숙했던 곳인 양 평안했다. 

“계절마다 와서 머물다 가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편집부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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