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도 구좌면 연두막 동산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비.
독립기념관(관장 한시준)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부춘화(1908~1995), 김옥련(1907~2005), 부덕량(1911~1939) 선생을 2022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이들은 일제 식민지 수탈정책에 맞서 제주해녀항일운동을 전개한 해녀들이다.
부춘화(夫春花), 김옥련(金玉連), 부덕량(夫德良)은 해녀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설립된 해녀어업조합이 1930년대 일본인 제주도사(濟州島司)가 조합장을 겸임하면서 수탈기구로 성격이 변질되자 횡포에 맞서 1932년 제주해녀항일운동을 주도한 주역들이다.
일찍부터 해녀로 지내오던 부춘화·김옥련·부덕량은 하도보통학교 야학강습소에서 민족교육을 받으며 일제 식민지 지배의 부당함을 인식하고, 이때 키운 항일의식을 바탕으로 해녀회(海女會)를 조직했다.
1931년 6월부터는 채취한 생산물의 가격을 강제로 낮추고 해산물 채취금지를 협박하며 해녀들의 생계를 위협한 해녀어업조합을 규탄하는 항의서를 제출하고, 주변마을 해녀들을 규합하는 활동 등에 앞장섰다. 활동이 점차 조직화되면서 1931년 12월 해녀대표로 선출돼 직접 투쟁을 계획했다.
▲ 제주해녀항일운동이 전개된 세화 5일장터.
1932년 1월 7일 1차 시위운동을 전개한 부춘화·김옥련·부덕량 등은 해녀어업조합의 착취를 성토하며 구좌면사무소로 행진 후 면장에게 요구조건 해결을 약속받고 해산했다. 그러나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새로 부임한 제주도사의 순시(巡視)가 있던 1월12일, 제주 곳곳의 해녀 1만여 명이 세화리 5일장에 결집해 2차시위를 전개했다. 해녀들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제주도사를 포위한 후 직접 협상해 ‘일본상인 배척’ 등 요구조건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며칠 뒤 일제경찰은 해녀들을 체포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부춘화·김옥련·부덕량이 붙잡혀 미결수로 6개월간 옥고를 치뤘다. 정부는 공훈을 기리어 2003년 부춘화·김옥련에게 건국포장, 2005년 부덕량에게 건국포장을 추서·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