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이란 시 앞부분입니다. 늦여름 포도도 맛났지만 찬바람이 이는 늦가을의 사과는 달고 시원합니다. 사과를 생각하면 생각나는 일이 있습니다. 아버지 친구 분이 이웃동네에서 과수원을 하셨습니다. 자루에 쌀을 두어 됫박 넣어서 가면 자루 가득 사과를 담아주셨지요. 특별 선물이라며 애호박만큼 큰 사과를 하나 주시기에 보물인양 TV 상자위에 놓고 보았지요. 어느 날 보니 사과는 썩고 있었고, 버리기 아까워 썩은 부분을 오려내고 먹고는 정신을 잃었어요. 아버지는 저를 등에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어요. 사과가 귀하던 어린 날의 추억입니다. 오늘은 달콤한 사과 냄새를 맡으러 이문호 시인에게 갑니다.
사과 냄새
유년시절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광주리에 사과를 담아 이고
이웃을 돌며 팔았다
밤늦게 돌아온 어머니는
늘 향기로운 사과냄새가 났다
나는 사과 먹겠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어떤 날 어머니는
“얘야, 오늘은 많이 팔았으니 하나 먹자”며
잘 깎은 사과를 나에게 주었다
얼마나 먹고 싶고
먹이고 싶었던 사과였던가
향기롭던 사과 냄새와 맛을
그날 비로소 맛보았다
옛날옛날 이야기이다
사과에 추억을 갖고 계신가요? 사과 꽃향기가 그득하던 과수원 길을 걸으셨나요?
얼기설기 얽은 대바구니에 담긴 빨간 사과를 들고 아가씨 집을 방문하신 추억도 있나요? 윤동주 시인은 ‘아버지와 누나와 사과의 송기까지 다 먹던 추억이 있다.’고 시를 썼어요. 사과 향에 취하는 가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