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서리 내린 담임선생님이 소녀의 뺨을 때렸다.
초등학교 3학년, ‘순딩이’란 말을 자주 듣는 편인데 무슨 일인지 숙제를 못 해가서 처음 뺨을 맞았다.
머리가 휙 돌아가며 정신이 아득했다.
그 순간 아픈 것보다 농사 일로 바쁜 엄마를 생각했다. 양 갈래로 땋은 머리를 풀었다. 오늘 잘 견디면 내일은 손바닥 자국이 없어지려나.
가방을 마루에 던져놓고 밖에 나가 놀다가 어두워져서 돌아왔다. 공부를 핑계로 등잔불 앞에 앉았다. 엄마는 내 등만 보니 괜찮다.
다음에 또 맞으면 어쩌나 걱정과 선생님의 째진 눈이 자꾸 떠올라 잠을 설친 다음 날, 서리가 왔다.
학교 가는 걸음이 천근이다. 길섶 풀에 앉은 물방울에 바지가 젖으니 더 무겁다. 몇 걸음 가다가 쪼그리고 앉아 벼 벤 논을 본다. 하얗게 내린 서리에 마음이 시리다.
버석버석 발이 닿는 곳마다 소리도 춥다. 논둑을 지나고 숲길을 지나 신작로를 따라가면 학교가 있다. 가도 가도 학교는 가까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20여년이 흘렀다.
고향에 들렀더니 그 선생님은 경운기 타고 가다 깊은 냇물로 떨어져 돌아가셨단다.
누구는 술에 취해서라고 했다. 하나도 섭섭하지 않았다. 뺨 한 대의 기억이 그리 깊다니.
가슴에 내린 서리는 녹기가 쉽지 않은가보다. 여리디 여린 잎에 내린 서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