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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원 수필가의 '통증'

등록일 2021년08월28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뭐해?” 
늘 하던 안부 전화였다.

“언니, 나 집 나왔어!”
“으응?”

그녀는 전화선에 구구절절 분노를 토했다. 다시는 집에 안 들어가려고 장독을 깨부수고 나왔단다. 
“그래, 잘했어! 다 잊고 좀 쉬어.” 

장독을 깬 그녀에게 잘했다고 역성을 들었다. 그녀가 기껏 간 곳은 장가 안 간 아들 원룸이었다. 그녀의 아들에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라고 당부했다. 싸움 이야기를 들을 땐 양쪽 모두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이가 얼른 그녀의 남편을 찾아갔다. 수박 모종을 더 심자, 아니다 그만 심자 하다가 다툼이 시작되었단다. 

다음 날 아침 그녀의 집으로 갔다. 문은 열렸는데 아무도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병아리들이 종종거리고 있는 닭장엔 물이 없었다. 물 한 바가지를 주니 갈증 난 병아리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온실 안의 고추 모와 호박 모도 나를 간절한 눈으로 보았다. 얼른 물뿌리개를 들고 물을 날랐다. 집 둘레엔 대추 모과 앵두나무가 뿌리를 굳게 내리려 버티고 있었다. 깨진 장독을 어찌해야 하나 하고 둘러보는 내 곁에 그녀의 남편이 비척비척 다가와 섰다. 

“워치기 장독을 때려 부신대유? 옛날 엄니들은 장 담구 나서 떡 해놓고 빌기까지 했다는 디!” 
과일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면 함께 따고, 연못에 물고기가 많이 불어나면 고기 잡자고 했던 그다. 날마다 일이 있어 살 이유를 준다는 자작시를 문짝에 써놓고 드나들었다. 어둠이 걷히고 빛이 뿌옇게 퍼지는 순간에 얼른 일어나야 가장 좋은 정기를 받는다는 그는 머리도 동쪽에 두고 잤다. 해가 일찍 안 뜬다고 안달했다는 현대그룹 창시자 ‘정주영’ 씨가 생각나는 사람이다.
그는 콩 농사도 많이 지었다. 햇살과 잘 어우러진 자기 집 된장이 최고 맛있는 장이 될 것이라며 벙글벙글하던 그의 웃음이 깨진 항아리 아래에 팽개쳐져 있었다. 그의 처진 어깨를 세워주는 일은 그의 말에 공감하는 것이다. 그러나 깨진 항아리와 망가진 장이 먼저 보이는 그의 눈에, 몸의 고통 때문에 불이 꺼진 아내의 눈동자를 볼 수 있게 하는 일 또한 중요한 일이었다. 

아주 집을 버릴 것 같던 그녀의 모난 언어가 하루 만에 아들 차에 실려 왔다. 그녀가 아들을 재촉했다. 요새 애들 말로 ‘안 봐도 비디오’다. 오만가지가 눈에 밟히니 하루인들 편하게 있었을까? 그녀는 겉옷 벗기가 바쁘게 밥을 지어 상을 차렸다. 우렁이 듬뿍 넣고 보글보글 끓인 된장찌개를 남편 수저 옆으로 놓았다. 많이 먹으라는 말과 함께. 그는 쪼그리고 앉아 마지못한 듯 밥그릇을 비우고 상 옆으로 나가 앉았다. 한바탕 소란이 날 줄 알았는데 밥이 먼저였다. 설거지가 끝나길 기다려 그녀에게 말했다.

“목욕이나 가자, 때밀이한테 때도 밀고.” 
온천에 가기는 고사하고 혈압약이 떨어져 병원에 들렀다가 고지혈에 황달까지 병든 곳을 더 확인하고 돌아온 그녀였다.  

“언니, 수박 모 심어야 돼, 목욕 갈 새 읍써.”
그녀는 수박 모종을 옮기며 한마디 더 내뱉었다. 
“장항아리 안 깼으면 그 인간 나한테 죽었어.”

밖으로 나와 아수라장이 된 장독을 치우려다 보니, 깨진 항아리 조각에 콩밭 매다 일어서서 허리를 젖히던 엄마가 보였다. 무장아찌같이 일에 찌든 그녀 얼굴이 또 거기 있었다. 
아직도 수박 모를 더 심고 싶은지 빈 두둑에서 눈을 못 떼는 그에게 한마디 하고 돌아섰다.

“장항아리 깨진 것만 아까워 말고 삭아 무너지는 마누라도 챙기세요. 수술한 허리를 무리하게 쓰니 밭고랑에서 일어나려면 무릎지팡이 짚어야 일어나네요.” 
그녀의 구부정한 등을 한 번 더 쓰다듬고 차에 오르는데, 아들 공부시키느라 진 빚을 올해 고생하면 다 갚는다는 그의 말이 따라왔다. 

알을 발등에 올려놓고 눈보라를 몸으로 받는 아사 직전의 아빠 펭귄이 자동차 거울 속에 한동안 서 있었다. 

김다원 리포터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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