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을 앞두고 수박밭을 돌보고 있는 도고면 화곡리 주민들.
“장마철만 되면 곡교천 주민은 불안합니다.”
염치읍 곡교리에서 논농사를 하고 있는 조성렬(53·농민)씨는 이곳이 불안하기 짝이 없다고 토로한다.
수확철을 코앞에 두고 작년 8월 비로 이곳 일대는 모두 물에 잠겼다. 조씨는 수확은 꿈도 꾸지 못한 채 농사를 접어야 했기 때문이다.
작년 8월6일과 7일 이틀 동안 내린 최고 2백4mm에서 최저 1백15mm의 비로 가옥 침수, 산사태, 농작물 피해가 일어났다.
인주면 신성리는 6가구가 침수됐고, 배방면 곡교리 주민들은 천안천의 범람으로 대피하는 소동을 빚었으며, 곡교천 주변 농가는 농작물에 큰 피해를 입었다.
염치~인주간 39호 국도상 절개지에서는 10톤 가량의 토석이 떨어져 이곳을 지나던 차량의 후미를 덮쳐 3명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커다란 장마 피해가 없었던 아산시로서는 작년의 비 피해가 아산시 재해재난에 대한 새로운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삽교천 범람의 역수현상
장마철 아산시에 가장 큰 피해를 주는 것은 삽교천으로 이어지는 곡교천의 역수현상이다. 삽교천이 만조가 되도 비가 많이 내리면 바닷물이 역류가 되어 들어오기 때문에 방류할 수 없게 된다. 시간당 1만톤씩 쏟아지는 곡교천 물이 바다로 방류가 안 되면 자연히 물이 불어 곡교천 근처의 농경지와 농가를 잠식할 수밖에 없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는 삽교천 방조제 설치 이후 계속되어 왔다.
다만 커다란 피해가 없어 주변 시설에 제방을 쌓거나 둑을 쌓아 피해를 줄였다.
“작년의 갑작스런 호우로 시가 내놓은 일시방편적인 대책으로는 농경지를 완전하게 보호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성대철 곡교리 이장이 말했다.
시는 작년의 비 피해지역과 재해 예상지역에 20억원을 투여하고 이중 16억원을 곡교리 제방쌓기에 쏟았다. 2km 구간에 제방을 쌓아 역수현상이 빚어지더라도 더 이상 주민 피해가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근본적인 처방은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곡교천이 범람할 때, 물이 넘치지 않게 제방을 쌓는 것이지만 제방이 무너질 경우 더 큰 피해를 불러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가뭄이 들 때는 물을 곡교천에서 끌어와야 하는데 제방높이가 오히려 농사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는 것.
곡교천을 낀 영인면도 같은 생각이다. 작년의 비 피해로 영인면은 1백58ha가 물에 잠겼다.
이곳은 하천폭이 좁고 직강으로 된 곳이 많아 피해가 많았다고 주민들은 전한다.
염치읍 주민들은 이곳에 배수펌프장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펌핑을 통해 물이 넘칠 경우 곡교천으로 빼내고 논경지 침수가 더 이상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같은 내용으로 염치읍 주민들은 작년에 농업기반공사에 배수펌프장을 의뢰해 놓고 있는 상태이나 현재까지는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고 있지 않다.
김효섭 아산시 재난관리과 담당은 “농업기반공사가 이같은 일을 시행할 수 있도록 계속 의뢰와 협조를 구하고 있는 중”이라며 “계속해서 장마로 인한 주민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농작물 피해 줄여라
작년에 가장 비 피해를 많이 입은 지역은 염치읍과 영인면이었다.
곡교천을 옆에 끼고 있는 염치읍 3백ha가 잠겼으며, 영인면 1백58ha 등 6백ha가 물에 잠겼다. 이밖에 비닐하우스 오이농가 1.5ha, 토마토 1.5ha, 대파농가 0.2ha, 배 0.2ha 등이 침수됐다.
농작물 피해가 많았으나 농작물 재해보상보험에 의해 손실을 보전한 곳은 단 한곳도 없다.
또 농작물 재해보상보험이 아직 큰 실효가 없기 때문에 농민들은 이에 의존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이관섭 아산농업기술센터 환경농업 담당은 “장마로 인한 피해 중 논농사가 가장 많은 부분 피해를 입고 있다”며 “사전 점검과 정비로 피해를 막도록 조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집중호우 예보가 있을 때는 미리 논두렁 여러 곳에 물꼬를 만들되 헌비닐을 깔아서 무너짐을 방지하고 침수 상습지에는 질소질 비료를 20~30% 덜 주고 칼리질 비료를 20~30% 더 주라고 당부했다.
축산의 경우 붕괴위험이 있는 축대보수 및 축사주변 배수로를 정비해 예방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농기계류도 기름칠을 잘하고 비가 맞지 않도록 보관하며 디젤기계의 경우 연료통에 연료를 채워 보관하지만 휘발유 기계는 연료를 완전히 제거한 다음 보관토록 당부했다.
장마철에 공사
비가 10mm 안팎으로 내린 지난 11일(수) 도고면 하천, 영인면, 염치읍의 장마철 주요 피해지역을 다녀봤다.
비가 오고 있어서인지 장마철 대비 공사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약간 높아진 제방이나 주민들이 논두렁, 밭두렁의 배수로를 정비하기 위해 나온 것만 간간이 볼 수 있었다.
아산시 선장면 군덕리에서 도고면 기곡리에 이르는 도고천 2.16㎞도 해마다 집중호우에 물이 넘치거나 둑이 터져 인근 1천4백여 주민과 33만여㎡의 농경지가 상습침수피해를 당하고 있다.
현재 이 지역은 하천정비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이모씨(도고·상업)는 “해마다 뭔 공사는 하긴 하는데 꼭 비올 때쯤 시작해 비가 그칠 때쯤 끝난다”며 “어떤 때는 공사로 빗물이 인근 주택으로 넘칠 때도 있다”고 토로했다.
이에 아산시는 “예산 책정이 늦어 공사가 늦게 진행돼 이런 불편이 야기된다”고 설명했다.
보통 예산이 책정되는 시기는 12월. 의회 의결을 거쳐 1월이면 시행할 수 있게 되고 겨울에는 공사기간이 맞지 않아 봄부터 실행하다 보면 장마철을 맞게 된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로 장마 피해는 더 이상 재해가 아니라 인재로 이어지고 있다.
아산시의 경우 재해위험 및 수해상습지, 하천정비지구가 24곳이나 된다.
소요예산도 재해위험지구(4곳) 16억원, 수해상습지구(20곳) 4억원이 된다. 하도정비지구(60곳)로 모두 20여억원이 소요되고 있지만 현재 공사가 마무리된 곳은 거의 없다.
공사장 주변도 위험
해마다 장마철이면 붕괴위험이 도사리는 교량과 노후 옹벽 등은 개인시설물로 당국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특히 대형신축아파트, 건설현장 중 중도에 공사가 중단된 곳은 집중호우 때 붕괴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실제로 신창면 모 아파트 건설현장은 갑작스런 부도로 완공을 앞두고 공사가 멎은 지 2년이 지나도록 안전관리를 하지 않아 대책이 시급한 형편이다.
시 관계자는 “방재시설물 12곳과 대형공사장 10곳을 특별관리 하고 있으며 장마철을 앞두고 일제 점검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도 관계자는 “재해취약 시설의 근본적인 해소를 위해 지난 97년부터 오는 2010년까지 연차별로 정비계획을 잡아놓고 있다”며 “수해가 반복해 일어나는 소하천 가운데 투자효과가 큰 하천부터 치수와 하천환경 등을 고려해 자연친화적으로 정비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