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이 몇 알 튕겨 나갔다. 얼른 줍다가 생각했다. ‘두어 숟가락 뜨다가 만 뜨거운 밥도 아무렇지도 않게 쓰레기로 나가는데 이 무슨 짓인가?
밥알 하나라도 남기면 불호령이 떨어지며 “쌀 한 톨이 네 입으로 들어가는데 얼마나 손이 많이 가고 땀을 흘려야 하는지 아느냐?”고 말씀하시던 아버지가 떠오른다.
낫으로 벼를 베고 탈곡기를 발로 밟아 이삭을 털어 방앗간까지 지게에 지고 가서 껍질을 벗긴 후에야 쌀이 되어 집으로 왔던 시절을 지냈다.
어느 것의 과거를 안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감정이 있다는 것이다. 감정이 있는 사람은 감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감정을 약으로 통제하고 감동을 제거하는 사회에 산다면 어떨까?
그런 책이 있다.『기억전달자 The GIVER』다. 사회는 ‘커뮤니티’의 우두머리에 의해 통제된다.
직업도 가정도 아이도 다 분배되고 죽음조차 그들에 의해 결정된다. 일정한 나이가 되면 성욕이나 감정을 억제하는 약을 먹어야 한다.
사랑과 자유를 억압하는 대신에 질병과 고통이 없는 평안한 사회다. 엄격한 법으로 질서가 유지되는 사회에서 보통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순응하고 산다.
『기억전달자』 는 과거의 역사를 알고 색을 알고 감정이 있다. 먼저 선택받아 활동해온 ‘기억전달자’로부터 새로 임명된 어린 ‘기억전달자’는 오래전 인간이 쌓아온 지식, 살아온 역사와 예술, 인간의 사랑과 전쟁 등 모든 기억을 전달받는다.
‘기억전달자’가 나이 들면 새로운 이를 선정하여 그 기억을 전달해야 한다. 아주 특별한 ‘기억전달자’만 보통 우리 같은 사람이다.
▲ 기억전달자로부터 기억을 전달받는 조나단.
“예술은 감동을 주고 사람들은 그것을 나누고 싶어한다.”
그 예술을 통제하여 유토피아를 만든다는 소설도 있다. 1932년 출판된 A. L 헉슬리의『멋진 신세계』다.
아이는 시험관에서, 사람은 계층으로, 예술은 극도로 통제하여 모든 이들을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전쟁 대신 평화를, 가난과 질병 대신 건강과 부유를 준다.
그러나 그 대가로 그들은 아름다움을 포기해야 한다. 그림, 클래식음악, 소설, 연극, 뮤지컬, 시 소설, 수필 등을 배제한 것이다.
얼마 전 ‘파스퇴르 우유’ 재단에서 만든 ‘민족사관학교’가 일반고등학교로 전환된다는 것에 반대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영국의 이튼스쿨같이 민족을 일깨우고 이끌어나갈 인재를 기르겠다는 취지의 학교를 없애는 결과를 가져올 것 같다.
완벽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완벽한 비밀을 가진 ‘커뮤니티’가 사회를 통제하여 공평하게 행복한 사회를 만들려는 소설처럼, 2021년 우리정부가 경제와 교육 등을 통제하여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한다. 똑같은 집, 똑같은 음식, 똑같은 옷, 또 같은 약을 먹고 사는 사회. 과연 평등해서 행복할까?
▲ 주인공 ‘조나단’이 아기를 안고 기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인간의 본성과 진실을 찾아 커뮤니티의 경계선을 넘은 『기억전달자』의 주인공처럼 삶이 점점 통제되어가는 우리 사회를 바꿀 주인공은 어디 있을까?
또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에게, 혹은 시험관에서 시험적으로 태어난 기계인간에게, 혹은 어떤 우두머리들의 등장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안아주는 본능도 통제될까 두렵다.
과거도 알고 역사도 알고 옆집사람과 인사도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만나고 싶은 여름날의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