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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원 수필가의 '개구리 소요(騷擾)'

등록일 2021년06월18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개구리 소리가 온 골짜기를 두드리고 밤하늘로 오릅니다. 성질 급한 초승달이 물이 가득 찬 논으로 미리 와 있습니다. 바람과 한바탕 춤을 추다가 논 귀퉁이에서 쉬고 있는 송홧가루는 금세 두고 온 고향이 그리운지 고구려 수렵도에 나올듯한 산을 물 위에 그려놓고 웃습니다.

방앗간 집 아저씨가 어둠이 살포시 내리는 논을 둘러봅니다. 물이 얼마나 담겼나 궁금해서지요.

발소리에 개구리가 놀랐나 봅니다. 순간 조용히 다가오던 어둠이 오히려 뒷걸음질합니다. 흙덩이 옆에 숨은 개구리 하나는 끝내 목청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이 말이 귀먹은 개구리라나요? 개골개골이 아닙니다. 개액개액 열창합니다. 사랑을 얻고자 하는 염원은 두려움도 잊게 하나 봅니다.

다시 개구리들이 소리를 냅니다. 청아한 합창소리가 고속도로를 지나고 산을 건너 어릴 적 마을로 나를 데려갑니다.

에 가신 아버지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장날이 오면 아버지는 이른 새벽부터 겅중거리는 마음을 잡으며 검정두루마기를 꺼내십니다. 중절모를 손가락으로 털어 천천히 머리에 얹으시며 큰기침 한 번으로 작별 인사를 하시지요.

느긋이 장을 본 후엔 막걸릿잔을 앞에 두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지요. 순댓국에 수저를 넣지만, 어깨는 슬슬 좌우로 흔들립니다.

무거운 엉덩이 일으켜 집으로 향하는 걸음이 위태롭습니다.

뿌연 먼지를 쓰고 멈춘 자동차도 그냥 보내고 동네사람과 자갈투성이 신작로를 걷습니다. 새끼줄에 간고등어 두어 손 행복하게 흔들리고 농약 두어 병 안고 오는 길입니다.

장에 가신 아버지 생각에 해는 길고 놀이도 재미가 없습니다. 아버지 두루마기에서 나올 왕사탕이 아른거립니다.

호롱불을 높이 들고 질경이를 밟으며 도랑을 뛰어넘어와 섰습니다. 긴 불빛으로 버스가 와서 대여섯 사람을 부려 놓고 덜컹대며 사라집니다. 반가움으로 귀를 기울이지만 윗동네 사람입니다.

다시 차가 오기까지의 시간은 개구리 몫입니다. 어두운 밤길에서도 어머니는 아버지 발걸음을 잘도 찾아내십니다.

 “이놈의 영감 술독에 빠졌다가 이제 오나?”

어머니 목소리엔 역정과 함께 반가움이 배어있습니다. 헛기침 한 번으로 인사를 대신한 아버지 뒤를 호롱불이 가물거리며 쫓아갑니다.

가끔 아버지 몸이 휘청할 때마다 호롱불도 깜짝 놀라 휘청거립니다. 그 끝을 개구리가 밤새 붙잡았습니다.  

김다원 리포터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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