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중고서점에서 책 하나 샀다. 낸시 벤뱅가가 쓰고 문종원이 옮긴 <학대받는 아이에서 학대하는 어른으로>라는 책이다.
책은 잘 팔리지 않으면 얼마 못 가 품절되거나 절판된다. 좋은 책인데도 구하려다 보면 그런 경우가 많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 이 책도 그런 책이다.
‘폭력의 대물림’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널리 퍼져 있다.
책 제목대로 학대를 받고 자란 아이가 나중에 커서 학대하는 어른이 된다는 것이다.
내가 이 글에서 하려는 이야기는 책 내용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 책을 구입한 과정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나는 이 책을 2017년 3월 6일 닥터 빈티지라는 판매자로부터 샀다. 배송조회를 해보니 판매자는 경기도 안산에 사는 사람이었다. 이틀 후 책을 받았다. 150쪽 정도 되는 얄폿한 책이었다.
표지를 펼쳤다. 그 안에 천 원짜리 한 장이 꽂혀 있고, 메모지에 정성들여 쓴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조재도님~
구매 감사드리며, 주문하신 도서 살펴보던 중 약간의 밑줄이 발견되었습니다.
주문 취소하여야 하나 1000원 동봉해서 일단 보내드리니 상품 수령 후 환불을 원하시면 연락주세요. 등록시 꼼꼼하게 확인 못해 죄송합니다~.
이 책 정가는 6천원, 중고가는 2200원이다. 택배비 2천원을 더해 내가 산 가격은 4200원이었다.
본문에 밑줄이 있는 것을 발견 못하여 천 원을 환불하니, 주문을 취소하려면 연락하라는 내용이다.
나는 천원짜리 지폐를 들고 요리조리 살펴보며 냄새도 맡아보았다.
우리 주변에 흔하고 흔한 천원짜리 지폐였지만, 이 지폐는 수천년 지나 발굴된 고대화폐인 것처럼 귀중하게 느껴졌다.
판매자가 돌려준 천원은 상품가치로서의 천원이 아니다.
천원짜리 한 장으로는 과자 한 봉지 못 사고, 시내버스 차비도 하지 못한다.
판매자가 돌려준 천원에는 그 사람의 인격과 양심과 문화와 종교와 신념, 상도(商道)가 들어 있다. 귀차니즘과 대충주의 세속주의에 저항하려는 정신이 들어 있다.
이런 것들은 어디서 오는가?
나는 자발성에서 온다고 본다.
자발은 자기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 원해서 소박하게 사는 자발적 가난, 스스로 원해서 하는 자발적 복종, 자발적 물러남, 등이 그렇다.
자발적 행동은 아름답고 숭고하다.
우리가 사는 사회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타의적’이다. 다른 사람(주로 자본가나 지배자) 뜻에 의해 대중은 사고하고 행동한다. 자기도 모르게 조작되는 것이다.
심지어 사소한 물건 하나 사는데도 광고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거대한 주류의 흐름을 거슬러 오르는 일이 자발이다.
세상은 여기서부터 새로운 기운을 얻는다.
조재도 | 시인이자 아동·청소년문학 작가입니다. 충남의 여러 학교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했습니다. 지금은 ‘청소년평화모임’ 일을 하고 있으며, 어린이와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두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