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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가 있는 유량동 ‘라비카페’

어린왕자와 아름드리 벚꽃이 사는 유량동 찻집

등록일 2021년04월08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벚꽃이 지기 전에 가야 한단다. 오후 4시가 넘었다. 서둘러 유량동 골목에 들어섰다. 
 

카페 ‘라비’는 맞이하는 품새부터 달랐다. 차에서 내리자 카페 외벽에 앉아 트럼펫 부는 작은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트럼펫 소리가 사람을 불렀던지 사진작가가 와서 이미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카페에 들어서기 전 발길이 잔디로 향했다. 주인의 성향을 말해주듯 나무가 많다. 우선 카페 남쪽 황룡사의 벚꽃이 만개한 후의 여유로움을 석양을 물고 오는 빛으로 지고 있었다.
 

굵은 둥치를 가진 개나리는 가지를 날리며 4월을 알리고 영산홍은 꽃봉오리를 열며 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카페주인의 신선한 발상 하나가 눈에 확 들어왔다. 쓰러진 통에서 꽃분홍 사철 채송화가 땅으로 흐르다니, 깨진 항아리가 땅에 쓰러져 다시 땅과 화해를 하듯 꽃을 나누어 피다니.

놀란 눈에 카페주인의 또 다른 파격이 들어왔다. 황룡사로 가는 길을 카페 안으로 들인 것이다. 원래 있던 길이 막히자 카페를 통해 갈 수 있도록 길을 안내했다. 전에 황룡사를 돌아서 유량동을 산책하던 길의 반전이었다.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오른쪽 벽면 가득 별이 빛났다.

‘사막은 아름다워/ 사람이 아름다운건 어디엔가 우물이 숨어있기 때문이야/ 눈으로 찾을 수 없어 마음으로 찾아야 해.’

눈을 들었더니 빨간 머플러를 날리며 어린왕자가 여우와 함께 책 위에 앉아 자기의 별을 보고 있었다. 나도 그 옆에 앉아 내 별을 찾고 싶었다.

어린 왕자를 맞고 싶은지 바닥에 노란 의자가 있고 보라색 의자엔 꽃바구니가 준비되어 있다.
 

세워진 작은 선반에 또는 창가에 앙증맞은 꽃들이 있다. 꽃을 더듬어 보다가 돌린 눈에 그림이 들어왔다.

민순원 화가의 작품이다. 분홍, 보라색의 나무둥치를 그린 그림을 보니 갑자기 마음에 화사한 빛이 들어온 것처럼 미소가 왔다.

그 옆의 그림은 백남준 작가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각종 네모의 세상이다. 분홍색이 들어간 네모가 여러 개 눈에 들어와 또다시 진달래를 본 가슴처럼 뛰었다. 게다가 네모의 상자 사이에 풍선이 떠 있다. 더 설렜다. 작은 작품 하나가 세상을 분홍으로 보게 했다.

비구상과 구상의 여러 작품을 보다가 분홍색을 또 보았다. 물 흐르듯 흐르는 물감 위에 진달래꽃 하나가 있었다. 그녀의 마음속을 여행하다 마지막 꽃 하나 내 가슴에 안을 때였다.
 

▲ 민순원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문이 열리고 초록색 티셔츠를 입은 여인이 들어왔다. 그림의 주인이란다. 화가는 꽃같이 화사하게 웃었다. 이제야 의문이 풀렸다. 왜 그림에 꽃분홍이 많이 들었는지 그 색이 가슴에 새겨지는지.

그녀는 진달래 피고 벚꽃이 피는 4월을 기다리느라 카페를 1년 전에 예약했다고 했다. 그래서였구나 내 마음이 그녀를 만나려고 이곳으로 달려오고 싶었었구나.

그녀와 그녀의 그림을 번갈아 보는 사이 카페 여주인이 자몽차를 들고 왔다. 수수하고 겸손한 그녀를 보니 카페의 분위기와 닮았다.

꽃을 좋아하고 차를 좋아하지만 그림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는 그녀는 일주일에 2일은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 그리는 날이란다.
 

보테니컬 class를 운영한다며 아름다운 꽃 그림도 보여주었다. 얼른 연필을 들고 참여하고 싶었다.

카페 이름을 라 비에(la vie)로 지은 이유를 물었더니 비에(vie)의 뜻이 생生이란다. 마침 읽고 있던 책이『자기 앞의 생』이었는데 그 책이 마음에 들어 이름으로 짓게 되었다고 했다.

오랫동안 직업을 갖고 일하다가 마지막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연 찻집이라는 카페주인은 소박한 웃음과 함께 쑥인절미를 내밀었다.

자주 와서 맛난 차 한잔에 자연과 여유를 즐기고 싶었다. 찻집을 나와 집으로 향하는 길에 만난 해도 행복한 하루를 보냈는지 발그레한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진달래꽃 분홍색이 내 방으로 함께 들어온 4월5일이었다.   

김다원 리포터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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