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할인마트로 동네수퍼가 문 닫듯 멀티플랙스가 나타나며 동네극장이 사라지고 있다. 다채널 영화관은 경제적 실익을 우선하는 상업화. 볼거리는 풍성해졌지만 정서까지 담아내지 못하는 정신적 피폐는 오히려 가중, 현실을 삭막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안타까움 속에 이선옥(32·중앙도서관)씨는 지난 2월 말 박현정(24·청소년지도사)씨와 궁리 끝에 중앙도서관 문화의집 다목적실에 ‘비디오 상영관’을 조성했다. 어찌 보면 동네극장과 비디오방을 합성한 미니 상영관.
영화관의 대형 스크린을 52인치 TV로, 수백명의 관람석을 수십석으로 둔갑시켰다. 형편은 못하지만 관람객이 참여주체로 좋은 비디오를 엄선할 수 있다는 건 영화관이 갖지 못한 장점. 관람객과 중·고생으로 구성된 청소년 운영위원회, 청소년지도사가 의견수렴해 비디오를 선정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전일제 수업차 찾아온 학생들이 비디오 상영을 꽤 좋아한다는 사실을 착안해 시작했어요. 아직 찾는 이는 적지만 많이들 좋아하는 것 같아요. 좁은 공간이 꽉꽉 들어찾으면 좋겠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상영관으로 가야겠죠.” 이선옥씨는 영화감상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잘된 감상평은 도서상품권을 지급하기로 하고 현재 10여건을 받아놓고 있다.
상영시간을 매주 토요일 오후 3시로 맞춰놓고 지난 3일(토) 로베르또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를 첫 상영작품으로 올렸다. 개인적으로 제일 감동받은 작품이기도 하다는 이씨는 “전쟁의 참혹한 현실 앞에 전쟁은 숨바꼭질하는 놀이라고 아들을 위로한 아버지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철도원(감독 후루하타야스오)’도 주로 학생층의 관람객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한 여학생(중1)은 감상평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17년만에 얻은 딸이 죽어가도 묵묵히 철도원 역할에 충실한 요토에게서 최선을 다하는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았다”고 밝혀 놓았다.
“호응이 좋아지면 토요일뿐 아니라 일요일도 열 거구요. 비디오 상영관의 마니아들의 공감대 마련을 위해 동아리 구성도 적극 추진할 예정이에요. 오는 24일(토)은 ‘스텝맘’, 31일(토)은 ‘사운드 오브 뮤직’을 상영 예정이니 많이들 보러 오세요.”
이선옥씨의 밝은 얼굴이 비디오 상영관의 미래도 풍성하게 만드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