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5일(월) 대전구장.
까무잡잡한 피부에 작은 체구의 선수가 마운드에 올라 있다.
모션이 이어지며 던져진 회심의 1구는 약간 높은 볼. 그러나 커다란 덩치의 타자는 손도 대지 못했다. 공이 빨라서나 어려워서가 아니라 ‘칠 수 없는 볼’이었기 때문.
재선(12·입장초·익선원)이에게 2003년 5월5일 어린이날은 일생에 가장 기억되는 날이 되었다.
“프로선수들이 뛰는 야구장에서 제가 시구를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정말 좋았어요.”
이틀이 지났어도 당시의 흥분이 여전히 남아있는 재선이는 ‘조금만 더 잘 던질 걸’하는 아쉬움도 묻어난다.
재선이의 시구 덕분인지 이날 충남 연고의 한화는 SK를 11대2로 압승했다.
한화 또한 어린이날을 맞아 익선원(원장 민태오)의 문화체험행사에 동참, 초대를 통해 이렇듯 값진 승리까지 거머쥘 수 있음에 기쁨을 같이 했다.
익선원에서 만능 스포츠맨으로 통하는 재선이는 축구광. 달리기도 입장초등학교 대표로 뛸 정도며 댄스스포츠에도 일가견이 있다.
학생의 본분인 공부도 꽤 잘한다는 풍문. 이런 이유로 익선원을 대표해 시구의 영광이 주어진 것이다.
아이들의 즐거움에 화답하듯 이날 구장 전광판엔 ‘익선원 어린이들의 방문을 환영한다’는 문구가 간간이 보였다.
“한화와 어린이날을 보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지난해 우리 후원인의 밤 행사에 한화선수들의 팬사인회 추진이 무산됐었는데, 이번에 그 아쉬움도 달랠 수 있었어요.”
생전 처음 야구구장을 찾았다는 민 원장도 아이들처럼 좋아했다. 재선이의 장래 희망은 경찰관이다.
보통 그 또래는 ‘멋있어서’라는 것일텐데 대뜸 보람있을 거라는 대답이다. 운동 잘하고 예의바른 재선이에게 어쩌면 가장 적합한 꿈일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재선이가 시구한 대전구장은 이날 미니운동회와 어린이 홈런왕 및 강속구왕 선발대회 등이 열렸으며 삐에로 분장을 한 마임연기자가 다양한 연기와 함께 매직풍선을 어린이들에게 선물, 아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한편 이날 수원 현대-기아전에서는 프로야구 홍보대사인 가수 김건모씨가, 대구 삼성-롯데전에서는 가족퀴즈왕 대회 1등한 가족의 어린이가 이날 경기의 시구 영예를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