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약한 책들로 구성된 서고. 바닥 또한 차가워 어린이들이 제대로 앉을 수도 없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 도서관이었다.”
빌게이츠는 자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책을 많이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프랭클린 루즈벨트에서 빌 클린턴까지, 현대 미국 대통령 11명의 어린 시절 공통점도 모두 책을 좋아하고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이다.
책 읽는 아이들은 사람과 세상을 더 잘 이해하고 생각할 줄 알게 된다. 책 읽는 아이들은 속이 깊어지고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표현하기 때문.
“생각하는 힘과 판단력을 키워주는 데는 독서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고 권재희 이화여대 교수는 설명하고 있다.
책읽는 환경은 열악
그러나 아산시의 아이들에게는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이 열악하기만 하다.
문득 책을 읽는데 무슨 환경이냐, 반딧불을 켜 놓고라도 읽어야지 하는 부모가 있을는지 모른다.
어린이들에게는 0~10세까지 그 나이에 맞게, 지능발달을 해 나갈 수 있는 독서지도와 이를 교육하고 재생산해 줄 수 있는 것이 도서관이다.
아산시 도서관도 이런 기능을 담당하기 위해 개관했고 운영 중이지만 “아직은 도서를 진열해 놓는 곳. 취업이나 학교 공부하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아산도서관을 이용한 송모씨(26)의 말).
그러다 보니 아산시에 있는 도서관은 꿈과 희망을 키워 가는 또 다른 교육의 장보다는 밀린 숙제와 취업공부를 하는 곳으로 전락되고 있다.
문진수 아산도서관장은 “이제 도서관의 기능은 바꿔야 합니다. 단순히 조용히 공부를 하는 곳이 아닙니다. 어린이들도 책상에만 앉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약간씩 떠들고 먹을 것을 들고 돌아다니면서 내 집처럼 편안하게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살아있는 도서관의 역할”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아직은 아산에 있는 도서관들은 그럴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열악한 장서의 보유, 협소한 공간, 교통 불편은 아이들 접근을 막고 있으며 어린이들의 독서의욕을 저하시키고 있다.
도서관 이용하고 싶어도
아산시에 있는 도서관은 충남교육청이 운영하는 아산도서관과 아산시에서 운영하는 송곡?배방?둔포 도서관 4곳이 있다. 또한 학교마다 학급문고를 운영하고 있지만 책에 낙서가 되어 있고 선정기준이 모호한 책들이 많아 학생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도서관을 멀리 하거나 책읽기에 게을리 하는 것은 아니다.
아산시의 도서관 이용실태를 보면 송곡도서관의 경우 초등학생의 1년 이용이 4천5백여명대에 이른다. 일반인보다 5백여명 떨어진 수준이지만 꾸준히 이용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배방이나 둔포 도서관도 마찬가지. 일반인이 분기별로 2천명이라면 초등학생은 1천8백명대에 이른다.
이렇게 초등학생과 미취학 아동의 이용률은 높은 편이지만 도서관마다 보유하는 서적의 수는 일반서적보다 현격하게 낮다.
송곡 도서관의 경우 일반인 서적이 1만9603권이라면 아동서적은 4천6백82권으로 일반인 서적의 20%수준에 머물고 있다.
배방 도서관도 마찬가지. 일반인 서적은 1만5758이지만 아동 서적은 6천1백7권 25.8% 수준. 둔포 도서관은 일반인 서적 2만6797권이지만 아동서적은 1만권 정도로 일반인 보유서적에 26.7%만을 갖고 있다. 평균 24.2% 수준에 머물고 있다.
장서의 보유가 이렇다 보니 대출도 성인보다 현저히 떨어진다. 어른은 한해 8천권의 책을 빌려간다면 아이들은 1천2백권에 지나지 않는다.
엉덩이 차가워 못 앉겠어요
어린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열람실도 일반인이나 학생 열람실에 비해 매우 협소하다.
송곡 도서관을 제외한 나머지 도서관은 어린이 열람실이 협소하거나 아예 없다.
또 바닥이 차가운 시멘트로 되어 있어 꼭 의자에만 앉아야 한다. 오래 못 앉아 있는 어린이들의 특성상 차가운 바닥은 어린이들을 도서관 밖으로 내몰고 있다. 장소의 협소함도 마찬가지.
배방도서관의 경우 어린이 열람실이 58.6㎡, 성인열람실 88㎡이고 성인용이나 어린이용이 2백20㎡를 넘는다. 둔포 도서관은 아예 어린이 열람실이 없다.
아산도서관도 어린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1백5㎡지만 성인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종합자료실, 디지털자료실, 평생교육실 등 4백83㎡가 된다.
도서관 이용자 수는 어린이나 성인이나 다를 바 없지만 어린이들에게 주어진 공간은 작은 엉덩이 하나 붙일 곳이 없다.
아산도서관 사서도 “방과후가 되면 아이들이 많이 찾고 부모의 손을 잡고 오는 유아들도 있지만 차가운 바닥에 덜렁 앉아 아이들이 책읽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도서관 갈 땐 목숨을 걸어라
차가운 바닥과 협소한 장소도 문제지만 더욱 큰 문제는 교통편이다.
교통편은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위태로운 상황에 접해 있다.
송곡 도서관을 가려면 부모의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위험이 크다. 송곡 도서관으로 가려면 현충로를 따라 가야 하는데 갓길에 보행로가 마련돼 있지 않은데다 드라이브를 즐기려는 자가용이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달리고 있다.
신도시의 건축열기를 타고 대형트럭도 돌가루 등을 떨어뜨리며 다녀 어린이들이 도서관을 혼자서 가려면 목숨을 걸어야 되는 형편이다.
버스를 이용하려고 해도 30분에 한 대 꼴로 오기 때문에 기다리기도 만만치 않다.
둔포, 배방 도서관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다. 버스 정류장도 바로 앞에 있고 보행로도 넉넉하다.
그러나 근교의 학교와는 거리가 멀다는 단점이 있다. 또 배방의 경우 아파트가 인접했지만 도서관을 일부러 사용하기 위해 오기가 힘들다. 그러다 보니 자연 도서관과 멀리하게 된다.
도서관과 멀리하면서 책은 꿈과 상상력을 키워주는 책이 아닌 교과서나 참고서적에 의존하는 것이 대부분.
특히 아동 도서에 대한 이해가 없는 부모들은 과대 포장한 책선전이나 아이들의 요구에 따라 무조건 사주는 경우가 많다.
아산시 동화읽는 어른들의 모임의 김현주 회장은 “아이들의 성장속도와 지능발달에 따라 책을 선정해 주고 부모들이 먼저 읽어보고 정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책을 선정하게 되면 아이들에게 영양가 없는 음식과 술, 담배를 주는 꼴이 된다”며 경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