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봉산이 뜨겁다. 천안시는 일봉도시공원 민간공원조성 특례사업을 4년여간 추진해왔다. 이 사업은 일봉도시공원 30%는 개발로 내주는 대신 70%는 시에 기부채납돼 원형보전되는 방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발되는 지역의 주변에 사는 주민들 반대가 심했다. 급기야 이들의 반대운동은 천안시장 보궐선거에까지 미쳤고,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우려준 현 천안시장이 시행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직권상정으로 ‘주민투표’를 결정하는 초강수를 뒀다.
문제는 시가 주민투표에서 졌을 때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특례사업 반대측은 “개발을 반대하면 일봉산이 지켜진다”고 주장하지만, 천안시는 누차 “주민투표 결과 개발이 무산되면 일봉산은 더욱 심하게 훼손될 것”이라 답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무책임자급인 국장과 과장이 의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하는 말이고 보니 믿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얼마나 모순된 일인가. 시장이 주민투표에 붙인 이유가 설명이 안 된다. 지역사회를 상대로 무책임한 주민투표를 던져놓은 꼴이다. “개발을 반대하는 주민투표 결과가 나온다면 반드시 일봉산을 지키겠다”고 약속해야 되는 것이 상식이지 않은가. 이에 대해 시장은 침묵하고, 시행정은 ‘더욱 훼손될 것’이라니 당황을 넘어 황당하다.
의회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다. 상임위(경제산업위원회)에서 마라톤 심사를 통해 5대 1로 부결시킨 때만 해도 상식적인 결과로 볼 수 있었다. 주민투표에 져도 일봉산을 보존해줄 수가 없다는 시행정의 답변에는 책임시비를 떠나 부결만이 올바른 결정이었다. 하지만 상임위 심사결과를 존중하지 않은 채 본회의에 투표로 붙여진 것도, 오히려 12대 13으로 역전돼 주민투표가 가동되도록 한 것도 ‘의회의 아이러니’다.
그렇다면 개발반대를 외치는 반대측이 ‘일봉산이 지켜진다’는 주장은 어디서 나온 걸까. 주민투표에서 반대표가 많아 특례사업이 무산되면 천안시가 손 쓸 기회조차 없이 공원해제, 난개발, 손해배상이 진행되는 수순인데 어떻게 일봉산이 지켜진다는 말일까. 천안시도, 천안시의회도 ‘난감하다’며 대책없다는데, 그럼에도 반대측은 묘안이 있나보다.
이들 3자가 만들어낸 어이없는 주민투표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궁금하다. 특례사업이 무산됐을 때의 엄청난 후폭풍, 그 책임은 과연 누가 질까. 요행히 투표참여가 저조하거나 찬성표가 많아 특례사업이 진행된다 해도, 그래서 일부가 믿는 갈등해소를 이뤄낸다 해도 이번 ‘주민투표’는 두고두고 지역사회를 기만하고 수백억 판돈을 건 ‘도박’이었다는 비난은 면치 못할 것이다. 물론 주민투표 선례가 천안시 스스로 발등을 찍는 악례로 남을 우려도 다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