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약 10여년 전 IMF때 천안시로 이사왔습니다. 남편은 건설경기침체로 레미콘 사업을 그만두고 콜밴을 시작했고, 저는 생전 처음 해보는 노점 스넥카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악덕 사업주 상술에 속아 콜밴을 시작한 남편이나 여자의 몸으로 길거리 장사에 뛰어든 저에게는 두 아이와 노모님과 함께 살아가기에 턱없는 가정살림입니다. 그런데 남편과 저의 일을 시청에서 단속한다고 합니다. 심히 고통스럽습니다.”
천안 관내 거리 노점상에 찬바람이 일고 있다. 시가 노점상 단속을 전문 용역에 맡기려는 움직임 때문이다.
지난해 8월 당국의 노점상 단속에 항의하며 시너를 뿌리고 분신해 숨진 고 박봉규(63?서울 청계3가 공구노점)씨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무차별적 단속 행정이 막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벼랑으로 몰아갈 수 있기 때문. 박씨의 장녀 진씨(34)는 “과도한 단속, 용역반들의 인격 무시와 학대, 이 모든 것들이 아버지로 하여금 죽음을 생각하게 한 것 같다”고 울먹였다.
천안의 경우 한전, 자유?공설시장, 명동거리의 잠정허용구역 내 64개소와 중앙시장(유도구역)의 1백20여 노점상은 상관 없지만 그 외 거리에서 불법노점을 하는 2백여 노점상들이 단속용역의 주요 목표. 소식을 접한 노점상들은 대책을 강구하며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시는 더 이상 공무원 단속에 한계가 있음을 밝히며 점점 전문용역에 맡기는 타 지자체 추세에 발맞춰 시행의지를 보이고 있다. 시는 적은 수의 공무원이 단속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하나 노점상과의 물리적 충돌을 공무원들이 기피하는 이유도 있다.
노점상 민원에 시달려온 한 시의원도 “단속용역에 찬성한다. 주민불편과 불만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원칙대로 가야 하지 않나” 하며 “단 노점상의 생존권을 감안, 시가 좋은 해법 제시를 통해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고 전했다.
6명의 용역 인력이 1년간 단속하는데 드는 비용은 대략 3억원대. 막대한 세금을 사용하면서까지 노점단속을 해야 할 시점에 와있다는 건 서로에게 불행한 일이다.
시와 노점상의 타협점 ‘유도구역’
“자율적으로 법과 질서를 따라준다면 이같이 헛된 예산 없이 신나는 복지행정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는 시 건설행정과 오동균씨.
노점상이 주는 피해에 대해 오씨는 보행자나 차량운전자가 편리하게 다녀야 할 인도와 차도에 노점상이 반 이상 막고 장사하는 것과, 정상적으로 세금을 납부하며 영업하는 상인의 입장과도 형평성이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먹거리와 관련해서는 “국민 보건위생과 직결된 문제”임을 밝히며 밝은 사회를 위해 단속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노점상 문제로 골머리를 썩는 곳이 신방동 아파트 단지 일대다. 얼마 전 주류를 판매하는 포장마차가 성행하며 밤 늦은 시각 취객들로 소란하자 주민들은 공포감과 소음으로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터미널 부근 주민들도 노점상들로 ‘너저분한 거리’라는 인식과 함께 수년 동안 고질적인 문제로 자리매김 돼 있다.
이렇듯 노점상에 대한 시민불만과 관련, 4개월 전 용역 소식을 접한 후 대응키 위해 전국노점상연합회에 부득이 가입했다는 터미널 부근 노점상들도 할 말은 있었다.
이곳 신부지부 송기추(40?감사)씨는 “우리 노점상들도 연합회 가입 후 많이 달라졌다. 자진해서 월 2회 이 일대를 청소하고 보행에 지장 없도록 최대한 신경쓰고 있다. 특히 신규장사는 (사정이야 딱하지만) 철저히 못 들어오게 관리하고 있다”며 “대부분 몇 년씩 이곳에서 장사해온 노점상들의 자체 노력을 인정해 달라”고 피력한다.
시에서 타협점으로 내놓고 있는 ‘유도구역 지정건’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젓는다. 유동인구가 많은 이곳 장사도 입에 풀칠할 정도인데 사람도 없는 곳에 노점상을 모아놓으면 장사가 될 리 없다고.
이들은 차라리 대구 동성로의 노점상처럼 ‘노점상 규격화 정비’를 통해 관리하면 거리도 깨끗하고 우리도 안정적으로 장사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대구 중구청은 동성로 정비와 함께 노점상에 대한 임의 양도나 양수, 식품류와 카세트테이프 판매행위 등을 엄격히 규제하고 영업시간 이외 영업행위도 불허할 방침을 세워놓고 있는 곳.
현실적으로 유도구역에서 장사가 어렵다는 것은 중앙시장(유도구역 지정)의 노점상도 대체적으로 인정하는 바다. 이곳에서 커텐을 판매하는 오한나(57)씨는 “시의 배려로 시설은 좋아지나 경쟁이 심해 수입은 예전같지 않다”고 밝힌다. 그 옆 사람도 맞장구를 치며 “요즘은 대형할인매장이다, 마트다 하며 거리거리마다 물건놓고 팔아서 시장에서 주거래가 이뤄지던 옛날과는 천양지차”라며 “이곳 벌이로 용돈은 될지언정 자녀까지 교육시킨다는 것은 무리”라고 귀띔한다.
채찍보다는 당근 먼저
현실적으로 시와 노점상간에 타협점이라면 단 하나. 시는 유도구역을 지정하고 노점상들은 그곳에 들어가 장사하는 것 뿐이다. 이같은 해법에 노점상은 장사가 안 될 거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시는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노점상을 단순히 단속과 처벌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지금껏 그같은 방식으로 일관해 왔어도 노점상 문제는 여전히 해결과제로 남아있다는 것.
노점상 문제는 전국적인 현상이다. 노점 말고 딴 일을 알아보라고 하지만 ‘스스로의 능력’을 갖고 있다면 노점을 하진 않았을 터. 무조건 개인의 일로 치부할 때 이들의 삶의 의지는 더욱 궁색해진다.
한국도시연구소 홍인옥 연구원은 “경제 상황이나 사회복지정책을 고려할 때 단기적으로 노점이 줄어들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노점을 하는 상황에서는 단속 위주의 정책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며 노점상인을 법 위반자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사회복지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시민불편 해소를 위한 노점정비계획’을 수립했다. 이에 따르면 지금까지의 단속 위주에서 탈피, 생계형 노점상에 대해서는 노동사무소와 고용안정센터, 각 자치구의 취업정보은행 등과 연계해 직업교육을 실시하고 취업을 알선하는 등 적극적인 자립을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또 취로사업 우선 채용, 저리의 생업자금 우선 융자 등도 지원한다는 계획. 이같은 배려가 선행된 후 상수도와 전원 차단 등 노점을 원칙적으로 근절시킨다는 복안이다.
아직 시간은 있다. 용역을 주고 서둘러 단속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시간이 들어도 노점영업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시민과 행정, 노점상이 함께 웃을 수 있는 최선의 복안을 내놓는 것이 시행정의 과제다. 공무원 단속인력이 적다고 했지만 행정자치부의 총정원제가 실시되면 현재보다 3백여명의 유용인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현재 11명의 단속인력의 한계는 조만간 원하는 만큼 늘릴 수도 있다는 계산이다.
시 행정의 안이한 편의를 위해서 단속용역이 이뤄져선 안될 것이라는 게 시민 대부분의 생각이다. 시는 5월중 있을 추경안에 올해 단속용역 예산을 상정해 놓고 있다. 의회 통과여부가 남아있지만 추진은 기정사실로 움직이고 있는 것.
111번을 운행하는 한 버스기사의 말이 생각난다. “차도를 불편케 하는 것은 노점상이 아닙니다. 불법주차 차량에 비하면 새발의 피죠. 노점상은 그래도 먹고 살려는 명분이라도 있는 것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