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점점 부자가 돼가는데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가난해지고 있다면 ‘모순(矛盾)’이다. 많은 편리함을 추구하는데 점점 복잡해져 불편을 초래하는 일 또한 ‘모순’이다. 도로가 놓이니 이동하기가 편한데 그로인해 대기오염이 늘고 산림 등은 훼손된다. 게다가 자동차를 사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한다. 우리는 점점 행복으로 나아가고 있는 걸까.
이번 ‘코로나19’도 느닷없이 우리 곁으로 찾아왔다. 2002년쯤엔 ‘사스’가, 2015년쯤엔 ‘메르스’가 우리의 삶을 곤란하게 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더 강력한 것들이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행복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사회가 두려워진다.
이같은 걱정을 하니 아는 지인이 ‘오지랖’이란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왜 걱정하냐는 거다. 한 술 더 떠서 그때까지 살지도 못할 거라며 “오늘에 충실하면 그만”이라고 했다. 물론 ‘오늘’이라는 말은 한 세대, 즉 우리가 살아가야 할 ‘짧은 미래’까지는 포함한 말이다. 그 말을 들으니 다시 편안해졌다.
요즘 ‘~덕분에’라는 챌린지가 유행이다. 코로나19로 고생한 의료진과 관련기관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캠페인이다. 의료진 덕분에 감사하고, 관련업무에 고생한 관계공무원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SNS상의 인증샷 사진으로 널리 알리고 있다.
그러고 보면 ‘덕분에’라는 말을 오랜만에 듣는다. 장기적인 경기침체 등으로 그간 ‘~ 때문에’를 많이 사용한 것 같다. ‘대통령 때문에’, ‘야당 때문에’, ‘정부 때문에’ 등등. 누구 때문에 못살겠다는 말이다. 책임을 회피하는 말이자, 스스로도 체념하는 부정적인 말이다.
어차피 살아가야 할 생(生)이라면 부정보다는 긍정적 태도가 좋지 않을까. 남 탓 보다는 ‘내가 좀 더 열심을 내야지’ 하고 생각하면 낫지 않을까. 사람들은 흔히 물컵의 물을 예시로 들며 “물이 반 밖에 안남았을까, 반이나 남았을까”를 묻는다.
이럴 때 “당신 때문에 반밖에 안남았어” 보다는 “당신 덕분에 반이나 남았어”가 우리사회를 더욱 행복하게 하는데 도움될 거란 사실이다. 코로나19를 다함께 극복해가는 상황에서 “당신 때문에 힘들어”가 아닌 “당신 덕분에 좋아졌어”라고 말해보면 어떨까. ‘덕분에 챌린지’는 단순히 감사함을 전한다는 의미보다, 앞으로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다가올 미래를 ‘천국’으로 묘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구멸망’의 시나리오가 대부분인 미래다. 우려보다 기대되는 미래를 위해, ‘누구덕분에’를 많이 사용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