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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독립운동가 ‘박은식 선생’

민족혼을 지켜낸 역사가… 11월 한달간 기록사진 8점 전시

등록일 2019년11월05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독립기념관(관장 이준식)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박은식을 2019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갖는다. 11월 1일부터 30일까지 한달간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에서 8점의 기록사진을 전시한다.

박은식은 1859년 9월30일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서당에서 한학을 익힌 그는 정약용의 학맥을 이은 문인들과 교류하며 실학과 양명학 등을 접하고 현실적·개혁적 사고를 가진 유학자로 성장했다. 이와 함께 위정척사론의 대가인 화서학파 문하에서 성리학을 연구하며 외세의 침략에 대항해 자주와 독립을 지켜야 한다는 사상을 키워갔다.

1898년 독립협회 가입을 시작으로 민족운동에 투신한 박은식은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주필로 활동하고 서북학회월보 등에도 각종 논설을 발표하며 언론을 통한 계몽운동을 전개했다. 또 서북협성학교, 오성학교 교장을 맡아 실력양성운동에도 힘을 쏟았다. 이처럼 언론과 교육 부문을 중심으로 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선 박은식은 비밀결사단체인 신민회에도 참여하며 다양한 방면에서 국권수호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1910년 8월 일제가 한국을 강점하자 1911년 5월 중국으로 망명한 박은식은 만주에서 민족혼이 담긴 역사서를 저술했다. 그러다가 중국 관내로 활동무대를 옮겨 1912년 상하이에서 동제사를 결성하고 총재를 맡아 독립운동 기반조성에 매진했다. 또한 역사를 보존하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것이라는 일념으로 역사서 저술도 이어나가 1915년 한국통사를 간행했다. 1917년에는 독립운동가 14명 중 한 사람으로 ‘대동단결선언’을 발표해 독립운동세력의 단결을 촉구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한 박은식은 독립신문 발행과 임시사료편찬위원회가 주관하는 조일관계사료집 편찬에 참여했다. 역사가로서도 활동을 계속하며 1920년에는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발간했다. 한편 1923년 국민대표회의 이후 무력화된 임시정부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1925년 3월 제2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그는 헌법개정 등을 단행하며 임시정부 정상화에 힘을 쏟았다. 역사가이자 독립운동가 원로로서 활동하던 중 건강이 악화돼 1925년 11월 66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김학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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