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은 직접 정책을 결정하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행정은 갈등을 시민들에게 떠넘기는 수단으로 이용했습니다”
‘공론화’를 보는 눈높이가 시민과 행정이 서로 달랐다는 얘기다.
21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과 대전시민사회연구소 주최로 대전 NGO센터에서 열린 ‘환경 갈등과 생태 민주주의’를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는 충남과 대전 지역 환경갈등 현안이 의제로 올랐다.
양흥모 대전충남녹색연합 책임활동가는 ‘대전월평공원 민간 특례사업’ 과정에서 경험한 ‘공론화 위원회’의 성격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그는 “시민들은 ‘공론화 방식’을 직접 민주주의로 생각했지만, 대전시는 갈등을 시민에게 떠넘기는 정치적 수단으로 생각했다”고 평가했다.
서상옥 천안·아산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천안지역 갈등 현안을 소개하며 “대전 수준의 공론화 절차만이라도 밟아 달라”고 천안시에 요구했다.
천안시는 일봉공원 보전을 명분으로 민간개발특혜사업을 추진 중이다. 월평공원 갈등 사례처럼 일봉산 공원에 2,700여 세대의 대규모 아파트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천안시는 이 사업을 조건부 승인했다. 천안지역 시민단체는 주민들과 ‘일봉산지키기 주민대책위’를 결성하고 “강행을 멈추고 주민 의견 수렴을 위한 공론화 과정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천안시는 일봉공원을 비롯해 노태공원,청수공원,청룡공원 등에서 민간공원특례사업을 추진 중인데 모두 아파트를 짓는 계획이다. 가구 수만 8000여 세대에 이르는데 축구장 53개를 지을 수 있는 면적(38만 제곱미터)이다. 공원에 아파를 짓는 건설업체도 밉지만 이런 저런 핑계로 맞장구치는 지방정부가 더 미울 수밖에 없는 사례다.
공기업과 대기업이 관련된 경우 지방정부의 움직임은 더 굼뜨고 애매해진다.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대전원자력연구원의 사고 일지를 소개한 후 “대전시를 보면 탈핵에 대한 정확한 목표도, 조정자 역할도 하지 없다”고 꼬집었다.
유종준 당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이날 당진지역 주요 갈등 현안으로 당진화력발전소와 현대제철 당진공장에 의한 대기오염, 환경오염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이어 “대기환경보전법을 보면 ‘시도지사는 대기오염으로 주민 건강과 환경피해가 급박하다고 인정되면 즉시 배출시설에 대해 조업정지 등 필요한 조치를 명할 수 있다”며 “하지만 수백만 원의 과태료 외에 조업 정지와 같은 권한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례가 없다”고 지적했다.
서산 오토밸리산업폐기물처리장 조성을 둘러싼 갈등은 더욱 복잡하다. 이날 이백윤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은 “업체 측이 법적 허점을 이용한 악질적인 영업이익 확대를 추구하고 있다”라며 “그런데도 충남도는 산업단지계획 승인과정에서 매립용량을 애초 31만 톤보다 4배 이상 많은 132만 톤으로 늘려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폐기물업체 측은 애초 산업단지 내에서 발생하는 폐기물만을 매립하기로 했다가 서류를 조작하는 방법으로 슬쩍 영업 구역을 ‘인근 지역’으로 확대했다”라며 “그런데도 감사원은 서산시와 충남도를 향해 ‘폐기물관리법상 영업 범위를 제한할 수 없으니 영업 범위를 인근 지역까지 확대하라’고 압박하고 있다”고 혀를 찼다. 감사원이 ‘서류조작’을 한 업체를 두둔하고 나선 셈이다.
한일청구권협정,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중심으로 한일 갈등이 커지고 있다. 해법도 정부와 여야 정치권, 경제계, 전문가마다 제각각이다. 하지만 모두 갈등의 뿌리가 제대로 된 과거사 정리를 하지 않은 데 있고 더는 잘못된 과거를 묻어 두는 낡은 방식으로는 한일관계 유지가 어려워졌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또 한국 시민들이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피해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다양한 실천 운동을 갈등 극복의 동력으로 삼고 있다.
지역 내 갈등의 뿌리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누구의 이익에 정책이 맞춰져 있는 가와 맞닿는다. 과거 정책의 대부분은 기업의 이익, 정책 책임자의 정치적 이익 추구에 맞춰져 있었다. ‘우리가 몰랐던 시대’에 쓰던 행정 방식은 더는 인정받기 어렵다. ‘모두가 알고 깨어있는 시대’에 걸맞은 인권 행정이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