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3세가 일본의 한 대학 졸업논문으로 쓴 '일본 정부와 법원의 조선학교 무상화 비판' 논문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달 일본 구마모토학원대학 상학과를 졸업한 주선미씨(22)는 졸업논문으로 '조선학교와 무상화 비판' 주제 논문을 제출했다. 해방 직후 조국으로 건너오지 못하고 일본에 남게 된 재일교포 1세들이 세운 '조선학교'(우리 학교)를 '고교 무상화' 대상에서 제외한 일을 적법하다고 판단한 일본 법원의 판결을 분석한 논문이다.
논문은 조선학교와 고교 무상화 문제, 재일 교포의 교육받을 권리, 무상화 재판의 쟁점과 현황, 결론 순으로 A4 용지를 기준으로 30쪽에 이른다.
'조선학교'만 무상교육 제외... 정부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주씨의 논문이 주목받는 이유는 주씨 자신이 조선학교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는 규슈(九州) 조선 중고급 학교를 졸업했다. 물론 일본 정부로부터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는 지난 2013년 12월 자신이 다니던 규슈 조선학교 학생들과 함께 소송에 참여했다. 미성년임에도 무상화 정책 대상에서 배제한 처분과 관련 일본 정부를 상대로 750만엔(약 75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또 조선학교를 정식학교가 아닌 각종학교로 분류하고 있다. 때문에 주씨는 조선학교를 졸업하고도 대입수험자격을 얻기 위해 별도의 '대입검정' 시험을 치른 후 구마모토학원대학에 입학, 지난 달 22일 수석으로 졸업했다.
일본 정부는 '공립 고등 학교 수업료 무상화와 고교 취학 지원금 지원'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여기에는 국적과 관계 없이 중국학교를 포함, 일본 내 모든 외국인학교가 포함된다. 하지만 조선학교만 지원 대상에서 빠졌다. 아베 내각이 조선학교는 총련이 교육 내용과 인사, 재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이유로 무상화 대상에서 제외시킨 것이다.
앞서 일본 정부는 조선학교에 총련과의 관계를 끊으라고 요구했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교육 내용에 대해서도 '과거 식민지는 강제성이 없었다', '창씨개명 등 황국신민화에 대한 것은 가리치지 말라', '종군위안부는 자발적인 것이었다'는 지침대로 조선(한국) 역사와 사회를 가르칠 것을 요구했다. 조선학교가 일본 정부 요구대로 따르지 않자 무상화 대상에서 배제했다고 보이는 이유다.
주씨는 논문에서 일본 헌법, 국제법, 유엔의 권고를 꼼꼼히 살핀 뒤 "일본은 '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고, 일본에 거주하며 납세를 하는 외국인도 일본 정부의 공적인 보조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주씨는 "재일 한국인에 대해서는 특수한 역사 배경에 따라 일본인과 동등한 보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제인권법을 보면 자기 문화와 언어를 가르치는 민족 교육을 보장하고 있다"며 "특히 민족성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조선인 학교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가 전쟁 책임 청산으로 이어지는 원상회복, 피해복구의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 정부, 조선학교 존재와 특수성 인정해야"
규슈조선중고급학교를 포함, 일본 내 5개의 조선 고교는 일본 정부의 조선학교 지원 배제에 맞서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까지 진행된 2심까지의 판결 결과는 원고인 조선학교 측의 패소다.
주씨는 논문에서 패소 판결의 논지를 자세히 살폈다. 주씨는 "법원이 판결 이유로 조선학교에 지원할 경우 돈이 총련 등으로 유출돼 학교 운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문부과학성의 주장을 인용했다"며 "구체적으로 논증하지 않은 채 불명확한 추정을 받아들인 것은 재판관이 조선 총련에 대한 편견에 근거한 판단을 했다는 의심을 하게 한다"고 꼬집었다.
주씨의 논문을 보면 한 재판소는 '재일 한국인이 민족 교육을 받는 것이 중요하며 한국어를 공식 언어로 하는 학교는 조선 고교 외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 재판소는 그러면서도 '취학지원금을 조선 고등학교에 지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민족 교육을 못 하는 것은 아니다'는 논리로 패소 판결을 했다.
주씨는 "여러 조선학교 관련 소송에 대한 판결문을 읽고 분노보다는 논리적 모순과 불합리를 느꼈다"며 "재판의 모순과 일본의 사법이 극복해야 할 점을 지적하기 위해 논문 주제로 선택했다"고 밝혔다.
지난 달 주씨의 대학 졸업식을 앞두고 주씨가 후쿠오카 지방법원에 제기한 소송에 대한 판결이 5년 만에 나왔다. 하지만 후쿠오카 지방법원 고쿠라(小倉)지부또한 '조선학교 학생을 고교 무상화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지난 2월, 유엔 아동 권리위원회가 일본 정부에 '조선학교에도 수업료 무상화를 적용하라'고 권고했지만 법원은 이 마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씨는 논문 말미에 이렇게 썼다.
"아베 총리는 각료회의에서 외국인이 일해 보고 싶고, 살아 보고 싶은 제도의 운용에 전력을 다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조선학교를 무상화 대상에서 제외한 여러 정치 발언과 재판관들의 편견에 찬 판결을 보면 재일동포뿐 아니라 이후 일본 내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의 지향하는 주요 컨셉 중 하나가 '다양성과 공생'이다. 일본은 재일교포의 역사와 조선학교에서 배우고 살아가는 아이들을 진지하게 마주보고 인정해야 한다. 외국인 학교 가운데 조선학교만 무상교육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특정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조선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 대한 권리 침해다."
조선학교는 일본이 패전 후 조국으로 건너오지 못한 재일동포들이 빼앗긴 민족성을 되찾기 위해 사비를 들여 세웠다. 540여 개 달하던 조선학교는 현재 64개로 줄었다. 학생 수는 4000여 명으로 국적은 조선, 한국, 일본, 중국 순이다.